일진의 역습
후앙!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었다.
인간의 발차기라 하기에는 너무나 빨랐다. 기습을 당한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던 길을 멈추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악.
“……!”
발차기는 학생들의 눈앞을 스치고 치나갔다.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가게 찬 것이 분명했다.
“너, 너, 너, 넌 뭐야?”
길 가던 학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존재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190에 육박하는 신장에 엄청난 발차기의 실력자였다.
“미안한데… 너희들 중에 누가 유상현이지?”
“…….”
골목길을 가로막은 사람은 동빈이었다.
동빈은 5명의 학생들을 살펴보며 유상현을 찾았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학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너희들 중 누가 유상현이지?”
“내가 유상현이다.”
중간에 있던 놈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단정한 용모에 180 정도의 신장이었다. 제법 강단이 있는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가는 중이었나?”
“남의 일에 신경 끄시지? 넌 뭔데 길을 막고 난리야?”
“네놈이 먼저 말 안 듣고 있잖아. 자진 신고하라고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
유상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이제야 동빈의 진정한 정체를 눈치 챈 것이다.
“이 길은 경찰서 가는 길이 아니잖아?”
“난 자진 신고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돼.”
유상현은 꽤나 강하게 나왔다. 동빈의 정체를 파악하고도 위축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소리? 넌 뭐가 잘나서 버티는 건데?”
“김동빈,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네놈하고 우리 학생 경찰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날 건드리면 학생 경찰과도 원한을 맺는 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잘못을 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내가 조목조목 열거해 볼까?”
동빈은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유상현의 죄목이 적힌 인쇄물이었다.
“전국 연합이나 깡패보다 더한 놈이었네! 애들을 협박해서 부모님 통장까지 뺏어? 삥 뜯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 강도였구만.”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동빈이 큰 소리로 말하자 유상현이 황급히 나섰다. 자신이 한 짓이 정당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너도 창피한 건 알고 있냐?”
“분명히 말하지만 실수였다. 그리고 학생 경찰로서의 업적을 생각해 줘야지? 그동안 힘없는 애들 도와준 게 누군데?”
“그동안 잘한 게 무슨 소용인데? 게다가 네 아버님이 경찰이라며?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는 짓은 이제 그만 해야지. 그렇지?”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린데… 그래도 이곳은 학교 폭력이 없는 곳이야. 왠지 알아? 내가 이 지역의 전국 연합과 학생 조직을 모두 접수했기 때문이지. 나도 자수하고 싶지만… 내가 없으면 그놈들의 천국이 된다고. 한 번의 실수 때문에 다른 학생들까지 고통을 당할 수는 없잖아? 힘없는 학생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내 잘못을 보상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여기 학생들 대부분의 생각이야. 동빈이, 너도 학생들의 생각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유상현은 장문의 열변을 토했다. 미리 준비한 것인지 발음 한 번 꼬이지 않고 일사천리로 말을 끝냈다. 어떤 변명을 하는지 듣고만 있던 동빈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내가 실수한 것 같은데… 네 아버님이 진짜 경찰이냐? 정치인이 아니고? 그렇게 얼토당토않은 논리는 누구한테 배웠어?”
“어이, 김동빈… 아무리 그래도 정치인은 너무했잖아?”
“좋아, 정치인 들먹인 것은 사과하지. 그런데 네놈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엄청 많은 실수를 범했어. 힘이 좀 생기면 꼭 비슷한 사고를 치는데… 돈하고 여자 문제는 꼭 함께 따라다니더라?”
“난 싫은데, 돈하고 여자가 꼬이는 거야.”
“변명도 어쩜 이리 똑같은지…….”
동빈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동빈의 의도를 파악한 유상현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너 제정신이야? 학생 경찰하고 진짜 전쟁을 벌일 작정이냐?”
“네놈 같은 놈이 학생 경찰이라면, 당연히 싸워야지.”
“…….”
동빈의 의도는 너무나 명확했다.
입을 꽉 다문 유상현은 주춤하며 물러섰다. 이번에도 무력으로 결판이 날 것 같았다.
사사삭.
유상현의 동료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김동빈과 맞서는 것이 껄끄럽기는 했지만 우정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5명이 힘을 합치면 어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도 조금 작용했다.
공격보다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여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방어 동작이 제법이네?”
동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학생 경찰의 무술은 특공 무술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었다. 5명 모두 기본기가 탄탄함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이,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덤비라고.”
동빈은 빨리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짝을 지어 덤비든 뭉텅이로 덤비든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주춤주춤.
학생 경찰은 뭉텅이로 덤비는 쪽을 선택했다.
괴물이라는 김동빈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동빈과의 거리를 좁혔다.
“미안한데… 빨리 좀 올 수 없나?”
“…….”
놈들은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이러다 날 새지나 않을지 걱정까지 됐다. 수많은 일진을 상대하기에 동빈은 항상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이것들은 기회를 줘도 싫다네!”
파파팟.
“……!”
동빈은 놈들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점프를 하면서 정중앙으로 뛰어들었다.
빙글…….
허공에서 동빈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텀블링 동작인가?
상체가 앞쪽으로 쏠리면서 몸이 기울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다.
후앙.
어느새 뒤쪽에서 발차기가 튀어나왔다. 텀블링이 내려찍기 동작으로 변형된 것이다.
푸악.
“컥!”
정수리를 찍힌 놈의 비명은 매우 짧았다. 한껏 부릅뜬 눈의 초점이 점점 사라졌다.
털썩.
놈은 무릎을 꿇으면서 무너져 내렸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상태였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
급격하게 상체가 앞으로 쏠렸고, 결국 얼굴부터 땅에 처박히고 말았다.
풀썩!
차디찬 맨바닥이라 충격이 더욱 컸다. 놈의 머리에서 흐르는 붉은 피가 순식간에 메마른 땅을 적셔 주었다.
“지, 진짜 괴물이잖아!”
“이젠 그 소리도 지겹거든?”
동빈은 놈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본격적인 무력행사로 들어갔다면 끝장을 봐야 멈추기 때문이었다.
슉슉슉슉.
동빈은 가벼운 주먹을 연달아 적중시켰다. 양손을 번갈아 뻗는 게 아니라, 복싱의 잽처럼 왼쪽 주먹만 사용한 공격이었다.
“주, 주먹이 보여야지…….”
안면을 연달아 허용한 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쪽 손만 사용하는 공격이, 양손을 다 쓰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파괴력이 약해서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빠각!
묵직한 소리부터 달라졌다.
동빈의 오른 주먹이 상대의 턱을 강타한 것이다. 고개가 완전히 위로 젖혀진 놈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스윽.
동빈이가 주먹을 거뒀지만 불안한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목이 젖혀진 상태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심하게 흔들거리는 몸으로 보아, 곧 쓰러질 운명이었다.
풀썩…….
놈의 몸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TV의 슬로모션 화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 상현아, 어떻게 하면 좋지?”
“젠장… 뭘 어떻게 해!”
그 짧은 순간에 동료 2명이 쓰러졌다. 도우려고 했지만 어찌 손써 볼 여유조차 없었다. 이제야 놈들은 차원이 다른 상대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길 가능성이 없는 상대야. 저놈은 진짜 괴물이라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내분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괜한 싸움에 휘말린 동료들이 불만을 터트렸고, 마음이 급한 유상현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척 보면 모르겠어? 저놈은 우리를 가르친 교관보다 한 수 위야.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말이다.”
“이 새끼들아! 나 혼자 싸우란 소리야?”
“…….”
“뭐, 뭐야… 저, 정말 그런 뜻이야?”
동빈의 무력은 놈들의 우정까지 갈라놓았다. 아니, 처음부터 우정이란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난 저놈에게만 볼일이 있거든. 나머진 떠나도 좋아.”
“미, 미안하다, 상현아.”
후다닥.
동빈의 말이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동료들은 유상현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아! 너희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날 배신하고 무사할 것 같아, 이 개새끼들아!”
유상현이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동빈이 길을 비키자 놈들은 황급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이젠 혼자서 동빈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조용히 좀 하지?”
“이런 씨발!”
유상현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욕부터 튀어나온 것이다. 김동빈과 일대일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진배없었다.
“어이, 불필요한 대화는 필요 없겠지?”
“…….”
동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섰고, 유상현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동빈이 접근하는 것만 바라볼 뿐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어서 덤비지 않고?”
“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우리 시간 끌지 말자. 내가 이런 싸움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방금 도망친 놈들이 너 구하려고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거든?”
“젠장…….”
유상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친구들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도움을 청하러 갔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했건만… 동빈은 그러한 희망까지 꺾어 버렸다.
“너무 심심하잖아? 반항이라도 해 봐.”
“이런 개새끼…….”
“미안한데… 욕은 반항에 포함되지 않거든!”
촤락.
빙그르.
동빈이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비틀었다.
엄청난 파워의 돌려차기 동작이 분명했다. 유상현은 쓰러진 동료들 꼴이 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후앙!
“……!”
볼수록 위압감이 느껴졌다. 발차기 속도는 줄었지만 파워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강하게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파다닥.
유상현은 깜짝 놀라서 몸을 날렸다.
우선은 살아야 했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리며 발차기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려 했다.
빠악!
“크윽…….”
재빠르게 반응했지만 완벽히 피할 수는 없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유상현의 상체가 앞쪽으로 쏠렸다. 몸까지 붕 뜬 상태였기에 그대로 맨바닥에 처박힐 위기였다.
터업.
유상현은 뛰어난 운동신경의 소유자였다. 맨땅에 얼굴이 닿기 직전 낙법을 사용했다. 다행히 얼굴이 깨지려는 중요한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유도를 수련한 덕을 톡톡히 보았다. 팔로 충격을 줄이고 어깨부터 닿으면서 자연스럽게 구를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키는 동작까지 매끄럽게 이어진 것이다.
“사, 살았다.”
유상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빈의 공격을 막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이대로 냅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때였다.
비틀.
멋지게 일으킨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얼굴이 망가지는 것은 면했지만 뒤통수의 충격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철퍼덕.
결국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다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가 띵해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것이다.
절레절레.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도 소용없었다.
머리만 더욱 어지러울 뿐이었다. 초점을 잃어 가는 눈으로 동빈이 다가오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반항 끝인가?”
“진짜 미치겠네…….”
유상현은 힘없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동빈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