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1/224)

강원도 동해에 위치한 경찰서.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학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살폈다. 약간 마른 체형이었고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경찰서 건물로 자주 눈길을 주는 것이 수상했다. 큰맘 먹고 경찰서를 찾았지만 불안한 마음 때문에 주춤거리는 게 분명했다.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경찰서 입구만 왔다 갔다 했다.

“에이… 모르겠다!”

마침내 오랜 방황이 끝났다. 모자를 쓴 학생은 과감하게 경찰서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내를 맡은 경찰에게 용무를 말하자 하얀색 건물을 손으로 가르쳐 주었다.

방황을 끝낸 학생은 모자를 더욱 눌러쓰고는 경찰이 가리키는 건물로 향했다.

주춤주춤.

모자를 눌러쓴 학생은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소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복도를 걸으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사람이라도 보이면 괜히 딴청을 피웠다.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골라 가면서 하고 있었다.

멈칫.

연신 두리번거리며 걷던 학생이 발길을 멈추었다.

바로 생활안전과 앞이었다. 소심한 학생의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이렇게 소심한 학생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학생은 뭐지?”

“네!”

소심한 학생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3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학생의 창백한 얼굴이 안쓰러운지 말을 걸었던 건장한 남자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데, 내가 안으로 들어가야겠거든?”

“아, 네…….”

소심한 학생은 재빨리 자리를 비켜 주었다. 많이 놀랐는지 식은땀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고마워, 학생.”

“…….”

건장한 남자는 가벼운 웃음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 형사님, 오늘은 누굴 잡아 온 겁니까?”

“잡다니? 김 형사, 또 장난하는 거야?”

건장한 체격의 남자는 형사였다. 생활안전과 안으로 들어서자 금테 안경의 형사가 인사를 건넸다.

“장난이라니요? 장 형사님 뒤에 있는 학생 말입니다.”

“뒤, 뒤에?”

장 형사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난이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고개 돌리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했다.

“너 뭐야?”

“아, 아니요…….”

문밖에서 얼쩡거리던 학생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장 형사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혹시 말이야, 우리에게 털어놓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아니요. 아니요. 진짜 아니요.”

소심한 학생은 손사래까지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장 형사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아니면 말고… 나중이라도 할 말이 생기면 언제라도 털어놓으라고. 알았지?”

“네…….”

장 형사는 소심한 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소심한 학생의 불안한 마음부터 진정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김 형사, 그런데 이놈은 또 뭐야?”

장 형사는 김 형사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매우 불량스러운 학생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형사들이 모두 알고 있을 만큼 엄청난 문제아였다.

“자수하러 왔답니다.”

“자수? 이놈은 오리발의 달인이잖아.”

장 형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불량 학생을 바라보았다. 거만하게 앉아 있던 불량 학생도 장 형사의 따가운 눈총을 느꼈다.

“장 형사님, 왜 이러십니까. 진짜 자수하러 왔습니다.”

“어이, 오리발.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장 형사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형사들을 얼마나 짜증 나게 했는지 불량 학생은 이미 오리발로 불리고 있었다.

“형사님, 사람 말을 왜 못 믿습니까?”

“네놈이 믿을 만한 짓을 했냐고. 며칠 전에 조사했을 때도 아니라고 부인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자수를 하겠다고? 지금 나하고 장난해?”

“형사님. 이번에는 진짜 장난 아닙니다.”

“얼쑤? 이놈 보게?”

장 형사는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리발이 정색을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지한 반응은 장 형사조차도 뜻밖이었다.

“좋아. 계속 자수하겠다고 하는데… 뭘 자수할 거야?”

“너무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며칠 전에 여기 오게 됐던, 그 사건 있지 않습니까?”

“중학생 애들한테 강제로 오징어 장사 시킨 거?”

“네, 그거 제가 주동자 맞습니다.”

“이놈 봐라… 그때는 아니라고 발악을 하더니?”

장 형사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아 난감했다. 자백을 받았다는 기쁨보다는 황당함이 앞섰다. 이러한 장 형사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오리발은 자신의 죄상을 계속 털어놓았다.

“공작파라는 불량 서클 조직한 것도 제가 맞습니다. 학교에서 후배들 삥 뜯게 했고… 말 안 듣는 새끼는 그냥 조져 버렸습니다. 여름에 있었던 학교 금품 도난 사건도 제가 했습니다.”

“뭐야… 그것도 네놈 짓이었어?”

“네, 그리고 일주일 전 일어난 방화 사건도…….”

“이놈 뭐야, 이거?”

장 형사의 황당한 표정은 계속 이어졌다. 오리발이 순순히 자백하는 것도 놀라웠고, 생각지도 못한 범죄 또한 한두 건이 아니었다.

“야, 갑자기 자수를 한 이유가 뭐냐? 고맙긴 하지만…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거든?”

“곧 새해가 밝지 않습니까.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의미에서…….”

“요즘 새롭게 태어나려는 놈들이 왜 이리 많아? 김 형사, 뭐 짐작 가는 일이라도 있어? 학교 폭력 자진 신고 기간보다 몇 배나 많이 놈들이 자수를 하고 있잖아?”

“그러게요? 좋은 현상이긴 한데…….”

최근 학교 폭력을 자수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났다. 처음에는 운이라고 했지만 날이 갈수록 숫자가 더 늘어난 것이다. 형사들도 포기하다시피 했던 악질들까지 끼어 있으니… 연말을 맞이하여 일진들이 단체로 회개한 것 같았다.

“김 형사,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글쎄요.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냄새를 맡았으면 움직여야 할 것 아니야? 오리발 조사 끝나면 나랑 함께 나가자고.”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다른 사건이라니?”

의욕을 불태웠던 장 형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맥이 빠졌다는 반응이었다.

“소문이 좋지 않은 놈이 또 당했습니다. 갈비뼈 4개에 턱뼈까지 부서지고… 하여간 엄청 맞았나 봅니다.”

“당한 놈 이름이 뭐지?”

“장 형사님도 잘 아실 겁니다. 이주원이라고… 작년에 사고 쳐서 학교에서 잘린 놈입니다.”

“뭐야? 그 인간 망종 새끼!”

장 형사의 인상이 단번에 구겨졌다. 어느 정도 소문이 안 좋은 놈인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피해 신고가 들어왔으니 나가 봐야지요.”

“젠장… 경찰이 되고 나서 제일 짜증 나는 게 이런 거야. 그런 새끼들까지 보호해야 한다니까.”

“솔직히 그런 놈들이 반성을 해야 하는데…….”

“김 형사, 제발 꿈 깨. 그런 새끼들은 죽어도 반성 안 해. 아니, 못 한다고 볼 수 있어. 그놈의 새끼가 당했다니까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야.”

“장 형사님… 학생들도 있는데 말이 좀…….”

“뭐가 어때서? 오리발, 기분 나빠?”

“아니요, 아니요.”

불량 학생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기어오를 때와 아닐 때를 정확히 구분하는 모습이었다.

“저놈 말고 박 형사님 뒤에 있는 학생요.”

“어이! 너 아직도 안 갔어?”

“네…….”

소심한 학생은 여전히 장 형사 뒤에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정말 가관이었다.

“그럼 우리한테 할 말이 생각난 거냐?”

소심한 학생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장 형사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질문을 던졌다.

“좋아… 학생 이름이 뭐지?”

“이진영입니다.”

“그래, 진영아,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해 봐. 아무리 봐도 진영이는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은… 제 친구를 자수시키려고 왔습니다.”

차분한 대화가 이어졌다. 소심한 학생도 안정을 찾았는지 장 형사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친구라고?”

“네.”

“친구 이름이 어떻게 되지?”

“…….”

소심한 학생은 중요한 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노련한 장 형사는 서두르지 않고 소심한 학생을 대했다.

“괜찮아. 친구를 위해서 여기까지 용기를 내서 왔잖아.”

“…….”

“진영아, 어서 말해 봐. 친구 이름이 뭐지?”

“유…상현…….”

“유상현? 많이 들어 본 이름 같은데?”

장 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낯익은 이름이었다. 유명 인사나 연예인이 아니라 주변에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저기, 장 형사님… 수사과 유 과장님 아들이잖아요.”

“맞다. 유 과장님 아들이 상현이었지. 그런데 진영아. 혹시… 그 상현이가 그 상현?”

소심한 학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련한 장 형사도 어찌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듯했다.

수사과 유 과장의 아들은 공부뿐만이 아니라 운동에도 일가견이 있다.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격이라, 학교는 물론이고 시市에서 받은 표창도 여러 개였다. 그렇기에 상현이란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은 것이었다.

“진영아, 미안한데 말이야… 상현이가 무슨 잘못을 했지? 공부도 잘하고 꽤 괜찮은 놈으로 알고 있었는데?”

장 형사와 유 과장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그렇기에 장 형사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현이는 많이 변했어요.”

“무, 무슨 소리지?”

“예전에는 약한 친구들을 돕고 그랬는데… 여름부터 애가 이상하게 변했어요. 이 지역 일진들의 짱이 바로 상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빨리 상현이를 잡아 주세요.”

“그, 그래… 아주 어려운 선택을 했구나. 그런데 말이야, 이건 매우 복잡한 일이라 말이야…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물론 유 과장님과 친분 때문도 있지만…….”

“형사님, 시간이 없어요. 빨리 상현이를 자수시켜야 한다고요. 아니면 정말 큰일 나요!”

“……?”

소심한 학생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상현의 신상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진영아, 무슨 일인지 차분하게 말해 봐.”

“차분하게 말할 시간이 없어요. 상현이가 자수하지 않으면 크게 다친단 말이에요. 정말이에요! 엄청난 괴물이 상현이를 노리고 있다고요!”

“괴, 괴물?”

“그런 게 있어요. 빨리 상현이를 자수시켜야 한다고요!”

“…….”

소심한 학생이 열변을 토했지만 장 형사는 당최 이해를 못 했다. 대체 어떤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인지… 조용히 눈만 깜박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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