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빈이 움직인 시간은 짧았지만 그 파장은 엄청났다.
본보기가 된 놈들이 한순간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몇 번의 타격음과 요란한 비명이 끝나고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다. 본보기를 면한 일진들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벽면에 등을 기대고 쓰러져 있는 박한철.
축 처진 어깨는 애처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에 어떻게 얼굴이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주르르.
땅바닥까지 이어지는 진한 핏줄기가 그 참혹함을 대변해 주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위로 삼아야 할 판이었다.
“어이, 입원할 정도로 맞아 보니 어때?”
“…….”
동빈은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물론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의식을 잃은 게 분명했다.
“쯧쯧쯧. 이놈은 욕밖에 잘하는 게 없었군.”
동빈은 혀끝을 차며 박한철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흐르는 물기가 너무 많다. 얼마나 공포에 질렸던지 놈이 실례까지 범한 것이다.
“전국구라고 설치던 놈이 말이야. 정말 더럽게 뻗었네.”
일진이라는 개념이 일본에서 왔기 때문인가? 대부분의 일진들이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약했다.
지금 쓰러진 박한철만 해도 전국에선 알아주는 일진이지만 동빈 같은 강자를 만나니 맥도 못 추고 쓰러졌다. 중간 과정을 말하면 더욱 어이가 없다.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치졸한 인간 군상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동빈은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은 듯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윽… 흐윽…….”
처량하게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여자는 아니었다. 동빈만큼이나 체격이 좋은 남자였다.
“어이,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울어!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크흑…….”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동빈의 음성을 듣고는 감정이 복받친 모양이다. 진짜 분위기 이상해진 것이다. 안 좋은 일을 당한 여자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과 비슷하게 흘렀다.
“억울하면 경찰에 신고해. 물론 너희들 방식대로 보복은 각오해야겠지. 다른 어깨까지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거든.”
“이 개새끼야! 내 인생 어떻게 할 거야!”
덜렁덜렁.
최민석은 덜렁거리는 어깨를 감싸 쥐고 대들었다.
어깨가 망가졌으니 얼마나 원통할 것인가? 상대가 김동빈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몸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네 인생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꾸악.
동빈은 가볍게 피하면서 최민석의 멀쩡한 어깨를 잡았다. 서로 엇비슷한 체격이었지만 싸움 실력은 상대도 되지 않았다.
“젠장. 놔! 이 씨팔놈아! 놓으란 말이야!”
“뭐야… 욕도 전염되는 거야?”
“씨발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인생을 완전히 망쳐. 야구 못하면 내 인생은 끝장이란 말이야!”
최민석의 말과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다. 심하게 몸을 비틀면서 원통한 듯 울부짖었다. 야구를 못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창창한 앞날이 보장되었기에 상실감이 더욱 컸지만 동빈은 마음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시끄러… 뭘 잘했다고 그렇게 떠들어! 너 때문에 신세 망친 여자가 몇인지 알아?”
화악.
놈의 머리를 뒤로 잡아채며 살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박살 내겠다는 뜻이었다.
“시, 씨발… 내가 그년들하고 똑같아? 몇 번 따먹힌다고 여자들이 죽냐고!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어깨를 부러트려, 이 미친 새끼야!”
최민석은 기죽지 않고 반박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어깨가 망가졌으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깨 좀 망가졌다고 죽냐? 열심히 재활 훈련 받으면 밥숟갈 뜨는 데는 전혀 지장 없거든.”
“간신히 밥숟갈 뜨는 손으로 어떻게 공을 던져!”
“그건 네 사정이지. 그리고 말이야, 사람마다 소중한 건 따로 있거든. 네놈이 어깨가 중요한 만큼 어떤 여자들은 다른 걸 소중히 여긴단 말이지. 그 다른 게 뭐냐면…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난해한 표현이라…….”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이 씹새끼야!”
“어라? 내 설명이 너무 두서없었나? 여하튼, 너는 아주 나쁜 놈이고… 너 같은 놈한테 내가 욕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
꽈악.
우득…….
동빈이 힘을 주자 거북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사람의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분명했고, 최민석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크악! 놔! 당장 놓으란 말이야, 씨발!”
나머지 어깨마저 부서질 위기였다. 최민석은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쳤다.
“욕하지 말라고 했지.”
“크흑… 시, 씨발은 취소라고 씨발!”
“또 씨발…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구나.”
우드윽.
“크악! 제, 제발 살려 줘… 제발!”
놈의 왼쪽 어깨가 비상식적으로 꺾였다. 동빈이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완전히 부러질 것이 분명했다. 오른쪽 어깨가 망가졌던 과정하고 매우 흡사했다.
“걱정 마. 밥숟갈 뜨는 데는 전혀 지장 없다고 했잖아…….”
“미, 미쳤어! 지, 진짜로 왼쪽까지 부러트릴 작정이야? 이미 오른쪽이 작살났잖아!”
최민석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었다.
김동빈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악질(?)이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진짜로 오른쪽 어깨마저 부러트릴 기세였다.
“너도 여자를 한 번 폭행한 것도 모자라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혔잖아? 이상한 사진으로 위협해서 말이야.”
“그, 그건… 그년이 밝혀서 그랬어. 저, 정말이야. 나도 얼마나 지겨웠는데… 그년은 완전 걸레였다고!”
“네놈이 걸레라며 몰아갔잖아. 법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위해서 말이야. 결국 그 여자는 모욕감을 참지 못하고 손목 그었다며!”
우드윽!
“끄악! 내, 내, 내, 내 어깨……!”
동빈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처음과 똑같이 무참하게 왼쪽 어깨를 부숴 버렸다. 제 기능을 상실한 최민석의 어깨는 힘없이 너덜거렸다.
“아, 안 돼… 이, 이럴 수는 없어…….”
최민석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덜렁거리는 양팔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비참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명심해. 그래도 여자가 살았기에 어깨만 부순 거야. 죽었다면 네놈의 목을 꺾어 버렸을 거야.”
“…….”
최민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반항은 아니다. 더 이상 운동을 못한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멍한 표정만 짓고 있다가 결국은 실신하고 말았다.
풀썩.
너무 억울했기 때문인가?
땅에 처박힌 최민석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매우 안타까운 장면이었지만 동빈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스윽.
“우선순위 두 놈은 정리됐고…….”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나머지 일진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매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대화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
놈들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로써 확실한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다시 출석을 불러 볼까? 아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부스럭.
동빈은 파일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A4용지를 반으로 나눈 크기의 종이들이었다.
“너희들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어서 와서 가져가.”
동빈은 종이 뭉치를 내밀었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반항은 아니었다. 동빈의 위력에 기가 질렸기 때문이다.
일진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만 할 뿐, 동빈 앞에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까 어서 가져가.”
우르르.
동빈의 말이 떨어지자, 그제야 일진들이 움직였다. 서로 먼저 종이를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었다.
“이거 내 거야!”
“무슨 소리야? 내 거란 말이야.”
선착순도 아니건만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조금은 황당한 상황이라 동빈이 나섰다.
“어이, 왜 싸워? 이름대로 가져가면 되잖아!”
“그, 그런가?”
쟁탈전을 벌이던 놈들은 뚱한 표정이 되었다. 잠시 멈칫했던 놈들은 서둘러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모두 집었지?”
“응.”
동빈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미 뻗어 버린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종이를 들고 있었다.
“너희들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네놈들의 악행이 낱낱이 적혀 있다. 잘 읽어 보고 억울한 것 있으면 말해.”
“이건 언제 다 조사했지? 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나, 나도…….”
일진들 모두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이런 자료를 모았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정확했다. 몇 가지 빠진 게 있기는 했지만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었다.
“적혀 있는 게 사실이면… 출입문 쪽으로 향한다.”
웅성웅성.
일진들은 동빈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양손으로 종이를 들고는 출입문을 향해 쭉 늘어섰다.
“그러고는 곧장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한다.”
일진들이 동시에 흠칫했다.
경찰서라는 말 자체가 싫은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뭐야, 자기 발로 나가기 싫어? 내가 도와줄까?”
“……!”
일진들의 눈은 커질 대로 커졌다.
도와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강은 파악한 반응이었다. 구급차에 실려 간다는 위협이었지만 스스로 경찰서에 가기도 싫었다.
일진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이처럼 사람들이 많은 경우 자신의 핸드폰이 맞는지 한 번쯤 확인하지만 이번은 예외였다.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이러한 구식 전화 벨소리는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아직도 작업 안 끝났냐?
스키장에 있는 주철의 목소리였다. 동빈이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거의 다 끝났어. 40분 내로 갈 수 있을 거야.”
-알았다. 도착할 때쯤 한번 전화해라.
“그래… 있다 보자.”
-자, 잠시만!
당황스러운 주철의 외침에 동빈의 손이 주춤했다. 핸드폰을 끊기 직전에 동작을 멈춘 것이다.
“왜? 이놈들만 처리하고 곧바로 전화할게.”
-그게 아니고 말이야…….
“뭔데 그렇게 뜸들이냐? 바쁘니까 빨리 말해 봐.”
-혹시… 주변에 과외 할 만한 애 없냐?
“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과외라니? 동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결코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지혜가 하도 과외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실력도 있고 한양여대면 괜찮은 학교잖아. 며칠 전 알바를 하던 곳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는데…….
“너 진짜 이상하다. 지혜의 과외를 네가 왜 신경 써?”
-그, 그러게…….
주철의 음성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정곡을 찌른 것이 분명했다. 동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추궁을 했다.
“뭔가 있구나? 그렇지?”
-에이… 씨! 관둬.
딸각.
너무 정곡을 찌른 것인가?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주철이 황급하게 전화를 끊은 것이다.
“뭐야, 이놈?”
동빈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끊긴 핸드폰을 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는데…….
구시렁구시렁.
그러고 보니, 동빈을 보는 일진들의 표정도 만만치 않았다. 진지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험… 험!”
괜히 무안해진 동빈은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러고는 특유의 무표정을 재빨리 회복했다.
“너희들은 운이 매우 좋은 편이야. 이곳에 나오지 않은 놈들은 내가 직접 찾아갈 예정이거든. 그때는 자수한다고 난리를 쳐도 소용없어.”
“…….”
일진들은 숨까지 조심스럽게 쉬면서 동빈의 말을 경청했다.
“그놈들한테는 대화가 전혀 필요 없거든. 놈들이 저지른 죄의 딱 2배의 고통을 돌려줄 거야. 아마도 경찰서보다는 병원을 많이 가게 될 거야.”
“……!”
일진들은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람의 말만 듣고도 숨이 막히는 기막힌 경험을 말이다. 그러면서 동빈과 싸우는 짓은 미친 짓임을 함께 깨달았다.
“뭐 해? 빨리 안 나가고… 정말 내가 도와줄까?”
와르르.
“씨발! 밀지 마!”
“씨발! 욕부터 하지 마! 동빈이 새끼는 욕하는 거 싫어하잖아!”
“우리 동네는 새끼는 욕 아니야, 새끼야!”
“떠들지 말고 빨리 좀 나가! 동빈이 움직이잖아!”
일진들은 앞 다투어 공장을 빠져나갔다.
자수해서 광명 찾는 것만이 동빈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