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으로 간 일행은 두 편으로 나뉘었다.
주철과 지혜, 석진과 가영. 물론 스키 실력대로 짝을 지은 것이다. 알맞은 코스에서 스키를 타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주철아, 너 과외 들어왔다며?”
“응, 어떻게 알았어?”
지혜와 주철은 리프트에서 내려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상급자 코스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누구는… 미라한테 들었지.”
“맞다. 미라는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너 과외하기 싫으면 나한테 주라.”
“뭐?”
“내가 요즘 용돈이 궁하거든. 미라 말로는 넌 과외하기 싫어서 죽으려고 한다던데?”
‘미친다. 언제쯤 거짓말에서 헤어난단 말인가!’
과외를 하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외치고픈 주철의 심정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철은 좀 더 보충하고 다듬어서 완벽한 거짓말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나한데 주기 싫은 거야?”
“그게 아니라… 과외를 받는 놈이 천하의 망나니야. 여자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소문이야.”
“괜찮아. 그런 애들 가르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어.”
“절대 안 돼. 그놈이 워낙 잘생겨서 또 문제거든. 얼굴 엄청 잘생겼지, 집안 빵빵하지. 가르치는 여대생들이 먼저 흑심을 품는다니까? 정말이야.”
“난 연하는 별론데?”
“…….”
오지혜의 표정을 보니 반드시 과외를 하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쳤다. 아무리 안 좋은 소리를 해도 소용없었다. 물론 문제의 학생은 바로 주철이 자신이었다. 둘은 어느새 상급 코스의 출발 지점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지혜야, 그럼… 내기로 결정할까?”
“내기?”
오지혜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래, 저 아래에 있는 석진이 찾기. 네가 먼저 찾으면 과외 소개해 주고… 만약 내가 먼저 찾으면 포기하는 거다.”
“좋아, 도전을 받아 주지!”
석진과 윤가영은 초급자 코스에 있었다. 누가 빨리 내려가느냐가 중요했고 약간의 이벤트로 사람을 찾는 것까지 포함한 것이다.
“야, 야, 야, 너무 앞으로 나갔잖아. 대결은 공평해야지.”
“쫌스럽긴… 너도 조금 내려오면 되잖아.”
내기가 성립되자 슬슬 신경전이 벌어졌다. 주철과 오지혜는 고글을 쓰고 출발 준비를 끝냈다.
“주철이, 넌 안 된다니까? 아까도 내가 먼저 내려갔잖아?”
“아까는 보드였고 지금은 스키로 바꿨잖아.”
“좋아, 지고서 딴소리하기 없기?”
“물론이지! 남자가 한 입 가지고 두말하겠어?”
둘 다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남녀의 체격 차이를 떠나서 박빙의 승부가 예고되는 게임이었다. 오지혜는 거의 최상급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에 동시에 나가는 거다. 하나…….”
오지혜가 카운트를 했고 주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승부욕에 불타고 있었다.
“둘…….”
폼을 잡은 주철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눈을 짓치며 뛰쳐나갈 태세였는데…….
“둘 반…….”
“이런…….”
주철은 손까지 허우적거리며 몸을 고정시켰다. 둘 반은 예상치 못한 숫자였다. 무안해진 마음을 달래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셋!”
파파팟.
“에이… 씨!”
잠시 주춤한 것이 실수였다.
오지혜는 하얀 눈을 박차며 잽싸게 튀어나갔다. 반 반자 늦게 반응한 주철은 열심히 뒤쫓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