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5/224)

시내의 중심부를 벗어나자 썰렁한 풍경이 펼쳐졌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고 낡은 공장들이 전부였다. 그나마 제대로 운영되는 공장도 없었다.

발길이 뚝 끊긴 행인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간판만 걸려 있을 뿐 문을 닫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웅성웅성.

이상한 일이다.

폐쇄된 식품 공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공장 직원들이 무력 파업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슬래브 지붕의 건물 안에는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쇠 파이프와 각목 등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들고는 전의를 불태웠다. 이상한 것은 대부분이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씨발… 김동빈 새끼가 뭔데? 30명이 덤벼도 못 당했다는 게 말이나 되냐, 씨발! 졸라 겁먹으니까 그렇게 당하는 거야. 남자들이 쪽팔리지도 않아? 맞고 쓰러지면서 한 대씩 까란 말이다. 우린 한 대지만 동빈이 새끼는 20대란 말이지! 그렇게 계속 까 봐, 어떻게 될 것 같아? 결국은 쪽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거야, 씨발!”

이마가 심하게 튀어나온 학생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려는 말투였지만 주변의 반응은 가히 별로였다.

“그걸 누가 모르냐? 알고도 당하니까 문제지…….”

“맞아, 그 새끼는 완전 괴물이야.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고! 50명이 넘게 덤벼도 깨졌다는 소문도 있어?”

튀어나온 이마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소용없었다.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다 못해 땅으로 꺼지기 직전이었다.

“씨발! 그런 안이한 자세로 싸우니까 깨지는 거야! 죽기 살기로 덤벼 봐. 우리가 그놈을 못 당할 것 같아?”

“글쎄…….”

“에이! 씨발 것들아, 이럴 거면 여기는 왜 나왔어? 동빈이 새끼 말대로 경찰에 자수하란 말이야!”

튀어나온 이마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거친 욕을 연달아 퍼부으며 주위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좀 그렇잖아. 어떻게 동빈이와 협상을 벌여서…….”

“관둬라, 이 새끼들아! 나 혼자 김동빈 새끼 까 버린다.”

“너 제정신이야?”

“씨발!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김동빈 새끼가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단단히 잘못 걸렸어. 내 별명이 괜히 미친개인지 알아?”

“역시, 한철이는 다르구나!”

다른 학생들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튀어나온 이마를 바라보았다.

박한철.

강원도를 주름잡는 대표적인 일진이었다. 이제야 조금씩 반전의 기미가 보였다. 한없이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직전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다.

덜컹.

“……!”

공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박한철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동빈과 맞붙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기백은 찾을 수 없었다. 출입문을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주춤주춤.

박한철의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멋지게 동빈을 상대하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형편이었다.

“에이… 씨팔! 김동빈 새끼!”

화악.

출입문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성공했다. 앙칼진 목소리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동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 미안…….”

“…….”

잔뜩 겁먹은 학생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도 잘 아는 일진 중의 하나였다. 긴장이 탁 풀린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분주했다. 가장 놀란 것은 박한철이었고 곧바로 분풀이가 이어졌다.

“씨발! 놀랐잖아, 이 개새끼야. 일찍 좀 다니면 어디가 덧나, 이 씨팔놈아! 학교 다닐 때도 졸라 지각만 하더니 여기서도 늦고 지랄이야… 이 염병할 새끼야!”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쏟아 내며 망신을 당한 일을 보상받으려 했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기에 지각한 일진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미, 미안…….”

“뭐가 자꾸 미안이야, 이 개새야! 지금 김동빈 새끼가 쳐들어와서 난리도 아닌데 말이야. 나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쩔 뻔했어, 이 개노무 새끼야!”

“나, 나도 어떨 수 없는 사정이…….”

“이런 씨팔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너 진짜 죽고 싶어!”

“어이, 너무 욕하지 마라. 나 때문에 늦었거든.”

“……!”

누군가가 겁먹은 학생 뒤에서 튀어나왔다. 체격이 상당히 좋은 남자였고 키가 190은 족히 되는 듯 보였다.

“기, 기, 기, 김동빈!”

“씨발! 저 새끼가 김동빈이야? 졸라 큰 새끼네!”

공장 안 학생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큰소리쳤던 박한철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모두 참석했는지 출석부터 불러 볼까.”

“……?”

동빈은 출입문을 닫고는 인쇄물을 꺼냈다. 그런데 학교도 아닌데 출석이라니? 중앙으로 옹기종기 모여든 일진들은 무슨 뜻인지 짐작조차 못 했다.

“뭘 그리 쳐다봐? 이상한 거 아니니까… 내가 부르면 대답해. 어디 보자… 학생 조직 강원도 지부장 박한철 있냐? 별명이 미친개라고 하던데?”

“나, 나다… 이 씨팔놈아!”

이마가 심하게 튀어나온 학생이 손을 들었다. 괜히 큰소리만 치고 욕 엄청 잘하는 그놈이었다.

“응… 역시 너였구나.”

“그, 그래… 이 씹새끼야. 어서 덤벼, 씨발!”

찌릿.

동빈은 대답 대신 가볍게 인상만 썼다. 말 못하는 개에게도 통하는 살기가 미친개(?)에게 쏟아진 것이다.

흠칫.

역시나 미친개에게도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박한철은 은근슬쩍 동빈의 시선을 외면했다. 꼬랑지를 내리는 개하고 비슷한 행동이었다.

“미친개한테 경고하는데… 다시 한 번 욕하면 박살을 내 버린다.”

“…….”

박한철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무의식적으로 욕이 튀어나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진짜 미친개였구나. 갈취와 협박은 기본이었고. 수도 없이 학생들을 패고 다녔네? 그중 2명은 아직도 병원 신세고…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애들이 5명… 퇴원한 애를 또 괴롭혀서 자살하게 만든 적도 있네?”

“그놈이 인사를 안 하잖아. 예의가 없어서 버릇 좀 고쳐 준 거지… 그, 그놈은 욕 아니지? 그렇지?”

박한철은 힘겹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 언어 순화를 해야 하는 것이 가장 고역이었다.

“기가 막혀서… 너는 선생님한테도 인사 안 하는 망나니라며? 그런 놈이 예의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나?”

“…….”

박한철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동빈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다른 일진에게 관심을 돌렸다.

“여기에 아주 유명한 야구 선수 있지? 포지션은 투수고 저번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힌 최민석. 대학뿐만이 아니라 프로에서도 탐낸다고 하던데?”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학생이 일어섰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었고 신장도 185는 넘어 보였다.

“운동 잘하는 건 좋은데 여학생들은 왜 건드렸어?”

“난 잘못 없어. 그년들이 먼저 꼬리 쳤어.”

“그래, 나도 너 같은 새끼하고는 오래 대화하기 싫어. 여하튼, 다시는 운동 못하게 만들어 줄 텐데… 이유는, 네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지.”

“무, 무슨 소리야? 이미 법적으로 끝난 거야!”

최민석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다시는 운동을 못하게 하다니? 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난 무척 머리가 나빠서 법을 잘 몰라. 사실 반에서도 거의 꼴등이야…….”

“공부 못하는 게 자랑이야?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 난리야?”

“맞아! 이 김동빈 씨발새끼.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지랄이야! 우리가 너한테 피해 준 적 있어?”

분위가 점점 거칠어졌다. 박한철까지 합세하여 동빈을 위협한 것이다. 물론 동빈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날 이해시켜 봐. 법이 뭔데? 사고를 친 놈들은 모두 풀려나고 피해자들은 평생 고생하잖아? 내가 너무 멍청해서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거든!”

“…….”

“여기 있는 놈들은 대부분 비슷한 케이스야. 날 이해시키는 놈은 조용히 보내 줄게.”

“…….”

“뭐야? 1명도 없는 거야?”

동빈만 목소리를 키우는 상황이었다. 20여 명의 일진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진짜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을 약간 줄 테니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박한철.”

“왜… 왜?”

박한철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동빈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욕하면 박살 낸다고 경고했지.”

“흡!”

뒤늦게 입을 막았지만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무력을 쓰기로 결정했는지 동빈의 눈빛이 달라졌다. 완벽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박한철 앞에 섰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먹을 치켜들었다.

“조, 조, 조, 졸라…….”

박한철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불안한 심정을 드러냈다.

“걱정 마. 네놈이 입원할 병원은 이미 알아 놨거든!”

부웅∼.

“이런… 씨팔!”

박한철은 동빈의 주먹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순간,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퍼억!

거북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동빈의 파괴력은 일진들이 상상도 못 하는 경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반쯤 얼었던 놈들을 완전히 공황 상태로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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