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아메리칸 핏불의 멱 부분을 잡아챈 것이다. 그러고는 힘껏 집어 올리기까지 했다.
깨갱!
얼마나 무는 힘이 강한지 핏불과 함께 애완견도 딸려 올라왔다.
축 늘어졌던 애완견의 비명이 다시 시작되었고 핏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 학생 뭐 하나?”
“뭐 하긴요? 이놈을 떨쳐 내야지요.”
“아! 소용없다니까 그러네. 이놈은 말이야, 한 번 물면 죽어도 놓지 않는다고!”
“정말 그럴까요?”
화악.
동빈은 다른 쪽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주먹을 꽉 움켜쥔 모습이 한 대 치려는 모습과 흡사했다. 패서라도 떼어 놓겠다는 뜻이었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투견 주인은 부질없다는 반응이었지만 주철은 달랐다.
“동빈아! 그 개 열라 비싸!”
주철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친구의 파워를 알고 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맨주먹으로 황소를 때려잡는다는 괴이한 소문이 인터넷에 파다할 정도였다.
“걱정 마. 죽이진 않을 테니까.”
스윽.
동빈은 번쩍 치켜든 주먹을 위협용으로 사용했다. 핏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는 눈싸움을 벌인 것이다. 사람을 위협하는 장면과 흡사했다.
“입 벌리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린다.”
“너 미쳤냐? 그냥 주먹으로 쳐!”
주철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개하고 대화를 시도하다니? 말이 통할 리 만무했고 진짜 정신병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핏불이라고 했지. 좋은 말로 할 때 놔라.”
“동빈아, 제발 그만 해. 괜히 나까지 이상한 놈 취급 받잖아!”
주철은 개 주인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느꼈다. 동빈이 때문에 자신도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생긴 것이다.
“당장 입에 문 거 놓지 않으면 주먹 날아간다.”
“동빈아! 제발∼.”
주철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차 안에서 머리를 심하게 찧은 것이 문제였나? 아무리 봐도 제정신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끄응.
“……!”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불굴의 투지로 유명한 아메리칸 핏불이 꽁무니를 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설설 긴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끄응끄응…….
핏불은 동빈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핏불의 입에 물려 있던 애완견은 곧바로 풀려날 수 있었다.
“아롱아! 괜찮아!”
애완견 주인은 피범벅이 된 개를 끌어안았다. 뒷덜미를 물려서 다행이었다. 울대가 있는 아랫목을 물렸다면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저놈이 전생에 군인이 아니고 개장수였나? 어떻게 개들조차 기겁을 하고 말이야.”
주철은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동빈은 눈빛만으로 복잡한 개판(?)을 정리한 것이었다.
“뭘 그리 중얼거리냐?”
“개 다루는 법은 어디서 배웠냐? 나도 좀 가르쳐 주라.”
“내가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 심오한 내공을 쌓아야 가능하다.”
“그래, 너 잘났다.”
“물론 잘났지. 개들도 아는 사실을 이제야 아셨나?”
동빈의 기고만장은 극으로 치달았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주철이 앞에서 큰소릴 칠 수 있겠는가. 최대한 거들먹거리며 주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번 기회에 TV나 한번 나가 봐라. 눈빛만으로 개들을 제압하는 고딩 출현! 개판 되고 좋지 않냐?”
주철은 동빈의 능력을 폄하하려 했다. 약간은 비꼬는 말투로 반박했지만 동빈은 여유롭게 대처했다.
“정말 그럴까? 괜찮은 발상 같은데… 솔직히 개들이 내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거든. 우리 집에 경비견을 키우지 않는 것도 모두 나 때문이야. 이것도 신비한 능력 아닐까?”
“너 진짜로 미쳤냐?”
동빈이 심각하게 나오자 주철이 찔끔했다.
정말로 TV에 나가는 것까지 고려하는 것일까? 신비한 능력까지 떠벌리는 게 수상했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주철의 의심은 점점 커졌는데…….
“놀랐냐? 농담이다, 농담.”
“뭐야, 이놈은 농담하고 진담하고 구별이 안 가니…….”
이번 말다툼은 동빈의 완승이었다.
주철은 고개까지 설레설레 저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승자만의 여유인가? 동빈은 주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다.
“짜식! 진짜 놀랐구나.”
“놀라긴 누가 놀랐다고 난리야? 그나저나 정말 모든 개들이 너만 보면 설설 기냐?”
놀람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정말 동빈에게 그런 요상한 능력이 있는 것인가? 주철은 정색을 하며 반문했고 동빈 역시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진짜 신기하네? 약 올리는 게 아니고… 정말 개장수 하면 딱이겠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개장수만 나타나면 조용해진다고 하잖아.”
주철은 동빈의 새로운 능력에 경탄을 표했다. 물론 부럽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참, 희한한 재주도 있구나 하는 표현이었다.
“나도 개장수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그런데 주철아, 개들이 왜 개장수만 피하는 줄 알아?”
“글쎄? 개한테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자신의 죽음을 안다는 소리도 있고…….”
“다 틀렸어. 개장수가 더럽고 치사해서 외면하는 거야. 뭐 할 게 없어서 저 지랄 하고 있나… 불쌍한 인간이니 내가 조용히 잡혀 주마. 개들이 아량을 베푸는 거야.”
“뭐라고?”
주철은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개가 불쌍해서 개장수를 봐주다니? 설마, 동빈이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인가? 오늘따라 동빈의 행동이 매우 수상하다. 지금도 괜히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를 부딪친 후유증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