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1/224)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조폭들의 근거지.

무시무시한 명성에 맞지 않게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중세의 성벽을 연상케 하는 높은 담장과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철문. 그리고 서양 귀족들의 대저택을 닮은 고풍스러운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동빈이가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지?”

묵묵히 앉아 있던 장군이 차창 밖을 응시하며 물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했던 조폭들의 근거지는 꽤나 오랫동안 침묵에 빠져 있었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됐습니다, 장군님.”

“그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군.”

장군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중얼거렸다. 차창 밖에서 시선을 떼고는 뒷자리 깊숙이 몸을 기댔다. 어찌 보면 추워서 몸을 움츠린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장군님. 히터를 올릴까요?”

“나는 괜찮아. 추우면 온도를 더 올리게.”

“아닙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운전기사는 히터를 조절하려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다시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전방을 주시했다.

“자네… 여행은 좋아하는가?”

“……?”

장군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행? 조금은 뜬금없는 내용인지 운전기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여행을 좋아하느냐 물었네.”

“글쎄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운전기사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좋거나 싫거나, 딱 잘라서 표현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니?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나?”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호기심을 느낀 장군은 앞자리로 상체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운전기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장군의 지대한 관심이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동빈이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 여행을 좋아하느냐 물었는데… 왜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지?”

“정확히 말하면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때는 여행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거의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운전기사는 상당히 밝은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꾸준히 보냈다.

“3학년 1학기인가… 군에서 영장이 나왔을 때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좋다! 휴학계 내고 당장 전국 일주를 떠나자. 그러고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인척들과 친구들을 찾았지요. 영장 나왔다고 하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대해 주더군요.”

“민간인 신분으로는 마지막 여행이었군.”

“맞습니다. 전국 일주를 마치고 곧바로 입대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적한 곳을 돌아다니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훈련받으면서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깊은 골짜기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밥을 먹으려면 산을 2개나 넘어야 하고… 몇 달 동안 민간인은 구경조차 못 했습니다. 훈련은 힘들고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기분… 그때는 정말 지겨워 죽는지 알았습니다.”

운전기사의 얼굴이 점점 변했다. 그다지 좋은 추억은 아니었는지 고개까지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게 지겨웠다면서 왜 직업군인이 되었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행군을 너무 심하게 해서 무릎까지 고장이 났는데… 제대할 즈음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나더군요. 저는 몰랐는데 다른 동기들이 저보고 군대 체질이라고 치켜세우고… 여하튼 직업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가끔은 와이프와 아들놈하고 여행을 하는데 그때는 또 새로운 기분이 나더군요.”

장군은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했다는 반응이었다.

운전기사도 이야기를 마치고 전방을 응시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상황에서 장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동빈이가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말이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은 동빈이입니다. 고작 국내 여행 정도로 고민하시다니요?”

“물론 동빈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건 아니야. 이번 여행으로 어떻게 변할지 불안해서 말이야. 더 이상 거칠어지면 위험하거든.”

장군은 자신의 통제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동빈이 염려스러웠다. 이상한 일에 휘말려 폭주라도 하게 된다면? 자칫하면 전국이 피바다로 물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민간인이 된 동빈이의 첫 번째 여행이군요.”

“맞아…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이지. 미안하지만, 봉투 한 장만 주게나.”

장군은 팔짱을 풀면서 손을 내밀었다. 경조사 참석이 잦은 장군이었기에 차량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봉투가 비치되어 있었다.

운전기사는 아무것도 써 있지 않는 봉투를 전해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장군님.”

“고맙네.”

봉투를 넘겨받은 장군은 지갑을 꺼냈다. 동빈에게 용돈을 줄 모양이다. 몇 장의 수표를 봉투에 넣으려 하다가 몇 번이나 주춤했다. 얼마를 넣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너무 많은 돈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금전적으로 약간은 빠듯한 여행이 재미있습니다.”

“그럼… 이 정도면 되려나…….”

장군은 고액의 수표를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지갑에 있던 현금만 골라서 봉투에 넣었다.

“장군님, 주제넘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동빈이한테는 용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뜻이지?”

봉투를 한 번 접은 장군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조금은 애매한 말이었다.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관심을 말하는 것인가?

장군은 운전기사의 말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입니다. 새로운 풍경을 접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는 힘겨운 삶에 대한 휴식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미래를 대비하는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나 자신을 찾았던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게.”

“동빈이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전라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장군은 이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약간은 껄끄럽다는 반응이었지만 운전기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젠 동빈이도 자기 자신을 찾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완벽한 사회인으로 거듭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지 않은 과거를 일부러 들출 필요가 있을까?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말이야… 괜한 역효과가 나지 않을지…….”

“동빈이의 성격으로 볼 때,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해지겠지요.”

“자네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장군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남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중시하는 그였지만 아들에 관해서는 신중했다. 한 번 실패를 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메모지하고 볼펜 좀 주겠나?”

한참이나 고심하던 장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동빈에게 뭔가를 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장군님.”

운전기사의 반응은 빨랐다. 장군의 반응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말보다 글이 편하군.”

필기도구를 전해 받은 장군은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동빈의 과거와 관련된 일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스윽스윽.

조용한 분위기의 차량 내부.

종이 위를 지나치는 볼펜 소리만이 분주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타앙!

“…….”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멀지는 않은 곳이다. 바로 옆에 있는 조폭들의 근거지. 볼펜을 쥐고 있던 장군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는데…….

스윽스윽.

잠시 주춤했던 장군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이러한 총소리에 너무 익숙해서 그러는 것인가? 장군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메모지에 글을 적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운전기사 또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조폭들의 근거지로 시선을 돌린 것이 고작이었다.

덜덜덜덜.

눈발은 점점 강해졌고 차량 배기관에서 내뿜는 연기는 점점 짙어졌다. 나직한 엔진 소리는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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