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9/224)

위험한 고딩

창성 파이낸셜 대표 박천수.

지금은 잘나가는 사업가로 탈바꿈했지만, 한때는 매스컴에 자주 등장했던 대조직의 행동대장이었다. 폭력 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고 나와, 상가 개발로 많은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다.

“정말 믿을 수 없군.”

박천수는 CCTV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고급 의자에 몸을 푹 기댄 채,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에 온 시선을 집중했다.

“다른 조직의 대대적인 습격인 줄 알았더니…….”

요즘은 조직 간의 영역 싸움이 사라졌다 해도 무방했다. 이권에 따라 뭉치는 추세였고, 문제가 생겨도 타협을 우선으로 했다. 비상사태라 하여 잠시 긴장했지만, 화면 속에 보이는 침입자는 고작 1명이었다.

“저놈 괴물이야, 괴물…….”

박천수는 기가 막힌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CCTV 화면이 아니라, 터무니없는 액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10여 명이 넘는 부하들이 맥을 못 추고 쓰러지는 형편이었다.

“혼자 보긴 아깝군. 자네도 이리 와서 구경 좀 하게.”

“네, 보스.”

박천수는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을 불렀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사내가 박천수 옆으로 다가섰다. 20대 후반의 나이였고 185 정도의 키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였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대단한 고수입니다.”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화면 속의 인물은 격전을 벌이며 2층 계단을 통해 올라오고 있었다. 위에서 잡은 화면이었지만 손과 발의 움직임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엄청난 순간 동작에 파괴력까지 갖춘 실력자였다.

“그냥 양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저놈은 어떤 무술을 익혔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특공 무술 계통 같습니다.”

“특공 무술?”

박천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도 특공 무술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고, 직접 싸워 본 경험도 있지만 저 정도의 위력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특공 무술은 아닙니다. 국가에서 허락한 극소수의 군인들만 익힐 수 있는 무술이 따로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호원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침입자는 2층 계단을 다 오르고 3층으로 접어들었다. 화면이 잠시 깜박이더니 다른 카메라의 화면이 이어졌다.

“상당히 흥미로운데… 자네가 나서면 이길 수 있겠나?”

“싸워 봐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언제나 똑같은 소리만 들으니…….”

경호원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상대와 싸워도 이긴다는 장담을 하지 않는다. 결과로 보여 줄 뿐이었다.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붙어 보겠습니다.”

“아니야. 잠시만 기다려 보자고. 아무래도 저놈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거든.”

모니터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침입자는 3층을 올라와서 복도로 접어들었다.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우당탕탕.

이제는 효과음까지 들려서 더욱 생동감이 넘쳤다. 침입자는 3층을 지키던 경호원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퍼억.

“크악!”

날카로운 타격음과 요란한 비명.

3층 경호원들이 침입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2명이 쓰러진 것이다. 한 놈은 어떻게 당했는지 파악도 못 할 정도였다. 나머지 3명이 복도를 막고 있지만, 그리 미더워 보이진 않았다.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눈치를 보는 형편이었다.

“우리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지.”

“네, 보스.”

박천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러고는 출입문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경호원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상태. 만반의 자세를 취하고 침입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푸악.

쿠웅!

“커억…….”

누군가 무참히 벽면에 부딪친 모양이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거북한 비명이 이어졌다. 침입자의 위치가 점점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와장창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바로 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침입자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은 계속되었다.

요란했던 소리가 일시에 멈춘 상태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침입자가 그냥 지나간 것인가?

“……?”

경호원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침입자가 들어올 시간이 넘었다는 표시였다. 박천수도 이상하여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똑똑똑.

정중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우악스럽게 3층까지 밀고 왔을 때는 언제고?

경호원은 황당한 눈빛으로 박천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서지 않는 표정이었다.

“매우 재미있는 놈이군.”

박천수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침입자가 아닐 수 없었다. 위험한 놈이라는 마음보다 호기심이 앞서는 순간이었다.

“그냥 열어 줘.”

“네, 보스.”

박천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경호원이 문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스르륵.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동빈은 서서히 열리는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금씩 넓어지는 문틈을 보면서 내부 상황을 살폈다.

‘출입문에 하나… 책상 뒤에 하나…….’

동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상당히 넓은 방이었지만 인원수는 2명이 고작이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동빈은 초대받은 손님처럼 당당하게 걸었다.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동빈은 박천수와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다다라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 주인 되십니까?”

“섭섭한데…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찾아온 건가?”

박천수는 도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동빈을 흘겨보는 눈빛은 매서웠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좋은 일로 찾아온 게 아닙니다.”

“과격하게 쳐들어왔을 때 짐작은 했지. 그래, 정확히 무슨 일로 온 것인가? 무술 실력 뽐내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박천수는 도도했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의자 등받이에 기댔던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동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열심히 공부만 하는 학생을 왜 자꾸 건드립니까? 그쪽이 보낸 놈들 때문에 성적이 얼마나 떨어진지 아십니까?”

“잠깐… 지금 성적 떨어졌다고 행패 부린 건가?”

박천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런 가당찮은 이유로 여기까지 쳐들어왔다는 것인가? 하도 기가 막혀서 기운이 쑥 빠졌지만 동빈의 하소연은 계속되었다.

“한두 번이면 참겠는데… 이거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고 말이지요. 이러다 대학 못 가면, 당신이 내 인생 책임질 겁니까?”

“뭐, 뭐야? 게다가 고삐리였어?”

박천수는 갑자기 목덜미가 뻐근해짐을 느꼈다. 폭력 조직이 고등학생 1명을 감당하지 못하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박천수는 경호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봐, 저놈은 군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 않았나?”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했나 봅니다.”

경호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개망신은 면치 못하겠군. 알아서 처리해.”

“네, 보스.”

박천수는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았다. 잘나가는 조직의 보스가 고등학생과 협상을 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부모님 모셔 오라고 할 수도 없으니… 뒤처리를 경호원에게 맡기고 조용히 빠지려 했다.

“경고하는데… 고등학생이라고 무시하면 큰코다칩니다.”

박천수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 동빈의 목소리도 변했다. 한층 낮아진 음성으로 응수하자 박천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 바닥에선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나도 네놈 나이 때 별짓 다 하고 다녔거든. 너무 혈기가 왕성한 놈은 밟아 놓고 시작하는 것이 내 지론일 뿐이야.”

“이거, 반갑다고 해야 하나요?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빈 또한 말보다는 주먹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경호원부터 처리해 보라는 뜻이었기에, 한 발짝 물러서며 자세를 잡았다.

“…….”

상대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동빈은 조심스럽게 경호원의 모습을 관찰했다. 편한 자세로 중심을 잡고 양 주먹을 가볍게 쥔 상태. 막싸움으로 다져진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

경호원 또한 입을 꽉 다물고 동빈을 관찰했다.

그 역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혀 빈틈이 없는 동빈의 자세를 보고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자 보스의 호기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호… 상당히 흥미로운데? 이것이 진짜 고수들의 대결인가?”

박천수는 동빈과 경호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싸움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이런 대결은 흔치 않았다. 살기 어린 눈빛부터 달랐다. 웬만한 조직 폭력배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괜히 나까지 떨리는데…….”

박천수는 손바닥에 밴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지만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떻게 저런 집중력을 유지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흠칫.

동빈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경호원을 노려보던 시선을 잠시 돌린 것이다. 마침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인가? 박천수는 흥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었는데…….

쾅쾅쾅쾅.

“보스! 괜찮으십니까? 보스!”

요란한 문소리에 박천수의 맥이 풀리고 말았다. 자신을 걱정하여 달려온 것이 확실했지만, 전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이 새끼들… 참, 빨리도 왔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는 푸념이었다. 동빈이 다른 조직에서 보낸 킬러였다면?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쾅쾅쾅쾅.

“보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보스!”

“진짜 여러 가지 한다.”

박천수는 귀찮은 듯 몸을 일으켰다. 동빈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경호원에게 처리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쾅쾅쾅쾅.

“보스! 저희들이 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조용히 해, 이것들아!”

박천수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늦게 온 수하들이 짜증 났다기보다는 중요한 대결을 방해한 것이 문제였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기에 꽤나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내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말고 싸우라고.”

박천수는 개의치 말라는 시늉을 보이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물론 괜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경호원과 동빈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사르륵.

출입문에 도착한 박천수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하고 꺼져.”

“보, 보스… 용서해 주십시오. 겨, 경보기가 울리지 않아서…….”

한층 낮아진 보스의 목소리에 수하들이 움찔했다.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보스의 반응은 피바람을 예고하는 전조였다.

“이것들의 귓구멍이 막혔나? 왜 말귀를 못 알아듣고 난리야!”

“보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자꾸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꺼져. 지금은 손님이 와 있으니 나중에 이야기한다. 주둥아리 놀리지 말고, 당장 꺼져!”

“아, 알겠습니다, 보스.”

박천수의 수하들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더 이상 보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쯧쯧쯧…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박천수는 혀끝을 차며 중얼거렸다. 허둥지둥 멀어지는 수하들의 모습이 정말 못마땅하게 보였다.

미끄덩- 쿵!

“얼쑤?”

어떤 놈은 잘 뛰다가 넘어지기도 했다. 참 가관도 아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박천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딸깍.

“내가 미친놈이지. 저런 새끼들을 부하라고 데리고 있으니…….”

박천수는 머리까지 설레설레 흔들었다. 고등학생에게 얻어터지는 놈들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의 불편한 심기는 애먼 곳까지 튀었다.

“언제까지 노려만 보고 있을 건가? 이젠 싸울 때도 됐잖아?”

박천수는 출입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여전히 침묵만 흐르고 있으니, 아직도 기 싸움만 벌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무리 고수들의 대결이라도…….”

푸악!

묵직한 타격음에 박천수의 표정이 변했다.

마침내 충돌한 것이다. 박천수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돌아갔다.

“……?”

그런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 그림자가 박천수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아니, 계속 박천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쿠앙.

검은 그림자는 출입문과 부딪쳤다. 문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이 느껴졌고, 박천수의 눈은 한없이 커진 상태였다.

“자, 자네 괜찮은 것인가?”

“…….”

대책 없이 날아온 것은 경호원이었다.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출입문에 등까지 부딪친 것이다.

“믿을 수 없군. 진짜로 자네가 당한 거야?”

박천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재차 물었다. 경호원이 몸을 틀지 않았다면 자신과 충돌했을 위기였다.

“우선은 피하십시오!”

화악.

경호원은 다급하게 보스를 밀쳐 냈다.

“무, 무슨 일이기에…….”

얼떨결에 밀려난 박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물론 귀찮아서 경호원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보스의 안전을 위한 필사적인 배려였다.

후앙.

“……!”

무언가 박천수의 눈앞을 스치고 지났다.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파괴력이 느껴졌다. 거대한 통나무라도 날아온 것인가? 출입문에 부딪치는 충격 또한 엄청났다.

와지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꺼운 출입문이 쪼개졌다. 연이은 충격에 박천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못 볼 것을 봤는지 반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이, 이게 도대체…….”

박천수의 시선은 동빈의 뒤꿈치에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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