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개시
차량에서 완전히 내린 해결사의 모습이 이채롭다.
공포와 잔인의 대명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170정도의 키에 바싹 마른 체형이었다.
짧은 머리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고 볼은 쏙 들어간 얼굴이었다. 추위에 약한 것인지 두터운 파카에 털목도리까지 걸친 상태였다. 물론 양손은 파카 주머니에서 빠져나올 줄 몰랐다.
세에엥.
“어이∼ 춥다.”
부르르.
잔인보다는 불쌍에 가까웠다.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는 심하게 몸을 움츠렸다.
“형님, 이쪽입니다.”
“알았어. 곧 갈게. 어이∼ 춥다, 추워.”
총총총총.
해결사는 잔뜩 웅크린 자세로 뛰어왔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게 싫은지 반쯤 몸을 튼 자세였다. 중간에 넘어지지 않고 도착한 것이 용할 정도였다.
“자네가 김동빈인가?”
해결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었다. 몸을 움직여 추위를 이기려는지 이리저리 상체를 흔들었다. 한마디로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제가 김동빈 맞습니다.”
“그래? 진짜 학생인가? 몇 학년인데?”
“…….”
“어우, 추워∼ 빨리 말해.”
동빈의 대답이 늦어지자 해결사가 독촉했다.
애원하는 듯한 느낌이 담겨 있는 음성이었다. 처연한 목소리가 안타까워서라도 대답을 해야 했다.
“명성고 2학년입니다.”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학생의 눈빛은 아닌데… 아주 무섭고 두려움을 모르는 눈빛이야.”
“해결사가 아니라 점쟁입니까?”
“내가 관상은 보지만 점쟁이는 아니지… 그나저나 사람 여럿 잡았겠는데? 온몸에서 살기가 흘러…….”
해결사의 수상한 행동은 계속되었다. 이리저리 동빈을 살펴보고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긴? 의뢰받은 상대를 관찰하고 있잖아. 저놈의 균형 잡힌 체격 좀 봐. 이렇게 완벽한 체형은 처음이야. 저건 예술이야, 예술.”
“형님, 제발…….”
행동대장이 나서도 소용없었다. 해결사는 동빈의 품평회를 멈추지 않았다.
“아야∼ 주먹에 굳은살 박인 것 좀 봐. 저건 무술을 오랫동안 연마했다는 뜻이야. 이런 날씨에 맨손이라니 학생은 춥지도 않나? 난 추워 죽겠는데?”
“형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멍청한 놈…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가?”
“네?”
행동대장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결사가 이런 황당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의 결론은?
“복채가 적다는 뜻이야. 내가 받은 수고비로는 감당할 상대가 아니란 말이지.”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 것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얼마를 더 원하십니까?”
문제는 돈이었다. 조직 폭력배들이 제시한 금액에 비하여 상대가 턱없이 강하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처음 약속한 금액의 다섯 배.”
“혀, 형님…….”
“10원이라도 깎는다면 의뢰는 거절이야.”
“…….”
산 넘어 산이다. 처음 제시한 금액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5배를 올리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일부터 여행 떠나서 시간이 없거든. 빨리 결정해.”
동빈까지 나서서 행동대장을 압박했다. 그러나 해결사가 제시한 금액은 행동대장의 권한 밖의 액수였다.
“뭐 해? 저 학생도 바쁘고 나도 바쁘잖아. 그렇게 곤란하면 내가 직접 보스한테 전화할까?”
“아닙니다. 우선 해결해 주십시오. 약속한 금액은 제 집을 팔아서라도 갚겠습니다.”
“집도 없는 놈이 뻥치기는… 너의 정성을 봐서 의뢰를 받아들이지. 그러나 약속한 금액을 못 만들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스르륵.
계약이 성사되었다. 해결사는 싸울 의욕이 생겼는지 두꺼운 파카를 벗어 던졌다. 그가 춥다고 난리를 떤 것도 당연하다. 파카 안에는 가벼운 티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무서운 학생… 우리 한번 신나게 놀아 볼까?”
스륵.
해결사는 뒤춤에서 무언가를 빼 들었다.
스릉-.
칼이다. 손잡이를 빼고도 길이가 20센티는 넘어 보였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배에 칼이 안 들어가기야 하겠어? 흐흐흐.”
해결사는 서슬 퍼런 칼날을 꺼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추위에 벌벌 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섬뜩한 표정이었다.
“이제야 싸울 맛이 나네.”
차착.
동빈도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무기를 가진 상대였기에 약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측면으로 몸을 튼 상태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았다.
“흐흐흐. 너희들은 사람 오나 망이나 잘 봐.”
해결사도 동빈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차이가 있다면 칼을 앞으로 내민 상태뿐이다. 동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돌았다.
사삭.
뭔가 번쩍였다.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도 일었다. 해결사가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아까운데…….”
해결사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간발의 차이로 동빈의 목을 비껴간 것이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남을 입증할 수는 있었다.
“돈을 더 부를 걸 그랬나? 내 예상보다 빠른 놈인데. 목을 젖혀서 피할 줄 알았는데 다리를 움직이다니. 설마, 내 연속 공격을 눈치 챈 건가?”
“…….”
해결사가 말이 좀 많다.
칼질 한 번 하고 설명까지 덧붙였다. 동빈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완벽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사악.
좌에서 우로 이어지는 공격.
이번에는 동빈이 상체를 젖혀 피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해결사가 또 설명을 시작했다.
“키에 비해 유연성이 매우 뛰어나. 거리를 두려고 뒷걸음을 치는 것이 보통인……!”
해결사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후앙.
매섭게 내리꽂히는 동빈의 발차기를 감지한 것이다.
겨울철 북풍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공음이 압권이었다. 빈약한 체구의 해결사가 맞는다면 즉사할지도 몰랐다.
파다다닥.
해결사는 부리나케 몸을 피했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 기를 쓰는 모습이었다.
후웅.
동빈의 발차기가 빗나갔다. 해결사가 그리도 난리를 피웠지만 간발의 차이였다.
“진짜 위험할 뻔했네…….”
눈이 커다래진 해결사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시 자세를 잡고서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이다.
푸악!
“켁!”
해결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우적거렸다. 몸이 가벼워서 그런지 상당한 거리를 붕 뜬 채로 날아간 것이다.
풀썩.
“크윽…….”
비행한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땅에 떨어지는 충격도 엄청났다. 낙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내장이 파열되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형님, 피하세요!”
“……!”
행동대장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악스럽게 달려오는 동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최대한 빨리 일어나려 했지만 허리에 감각이 없었다.
“끄응-.”
간신히 힘을 주어 반쯤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 이놈이 어디에 있는 거야?”
상대의 위치를 알아야 거리를 둘 것 아닌가?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동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서, 설마…….”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땅으로 꺼지지 않는다면 하늘로 솟을 수밖에 없었다.
해결사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푸악!
와지끈.
매우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
동빈의 무릎이 해결사의 얼굴을 짓이겨 버린 것이다.
“끄르르…….”
해결사의 비명이 이상하다.
입속이 초토화되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체중을 전부 싣고 엄청난 높이로 도약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구경하던 조직 폭력배들마저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
“저, 저놈의 고삐리는…….”
행동대장의 벌어진 입은 다물릴 줄 몰랐다. 그렇게 유명한 해결사가 진짜로 당한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풀썩.
해결사의 몸이 차디찬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행동대장의 고개도 함께 떨어진 것이다. 동빈에게 복수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은 반응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의뢰는 포기를 했어야지.”
동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나머지 조폭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흠칫.
행동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벌집을 건드린 것인가?
추운 날인데도 땀이 흐른다. 동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무사히 도망치기는 힘들 것 같았다.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한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행동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신을 잃었다.
그렇다고 행동대장이 무사한 것도 아니었다. 동빈에게 잡혀서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퍼억.
“네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야?”
“크윽… 모, 모른다.”
모진 고문에도 행동대장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항이 심할수록 동빈의 폭력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진짜 모르는 거야, 알면서도 모른다는 거야?”
푸악.
“크억…….”
행동대장의 얼굴은 초토화되었다.
이만하면 기절할 만도 하건만 이상하게 의식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 덩달아 심해졌다.
“말해. 진짜 모르는 거야, 알면서도 모른다는 거야?”
“아, 알지만… 가, 가르쳐 줄 수 없다…….”
“왜?”
“조, 조직을… 배반하면 죽음이다… 차,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훠, 훨씬 낫지…….”
“어이, 주소 알려 주는 게 배반이야? 비밀 아지트도 아니라며?”
“……!”
놈들의 본거지는 경찰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말 못 할 까닭이 없었다.
“가, 강남대로를 타고 가다가…….”
행동대장은 눈물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괜히 맞았다는 결론에 봉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주소만 불러. 인터넷에서 치면 다 나오니까.”
“겨, 경기도…….”
“경기도… 그리고?”
동빈은 놈의 입 가까이로 귀를 가져갔다. 놈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져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 진작 말했으면 좋았잖아.”
풀썩.
동빈은 행동대장을 풀어 주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계속 붙잡아 둘 이유가 없었다.
“너희 보스한테 전해… 내가 조만간 찾아간다고 말이야.”
“……!”
행동대장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혼자서 본거지를 치겠다는 소린가?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졌다.
만약 조직이 붕괴된다면 자신의 책임이 가장 컸다.
‘이, 이민 갈까……?’
동빈도 없고 조직의 응징도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지는 저택들.
예전부터 부유층들이 살던 동네라 집들의 규모가 대체로 컸다.
새로 증축한 현대적인 빌라들과 오래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저택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오르막 중간쯤에 위치한 2층 양옥집.
콘크리트 담장이 꽤나 높았고 오래전의 저택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누군가 주변을 살피고 있다.
담장을 넘으려는 것인가? 지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가볍게 다리를 푸는 것이 수상하다. 콘크리트 담장을 쳐다보면서 상체를 약간 수그린 자세를 잡았다.
타탓.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는 모습이 압권이다. 짧은 거리를 뛰었지만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다.
타타타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담을 타고 올랐다.
도둑고양이처럼 날렵하고 신속한 동작이었지만 중력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올라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파팟.
순간적으로 뛰어오르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손을 쭉 뻗으며 담장 꼭대기를 잡았고 탄력을 이용해 다시 한 번 솟구쳐 올랐다.
양손이 지지대 역할을 했고 하체부터 담장을 넘었다. 몸이 반쯤 넘어가자 지지하고 있던 손을 놓았다.
풀썩.
담장 안쪽은 그리 높지 않았다.
침입자는 안정적인 자세로 땅에 내려앉을 수 있었다. 완벽한 침투였다.
다시 몸을 숨기고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때였다.
“누구냐!”
경비들이 손전등을 비추며 달려왔다.
들킨 것이다. 서둘러 도망쳐야 했지만 침입자의 반응은 남달랐다.
“쉿!”
제발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경비로서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침입자가 이리 멍청하단 말인가?
경비는 손전등을 더욱 가까이 대며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했는데…….
“도, 동빈이?”
“쉿!”
“어, 얼굴이 왜… 아, 아니, 몸 전체가 피잖아.”
경비는 피로 얼룩진 동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빈은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게 싫었던 것이다.
“장군님은요?”
“그, 글쎄… 들어오셨다가 다시 나가신 것 같은데?”
“송 교관님은요?”
“모르지. 그분이야 워낙 신출귀몰하셔서…….”
“그래요.”
동빈은 안심한 듯 몸을 일으켰다.
운이 좋았다. 재빨리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증거를 인멸할 수 있었다.
끼이익.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동빈은 현관문을 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군이 없는 것은 확실했지만 송 교관이 문제였다. 불쑥 튀어나와서 ‘뭔 일이네?’ 하고 물을 것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으면… 그냥 올라가겠습니다.”
화다닥.
동빈은 냅다 계단을 향해 뛰었다.
2층은 동빈을 위한 공간이었다. 계단만 올라서면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