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의 원칙이 주철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혼자 스키장을 갈 것인가, 아니면 친구들이랑 황당한 여행을 떠날 것인가? 선택은 주철에게 달려 있었고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주철아, 내일부터 차 쓸 수 있지?”
“그래…….”
석진은 주철이 함께 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꼼꼼한 석진은 차량 이동으로 다시 계획을 세웠다.
“차가 막힐 염려가 있으니까 새벽에 출발하자.”
“그래라…….”
“주철이는 차 몰고 6시까지 학교 앞으로 나와.”
“그래…….”
주철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동참해야 하는 것인가! 어쩔 수 없다. 혼자만 따돌림당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것이 주철의 성격이었다.
“야, 제목이 뭐 이리 촌스러워!”
결국 주철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 계획을 상징하는 제목부터 문제를 삼은 것이다.
“함무라비에 대해서 알고는 있냐?”
열심히 계획을 세우던 동빈이 반문했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반박이었다.
“당연하지! 함무라비 접전이 유명하잖아. 동해보복형同害報復刑 또는 탈리오의 법칙이라고 해서,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보복의 법칙을 명시하고 있지.”
“오∼ 제법인데!”
동빈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다. 동빈의 지적 수준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야. 일진들이 다른 학생들 괴롭힌 만큼 복수하겠다는… 대충 그런 뜻 아니야!”
“알면서 왜 그래?”
“그러게?”
“…….”
낭패다. 괜히 트집을 잡은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석진까지 의심 섞인 눈빛을 보내자 주철은 당황스러웠다.
“이것들이 계속 나만 가지고… 내가 운전 안 하면 어쩔 거야?”
주철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운전이다.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잘 보이라는 뜻이었지만 동빈의 화려한 경력을 몰랐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도 운전할 줄 아는데?”
차뿐만이 아니다. 급할 때는 헬기와 비행기까지 몰 수 있었다.
“아버지 차 몰래 훔쳐서 몰아 본 거 말고. 진짜 면허증 있어?”
“응.”
“나이가 안 되잖아? 너도 외국에서 땄냐?”
“아니, 군대…….”
동빈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까지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군대? 아무리 너희 아버지가 장성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운전면허를 함부로 줘? 군대 면허에는 나이 제한도 없냐? 이놈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래도 다행이다. 주철은 동빈이 군대에 있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장성인 아버지가 빽을 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말 있다니까!”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안 된다니까! 외국에서나 만 17세에 운전면허를 따는 거야!”
“둘 다 그만.”
중립을 지키고 있던 석진이 끼어들었다. 동빈과 주철이 말싸움을 시작했으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석진아, 이게 말이 되니? 동빈이가 운전면허가 있대.”
“그러려니 해라. 저번에는 동원 훈련까지 언급했잖아.”
동빈이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주철도 이를 기억했는지 차분함을 되찾았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데… 내가 귀한 몸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운전은 나밖에 못하거든.”
“미안한데… 내가 알기론 주철이 너도 운전 못 해.”
“무, 무슨 소리야. 난 외국에서 운전면허 땄어! 한국에서도 운전 많이 했는데?”
주철은 매우 당황스럽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석진이 하는 말이라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 운전면허 땄어도 만 18세가 안 되면 한국에서는 운전이 불가능해. 네가 차를 몰았으면 당연히 불법이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주철이 거품을 무는 것도 당연했다.
모든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차량을 뺏어야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내가 운전하면 되잖아. 너는 차만 가져와.”
“뭐? 석진이 네가?”
“응.”
“동빈이나 나도 안 되는데… 어, 어떻게……?”
“괜찮아. 이 형님만 믿어라.”
“그, 그래…….”
주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한국에서는 만 18세가 되어야 운전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짜로 형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