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프로젝트
국방부에서 운영하는 인체 연구소.
동빈은 의무적으로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다.
완전한 민간인이 되었지만 국방의 의무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추르륵. 추르륵.
동빈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심장 쪽에 몇 개의 센서만 부착한 상태였다. 러닝머신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계기판의 그래프 또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동빈이 빨리 달릴수록 그래프의 진동 폭은 더욱 커졌다.
창창창.
러닝머신이 멈추면서 이상한 물체들이 튀어나왔다.
훈련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된 인체모형 마네킹. 동빈은 닥치는 대로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쾅쾅쾅쾅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인형들은 차례대로 넘어갔다.
평상시보다 훨씬 강한 파괴력이 느껴졌다. 동빈이 움직일 때마다 인형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졌다.
철컹. 철컹.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오뚝이를 닮았는지 인형들은 곧바로 튀어 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형이 올라오는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다.
기잉… 기잉…….
거북한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동빈의 파괴력을 감당하지 못한 인형들이 속출한 것이다.
“쯧쯧쯧… 벌써 고장 난 기야? 어서 끄라우.”
하얀 가운을 입은 송 교관이 혀끝을 차며 손짓했다. 연구원들은 재빨리 기계를 정지시켰고 인형들은 모두 사라졌다.
“요즘 기분 상한 일 있네?”
“…….”
송 교관은 뿔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동빈은 자신의 몸에 붙은 센서를 제거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비싼 기계니까 부수지 말고 살살 치라우. 알겠네?”
“네…….”
“오늘은 신체 발달 사항만 체크하고 끝내자우.”
송 교관은 동빈을 데리고 신장을 재는 기계로 다가갔다.
송 교관이 체크리스 판에 기록할 준비를 마치자 동빈은 기계 위로 올라갔다.
0으로 있던 계기판의 수치가 변하자 송 교관은 바싹 얼굴을 디밀었다. 안경을 썼어도 노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188.5… 아주 좋구만기래. 살극무 수련자 중에서 최장신이 되었구만기래. 190도 꿈은 아니야.”
동빈의 키가 자랄수록 송 교관의 만족도도 덩달아 높아지는 모양이다. 송 교관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동빈의 신장을 기록했다.
“188.5… 참, 내일부터 방학인 기야?”
“네.”
송 교관이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고 동빈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방학이라면서도 들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송 교관이 좋아서 난리였다.
“아주 기쁜 소식이 있는데 말이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훈련받는 거 지겹지 않네? 그래서 이번에는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야. 코쟁이들이 너하고 날 초청한 거디.”
“저기… 언제 떠나는 겁니까?”
“방학 시작하자마자 떠날 예정이디. 깜짝 놀래 주려고 했는디… 어때, 기쁘지 않네?”
송 교관은 동빈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생각보다 동빈의 반응이 좋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꼭 가야 합니까?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소리네? 거긴 분쟁 지역이 아니야. 대충 시범만 보이고 충분히 놀 수도 있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외국 물 먹갔네?”
송 교관과 동빈은 마음대로 해외에 갈 수 없었다.
위험인물로 취급되는 것은 기본이며 국가 간 분쟁까지 일으킬 수 있었다. 이처럼 특별한 초청이 없으면 외국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방학을 하면 며칠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거 문제가 심각하구만기래. 요즘은 장군님의 말씀도 잘 안 듣고 말이디, 이제는 국가의 훈련까지 거부하는 것이네?”
“죄송합니다. 송 교관님이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난 결정권이 없지 않네. 장군님께 건의는 하겠지만… 그런데 진짜 해외 나가기 싫네?”
“…….”
동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곤란할 때 보이는 반응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간만에 외국 물 좀 먹나 했더니…….”
송 교관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피아노 원장에게 자랑까지 한 상태라 더욱 문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