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회 (138/224)

클럽 안은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윤호와 동빈이 대치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조용한 대화? 그러나 동빈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어떤 돌발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뜻밖인데? 둘이 아는 사이였나?”

기준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스테이지를 바라보았다.

피 튀기는 대결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실망이란 뜻이었다. 대책 없이 날뛰던 동빈이 너무나 얌전해졌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으니까.”

태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무작정 주먹부터 쓰지는 않았지만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결코 좋은 사이는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웅성거림이 점점 심해지자 윤호가 먼저 반응했다.

“보는 눈이 너무 많군. 어디서 조용히 이야기 좀 나눌까?”

“물론…….”

동빈은 윤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야밤에 펼쳐진 강남 연합 사건. 하얀 눈밖에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느낌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태균아, 너희 먼저 들어가라. 나는 김동빈과 대화 좀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냐?”

“물론 괜찮지. 특실이 부서졌으니까… 그 옆 룸으로 들어와.”

태균은 동빈이 부숴 놓은 유리벽을 턱으로 가리켰다.

“누가 부쉈는지 짐작이 가는군.”

“너무 늦지는 마라.”

태균은 기준과 함께 부서진 특실 옆방으로 들어섰다. 학생들도 하나 둘 흩어졌고 스테이지에는 동빈과 윤호만 남게 되었다.

“장군님이 괴물을 키웠군. 강남 연합과 학생 조폭을 한꺼번에 상대하려 하다니… 정말 이길 수 있었나?”

윤호는 스테이지 벽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학생들이 가까이 없었기에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되었다.

“상대가 누구건, 몇 명이 덤비건 상관없어…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어느 정도 장군님의 뜻을 파악한 것 같은데, 아직은 사회에 적응이 덜 됐군. 나도 저놈들을 박살 낼 수 있지만 맨손으로는 힘들다고 판단했지. 살극무의 위력을 너무 믿는 거 아닌가?”

윤호는 약간 눈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무모한 행동을 삼가라는 충고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는 학생 경찰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나?”

“여기는 군대가 아니야. 사회는 사회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거든.”

“네가 어떤 조직을 만들건, 무슨 짓을 하건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러나 확실히 지킬 것은 지켜야지.”

“뭘? 애들한테 실전 특공 무술 전수하는 거 말이야?”

윤호는 어깨를 으쓱이는 행동까지 보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문의 뜻이었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짓을 했나? 실전 특공 무술의 전수는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해.”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전수하는 무술은 군대의 실전 특무가 아니야. 내 나름대로 개발한 거지. 특허권이 나한테 있다는 소리야. 물론, 기본 바탕으로 실전 특무를 사용했지만…….”

윤호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전혀 걸릴 게 없다는 뜻이었다.

“나에게 변명할 필요는 없어… 난 보고만 하고 결정은 장군님이 하실 거니까.”

“그럼 다행이네. 장군님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장군님이 원하는 것이거든.”

윤호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장군에 대해서는 아들인 동빈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동빈이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장군님이 원하는 건 또 뭐고?”

“너도 어느 정도 파악한 것 같은데? 그렇기에 여기까지 온 것 아니었나?”

“…….”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고. 아무리 적이라도 너무 기다리게 하면 예의가 아니지.”

윤호는 벽면에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고는 동빈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서. 난 아직 할 말이 남았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나머지 궁금한 점은 잠시 후에 풀어 주지. 한 번에 모두 말하면 재미없잖아.”

윤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계속 특실 쪽으로 다가갔다.

“난 거기 있는 놈들과 할 말이 없어.”

“아니, 매우 중요한 내용이 밝혀질 거야. 실망하지는 않을 테니 어서 오라고.”

윤호는 특실 앞에서 멈춰 선 상태였다. 동빈과 함께 들어가고 싶은지 문을 열지 않고 기다렸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물론이지.”

동빈이 성큼성큼 특실 쪽으로 다가섰다.

발걸음이 빨랐기에 문 앞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탁인데…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사고 치지 말라고.”

“그건 내가 결정해.”

동빈이 도착하자 윤호는 당부의 말부터 전했다. 물론 동빈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진짜 대책 없는 놈이네…….”

윤호는 포기했는지 그냥 문을 열려고 했는데, 그때였다.

멈칫.

손잡이를 잡은 윤호가 주춤한 행동을 보였다.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반응이었다.

“무슨 일인데?”

“김동빈… 난 3학년인데 계속 반말할 거야?”

반말을 쓰는 동빈의 행동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둘이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안에서는 삼가 달라는 뜻이었다. 정당한 요구처럼 들렸지만 동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군대는 내가 선배야. 그것도 한참이나.”

“하하하. 그런가?”

윤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군대 경력으로 따지면 자신이 존칭을 써야 할 존재였기 때문이다.

끼익.

웃음을 멈춘 윤호가 문을 열고 들어섰고 동빈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특실 안은 매우 한적했다.

기존에 있던 커플들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었다. 태균과 기준 그리고 주철이 단출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었는지 문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벌떡.

동빈의 등장을 가장 반긴 사람은 태균이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까지 나아갔다. 이번 모임의 주최자로서 손님 대접은 확실히 했다.

“아까는 제대로 소개를 못 했군. 일성고 3학년 최태균이다.”

“…….”

동빈은 악수를 청한 태균의 손을 잡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뭐야? 내 손이 점점 무안해지잖아.”

“동빈아.”

주철이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자기 체면을 봐서라도 예의는 지켜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명성고 김동빈.”

“만나서 반가워. 일진이나 조폭은 닥치는 대로 부순다고 하던데… 역시 대단한 실력이야. 아무 곳이나 편한 곳에 앉지.”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모두 조성되었다. 동빈은 입구와 가까이 있는 주철의 옆에 앉았다.

태균은 입구와 떨어진 탁자 끝머리에 자리를 잡았고 기준과 윤호는 서로 마주 보는 위치를 선택했다. 고교 삼인방이 삼각형 형태로 자리한 것이다.

“초청에 응해 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태균이 대화의 물고를 열었다. 주위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소모적인 싸움은 되도록 피하자는 의도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어. 내년이면 우리도 고등학교를 졸업하잖아. 새로운 규칙을 정해서 말썽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자고.”

“난 찬성.”

“나도 거부할 이유는 없지.”

삼자대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준과 윤호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만든 조직인데 그냥 포기할 수는 없잖아. 나는 정우한테 넘기고 뒤나 봐주려 했는데 일이 좀 어긋났지…….”

태균은 뒷말을 흐리면서 동빈을 슬쩍 바라보았다.

원망이 담긴 눈빛은 아니었다. 동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한없이 낮아졌던 태균의 음성이 제 높이를 찾았다.

“…사적인 내용은 이만 하고 본론을 말하지. 난 대학을 가서도 조직은 유지하고 싶다.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거든. 너희들의 협조가 필요하단 말이지.”

자신의 목적을 확실히 밝힌 태균은 기준과 윤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허심탄회한 의견을 듣고 싶다는 행동이었다.

“글쎄, 나는 대학을 못 가서 조직 관리는 문제없는데… 엘리트 조폭이 될 생각은 없어.”

“네가 보스에게 인정을 받는 게 뭣 때문일 것 같아? 싸움 실력보다는 학생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는 이점 덕분이야. 너의 장점을 포기하지 말라고.”

태균은 차분한 목소리로 기준을 설득했다.

합심하여 각자의 조직을 유지하자는 내용이었고 동빈은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뭐야 이놈들… 쓰레기 같은 조직을 천년만년 유지하겠다는 소리잖아?’

학원 폭력의 계보를 꾸준히 이어 가겠다는 발상 아닌가?

동빈은 먼저 사고 치지 말라는 윤호의 당부를 생각하며 꾹 참고 있었다.

“기준이는 어느 정도 동의한 것 같고… 윤호의 생각은 어때?”

태균은 윤호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전국 연합과 학생 조폭은 큰 틀에서 합의를 보았음을 강조했다.

“나도 손해 볼 것은 없지…….”

‘저놈도 똑같은 부류였나?’

동빈은 눈에 이채를 띠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발언이었다. 놀라기는 질문을 던진 태균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뜻밖인데? 너도 찬성하는 입장이 분명하지?”

태균은 재차 확인하는 열의를 보였다. 예상 밖의 성과라고 판단했는지 상당히 고무된 상태였다.

“물론이지.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 조건…….”

환해졌던 태균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윤호가 어떤 조건을 내세울지 궁금한 모습은 아니었다. 어떤 조건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다지 어려운 조건은 아니야.”

“뭔데? 설마 또…….”

“기태를 괴롭혔던 놈들을 나한테 넘겨.”

“……!”

동빈의 눈이 몰라볼 정도로 커졌다.

윤호가 말했던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기태 선배의 죽음에 전국 연합이나 학생 조폭이 관련된 것인가!’

동빈의 머리가 또 복잡해졌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표정 관리에 신경 쓰면서 태균과 윤호의 대화에 집중했다.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먹이는 거지?”

“왜 시치미를 떼려고 하시나. 나까지 속일 수 있을 것 같았어?”

태균은 강하게 반발했고 윤호의 추궁은 집요하게 이어졌다.

“속이는 거 없어. 이미 경찰 조사에서 다 밝혀졌잖아. 그놈은 혼자서 자살한 거야.”

“기태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어.”

“무슨 소리야. 들리는 소문으로는 진로 문제로 많이 고민했다고 했데.”

“진로 문제?”

“그놈은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매우 잘 쳤지.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들은 말인데… 아버지는 법대에 가기를 원했고 기태는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었다고 했지.”

‘절대 그럴 리 없다. 장군님은 기태 선배가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동빈은 몇 가지 정보를 수집했었다. 진로 문제로 장군이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송 교관을 통해서 직접 들은 것이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여하튼 우리와는 관련 없는 일이야. 그놈은 너무 감수성이 풍부해서 문제였다는 이상한 소문도 돌았지.”

“뭐가 관련이 없지? 끝까지 기태를 괴롭혔던 놈들이 전국 연합과 학생 조폭의 일원 아니었나?”

“내가 그런 피라미 놈들까지 일일이 신경 쓸 것 같아?”

‘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대화를 들을수록 동빈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기태에게 해코지를 한 놈들이 전국 연합과 학생 조폭이란 사실은 확실했다. 그러나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속단할 수 없었다.

“기태를 괴롭힌 놈은 내가 모두 손을 봐줬다. 일진이니 뭐니 모두 초죽음을 만들었지.”

“그건 잘 알고 있어. 너 때문에 병신 된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윤호가 기태 선배의 보디가드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일진들이 함부로 덤빌 리 없는데?’

동빈의 의문은 계속되었다. 윤호의 실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비밀 코드를 부여받은 존재였고 민간인에게 섬광탄까지 쓸 정도로 괴팍한 면도 있었다.

윤호한테 철저히 당했던 놈들이 다시 기태를 괴롭힌다? 동빈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만 보면 똥오줌 못 가렸던 놈들이 왜 기태를 다시 괴롭혔지? 나한테 죽을 줄 뻔히 알고도 말이야.”

“그때 명성고는 중립 지역으로 선포한 상태였어. 명성고에 대해서는 우리도 신경 끄고 있었지.”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란 말이었다.

동빈이란 존재 때문에 명성에 일진들은 발을 붙이지 못했다. 학교 폭력의 예외 지역이 된 것이다.

“너희들의 약속을 믿은 내가 미친놈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아. 내가 잠시 서울에서 벗어난 시간에 사건이 벌어졌어. 어쩌면 그렇게 절묘할 수 있지? 게다가 형사 조사를 받은 놈들은 자퇴하자마자 행방불명이 되었고.”

“모르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모르면 끝인가? 네놈하고 기준이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던데?”

“헛소문이야.”

짧은 대답과 함께 태균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정적.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윤호와 태균은 치열한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삭막해진 분위기를 인식했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부슥.

윤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확실한 대답을 듣기 힘들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왜 일어나는 거야?”

“내 목적은 벌써 완수했거든.”

“……?”

태균은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윤호를 설득하려 했다.

“지나간 일은 다 잊어버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우리 세 명이 힘을 합치면 못 할 게 없잖아.”

“미친 새끼… 기태 일 아니더라도 너희와 손잡을 생각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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