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놈이기에 네가 그런 소리까지 하는 거냐?”
“너도 소문은 들었을 거야. 김동빈이라고…….”
“……!”
기준의 발길이 저절로 멈췄다.
예상보다 훨씬 골치 아픈 상대가 분명했다. 태균이 했던 모든 행동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저놈… 진짜 김동빈이냐?”
“그렇다니까.”
기준도 동빈의 존재가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태균에게 고개를 돌려 재차 확인하는 절차까지 밟았다.
“뭐야? 아무리 화합 차원에서 모였다 해도 그렇지… 저놈은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
“일이 좀 꼬였다.”
동빈이 초청장을 받지 못한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전국에서 유명한 놈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지만 동빈은 위험인물로 낙인찍힌 것이다.
“붙어 보니 어때? 역시 소문대로 괴물인가?”
기준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동빈과 한차례 격전을 치른 전국 연합의 소감을 물었다.
“소문 이상인 것 같아… 저기 누워 있는 게 정우거든.”
“……!”
기준도 정우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얼굴을 분간할 수 없었다. 싸우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이? 안 덤빌 거야?”
상대가 빼는 분위기를 연출하자 동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음으로 깔리는 음성은 상대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말투였다.
“김동빈. 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래서… 덤빌 거야, 말 거야?”
“…….”
기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기가 질렸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단신으로 자신의 조직 전체와 맞서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계속되는 동빈의 도발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기가 막혀서 이젠 짜증이 나는군. 우리 조직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기준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되도록이면 충돌을 피하고 싶었지만 자존심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기준과 같이 온 학생 조폭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 기어올라도 너무 기어오른다. 아무래도 본때를 보여 줘야 할 것 같은데?”
“맞아. 저놈이 자청한 일이야. 머릿수로 밀어붙여 버리자고.”
덩치가 산만 한 놈들이 몰려들었다.
학생 조폭과 동빈의 피할 수 없는 승부가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클럽 내부는 긴장감에 물들었지만 당사자인 동빈은 상당히 여유로웠다.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귀찮으니까 전국 연합도 함께 덤벼.”
“……!”
클럽 안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표정이 변했다. 이쯤 되면 미쳤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반응이었다.
“우리 조직하고 전국 연합을 동시에 상대하겠다는 뜻이냐?”
“물론이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덤비라니까!”
차착.
동빈은 양손을 치켜들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클럽 안에 있는 모든 일진들과 싸우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씨발… 이게 어떻게 흘러가는 상황이야?”
“김동빈 새끼… 미친 괴물이었네.”
전국 연합은 웅성거리며 태균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들도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기에 순순히 물러날 수 없었다.
“태균아, 어떻게 할 거야?”
“이 기회에 김동빈을 박살 내 버리자고. 어차피 눈엣가시였잖아.”
“…….”
동료들의 성화가 빗발쳤지만 태균은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싸움이었다.
이겨도 손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인가? 고심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마침내 꽉 다물었던 태균의 입이 열렸다.
“…전국 연합은 싸우지 않는다. 기준이, 너희 조직도 참았으면 좋겠다.”
“태, 태균아?”
매우 뜻밖의 결정인지라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극으로 치달았고 기준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대들었다.
“너까지 미친 거냐! 이대로 참으면 우리 체면이 뭐가 되겠어!”
“오늘은 화합의 날이다. 규칙을 따라야지.”
“규, 규칙? 이 상황에 규칙이란 말이 나와? 전국 연합과 학생 조폭이 김동빈한테 쫄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그것도 동시에 말이다!”
기준은 복장까지 치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겁먹고 피했다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발악이었다.
“미안하지만 내 뜻을 따라 줬으면 좋겠다.”
“제발 정신 차려. 김동빈 새끼의 얼굴 좀 보라고. 우리만 참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기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태균은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동빈은 공격 자세를 풀지 않았다.
강한 살기를 풍기며 언제라도 달려들 태세를 유지했다.
“지금은 싸우지 않겠다는 소리다. 아직 손님도 다 오지 않았는데 괜히 삭막한 분위기를 연출할 필요 없잖아. 김동빈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결정해도 늦지 않아.”
모임을 주최한 입장을 이해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또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언이었다.
“다른 손님이라니? 우리 말고 또 있었어?”
“물론, 너도 잘 아는 사람이지. 과히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설마… 그놈은 아니겠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가는 모양이다. 기준의 얼굴에는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미안하지만 기준이 네 예상이 맞을 것 같은데?”
“젠장…….”
기준이 짤막한 욕을 내뱉었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행동이었다. 동빈만큼이나 껄끄러운 존재가 분명했다.
“늦어서 미안. 많이 기다렸나?”
마침내 태균이 기다리던 손님이 당도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양반 되기는 그른 것 같다. 기준의 짜증스러운 표정이 가시기 전에 등장한 것이다.
“사람을 초청해 놓고 분위기가 왜 이러지? 설마 내가 늦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새로운 손님은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180이 조금 넘는 신장에 호리호리한 체형,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은 괜히 호감이 가는 타입이었다.
“너 때문은 아니니까 안심해라. 오랜만에 본다.”
“그래, 오랜만이다. 시험을 잘 봤냐?”
“대충은 봤지.”
새로운 손님과 태균은 가벼운 악수를 주고받았다.
대화의 내용으로는 그의 정체를 구별하기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국 연합이나 학생 조폭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쟤는 또 누구지?”
“글쎄… 뭔가 있는 놈이 분명한데…….”
많은 학생들이 그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태균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라면 보통은 넘는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오늘 대단한 놈들은 전부 모였네…….”
누군가 새로운 손님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한 모양이다. 탄성에 가까운 음성으로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아는 놈이야?”
“서윤호… 학생 경찰의 리더잖아.”
“뭐라고? 학생 경찰!”
새로운 손님의 정체가 밝혀지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일어났다.
고교 삼국지의 수장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위험인물인 동빈까지 함께 있는 셈이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대화를 하자고 부른 게 아닌가? 여전히 분위기가 삭막하네?”
“보시다시피… 문제가 있어서.”
태균은 고갯짓으로 동빈을 가리켰다. 윤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동빈과 부딪치게 되었다.
“싸움은 별로 좋은 게 아닌데… 내가 잘 타이르지.”
“헛수고하지 말라고. 통제하기 힘든 놈이거든.”
“괜찮아, 괜찮아. 나한테 맡겨.”
뚜벅뚜벅.
윤호는 태균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자신이 넘친다는 뜻인가? 태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동빈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
“…….”
윤호가 인사를 건넸지만 동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표정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무섭잖아.”
“…….”
윤호는 멋쩍은 표정을 보이며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고는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동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장군님께 내 안부는 잘 전해 드렸나?”
“……!”
동빈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윤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학생 경찰의 수장이란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정체를 밝히는 수작이 마음에 걸렸다.
강남 연합 사건 이후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서로의 과거를 알기에 양측 다 부담스러운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