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6/224)

전쟁 선포

와락.

동빈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정우의 멱살을 잡아챘다.

“학생이 된 지도 꽤 지났는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그런 죄를 짓고도 어떻게 멀쩡히 학교를 다닐 수 있지?”

악랄한 죄질을 고려하면 너무 미약한 처벌이라 판단한 것이다.

세워 놓고 팰 모양인지 위쪽으로 바싹 잡아당겼다.

주르르.

반쯤 벌어진 놈의 입에서 진한 핏물 흘러내렸다.

기고만장했던 놈의 기세는 찾을 수 없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애원하듯 동빈을 바라보았다.

“뭘 잘했다고 그렇게 쳐다봐?”

꾸악.

동빈은 정우의 다리가 허공에 뜰 때까지 들어 올렸다.

“크억…….”

바동바동.

정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렇게 심하게 맞았으니 고통을 참기 힘들 것이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안 그래!”

쿠웅.

“끄억…….”

동빈은 놈의 뒤통수가 깨질 정도로 벽면에 처박았다. 놈은 눈이 뒤집히며 의식을 잃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스윽.

동빈은 놈의 멱살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치켜들었다.

침묵을 지키던 학생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이미 끝난 거 아니야? 서, 설마…….”

퍼억!

설마가 사람 잡는다? 동빈의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정우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죽지 않을 정도만 패겠다는 뜻인가? 아니다. 죽도록 팬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푸악푸악.

“누, 누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김동빈을 누가 말려… 소문대로 정말 과격한 놈이네…….”

붉은 크리스마스!

스테이지는 정우의 피로 흥건하게 물들었다.

저렇게 맞고도 살아 있는 정우가 더 신기할 정도였다.

푸악! 푸악!

“어머… 도저히 못 보겠네…….”

“젠장! 이게 무슨 크리스마스 파티야.”

고개를 돌리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호러 영화에서나 나오던 장면을 실제로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동빈 그만 해라!”

결국 태균이 나서야 했다. 자신이 주최한 파티가 망가지는 것을 계속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규칙은 지켜야지? 이놈 아직 안 쓰러졌거든.”

“…….”

태균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대결 당사자들이 정한 일이라 끼어들 명분이 약했다.

“주철아, 저놈 좀 말려라.”

“글쎄…….”

옆에 있던 주철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괜히 땅만 보면서 태균의 시선을 외면했다.

“조용히 끝내려고 너한테 부탁하는 거다. 여기에는 정우처럼 유명한 일진들이 많이 모여 있어. 김동빈이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절대 무사하지 못해.”

“태균이 형… 지금은 간섭하지 말고 그냥 두는 게 나을 거야. 정우 정도의 희생에서 끝내는 게 낫지 않겠어?”

“무, 무슨 소리야? 저놈이 작정을 하고 왔단 말이야? 우리 전국 연합 전체하고 맞붙는다고!”

끄덕끄덕.

주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짚었다는 뜻이었지만 태균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치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장난하는 거냐?”

“장난 아니야. 그리고 저놈을 말려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것도 다 형을 위해서야. 내가 부탁하면 동빈이가 한 번쯤은 참겠지… 그러나 기회를 함부로 낭비하면 되겠어? 형은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주철이, 너… 실수하는 거다.”

태균의 음성이 나직하게 변했다. 여유를 잃지 않던 표정 또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실수는 형이 하고 있지. 난 분명히 충고했다.”

“저놈 당장 끌어내!”

우르르.

태균의 명령이 떨어지자 스테이지가 분주해졌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빈에게 뛰어든 것이다. 무력으로 동빈을 제지하겠다는 행동이었다.

멈칫.

피로 물든 동빈의 주먹이 주춤했다. 떼를 지어 달려오는 학생들을 인식한 것이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일이야.”

동빈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을 기다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웅.

동빈은 정우의 멱살을 풀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동빈이 순간적으로 치솟는 모습에 달려오던 학생들은 움찔했다.

놀라운 점프력 때문에 주춤한 것은 아니었다. 반쯤 몸을 튼 상태에서 내리꽂히는 엄청난 발차기가 문제였다.

퍼억!

철퍼덕.

체중을 실은 동빈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둔탁한 소리부터가 공포였다. 얼마나 파괴력이 강한지 정통으로 맞은 놈은 한 바퀴 돌면서 스테이지 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아까랑은 전혀 다르잖아?”

“마, 맞으면 죽겠는데…….”

한번 멈춰 선 놈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의 파괴력이라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안 죽으니까… 걱정 마!”

“……!”

놈들이 주춤하자 동빈이 먼저 공격했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운 놈부터 요리했다.

빠각.

“켁…….”

팔꿈치 공격으로 간단히 한 놈을 처리했다.

신장이 작은 놈이었기에 팔꿈치로 머리를 찍을 수 있었다.

후웅.

퍼억.

곧바로 이어진 돌려차기로 물러서는 놈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역시나 소리부터 달랐고 놈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내장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게 확실했다.

“형, 내가 뭐랬어. 괜히 사건만 커졌잖아.”

“…….”

태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통한 표정으로 난장판으로 변한 스테이지만 바라보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저놈도 대화를 하려고 왔거든.”

“지금 상황에서 대화가 필요할까……?”

동빈은 한 마리 야수로 변해 있었다. 스테이지를 누비며 몰려드는 학생들을 처참히 무너트렸다. 머릿수의 한계를 넘었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형답지 않게 왜 이래? 충분히 말로 풀 수 있는 문제잖아. 피해는 줄여야 할 것 아니야?”

“주철아… 내가 이럴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첫째는 김동빈의 실력을 보고 싶고… 둘째는 오늘 이 자리에는 강남 연합만 모인 게 아니거든.”

“……!”

여유를 잃지 않던 주철의 얼굴이 변했다.

태균이 돈으로 강남 연합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에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잖아? 특별히 다른 놈들도 초청을 했지. 어디 보자… 약속한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스윽.

태균은 슬쩍 손목시계를 살폈다.

“늦을 놈들이 아닌데…….”

이미 약속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손목시계에서 시선을 거두고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훗. 양반 되기는 그른 놈들이군.”

우르르.

한 무리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놈들은 클럽 안에 있던 학생들과 분위기부터 달랐다. 체격은 운동선수이고 인상은 조폭에 가까웠다.

“기다리던 손님들이 왔다. 이제 멈춰.”

와르르.

태균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동빈과 치열한 격투를 벌이던 학생들은 서둘러 물러났다.

“저놈들은 또 뭐야?”

동빈도 싸움을 멈추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새롭게 등장한 무리에게 다가가는 태균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동빈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놈들이었다.

스윽.

태균은 남자다운 풍모가 넘쳐 나는 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짧은 머리에 진한 눈썹, 넓고 각진 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신장도 190센티미터가 넘어 보였고 상체와 하체가 골고루 발달한 체형이었다.

“초대에 응해 줘서 고맙다.”

“무슨 소리… 약속 시간 못 지켜서 미안하다.”

상당한 친분이 있는 모양이다. 태균과 짧은 머리는 힘찬 악수를 주고받았다.

“저놈은 뭔데 태균이와 스스럼없이 지내지?”

“글쎄…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은데…….”

전국 연합 일진들도 짧은 머리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고교 황태자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뭔가 특별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저놈 강기준이잖아.”

몇몇은 이미 짧은 머리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동료에게 설명을 했다.

“강기준? 이름도 많이 들어 본 것 같은데…….”

“그 유명한 전국구 보스 강기준을 몰라?”

“아! 학생 조폭의 우두머리.”

성인 조직 폭력배와 연계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한 단체를 말하는 것이다. 강기준은 그 조직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이상하네? 우리하고 친한 사이는 아니었잖아?”

전국 연합과 학생 조폭은 유명한 앙숙이었다.

학원 폭력의 주도권을 놓고 거의 매일 싸우다시피 했었다. 호의적으로 악수를 주고받는 장면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하고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 골치 아픈 학생 경찰 새끼들 때문에 서로 협력한다는 소문이야.”

“잘됐네. 저놈들하고 싸우는 것이 상당히 껄끄러웠는데…….”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된 것이다. 전국 연합 일진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태균과 기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악수를 끝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들어올 때 보니까, 상당히 시끄럽던데? 무슨 일 있었냐?”

“응, 말썽이 조금 생겨서…….”

“난 또… 우리를 환영하는 행사인지 알고 괜히 좋아했잖아. 그런데 어떤 말썽이야?”

기준은 강한 호기심을 느끼지는 않았다. 전국 연합의 일에 끼어들 마음도 없었다. 그냥 예의상 묻는 수준이었다.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 이번 모임은 화합 차원이 아니었나? 오늘만은 싸움을 하지 않기로 이미 선포했잖아?”

기준은 약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싸움이라니? 기준은 이제야 호기심을 느끼는 눈치였고 태균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말을 듣지 않는 놈이 하나 있어서…….”

“누가 감히 고교 황태자의 말을 안 들어? 정신 나간 놈 아니야?”

“글쎄… 정신이 나갔다기보다는 통제가 매우 어려운 놈이지.”

기준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태균도 혀를 내두를 존재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직도 긴장감이 남아 있는 스테이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바로 저놈이냐?”

끄덕끄덕.

말썽의 당사자가 누군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준의 시선은 동빈의 무표정한 얼굴에 고정되었다. 태균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제대로 짚은 것이 분명했다.

“피해가 많은 것 같은데. 우리가 대신 처리해 줄까?”

기준은 스테이지를 향해 다가서며 물었다.

작은 말썽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도처에 피가 흥건했고 아직도 쓰러져 있는 강남 연합의 일진들도 볼 수 있었다.

“나야 고맙지만… 많이 골치 아픈 놈이라서…….”

“허접한 놈이 아니라니 더욱 구미가 당기는데?”

기준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반문했다. 어떤 상대이건 자신 있다는 뜻이었다.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정말 함부로 다룰 놈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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