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웠던 음악이 갑자기 멈췄다.
현란했던 조명도 꺼지고 춤을 추던 학생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웅성거렸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생들의 시선도 정우와 동빈의 대치 상태에 집중되었다.
“이 새끼… 감히 누구한테 덤벼.”
“민간인치고는 꽤나 하는 솜씨야.”
둘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싸움을 벌였다.
정우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동빈은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싸움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클럽 안에 있던 학생들은 호기심 강한 눈으로 사태를 주시했다.
“누가 싸우는 거야? 뭐야… 저놈, 정우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상대가 누군지 모르지만 겁을 상실한 놈이네?”
정우라는 존재의 무게감은 컸다.
이쪽 세계에서는 상당한 실력자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누가 이길지 뻔하다는 반응이었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싸울 상대가 동빈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참! 오늘은 싸움을 못 하잖아?”
“맞다… 아무리 정우라도 태균이가 만든 규칙을 어기지는 못하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싸움은 불허한다. 오늘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었다.
전국 연합의 우두머리인 태균이 만든 것이라 절대적인 것이었다.
“정우야. 오늘은 싸움이 금지된 거 모르냐?”
“태균이 형, 저놈이 선빵 날리는 거 봤잖아?”
정우는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규칙은 잘 알고 있지만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였다.
“저 사람은 손님이야. 우리의 규칙을 모를 수도 있지.”
“말도 안 돼! 내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인 거 잘 알잖아!”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야.”
“형…….”
태균이 정색을 하자 정우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싸우지 못하면 열불이 나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싸우고 싶냐?”
“당연하지! 생판 모르는 놈이 설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뭐… 싸움은 안 되지만 색다른 이벤트는 상관없겠지. 정당한 격투기 대결은 어때?”
“무엇이든 상관없어. 저놈만 아작 낼 수 있다면…….”
정우는 태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주철이 친구는 어때?”
태균은 동빈의 의향을 물었다. 정당한 대결을 위해서는 양측의 승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끄덕끄덕.
동빈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승낙의 표현이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격투기 대결이 성사되자 클럽의 분위기는 한층 달아올랐다.
“좋아! 스테이지를 비워.”
대결 장소는 춤을 추는 스테이지로 정해졌다. 클럽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라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우르르.
스테이지에 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그러고는 대결을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려 아우성이었다. 테이블에 있던 학생들까지 합류하면서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이제부터 이벤트 시작이다!”
우와.
태균이 소리치자 학생들은 클럽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전국 연합의 우두머리. 다른 것은 몰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은 대단했다.
삭막하게 변할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흥분의 도가니로 바꿔 놓았다.
스테이지의 용도가 변했다.
춤을 추는 공간이 아니라 격투기 무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정우와 주철 그리고 심판을 자청한 태균만이 올라와 있었다.
“규칙은 어떻게 정할까? K1 아니면 프라이드?”
입식 타격으로 하겠느냐, 아니면 그라운드 기술까지 허용하겠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규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릴 수도 있었다.
“태균이 형, 규칙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나도 물론…….”
정우와 동빈의 마음이 통했다.
무규칙 경기? 그러면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승패도 우리가 결정해.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죽도록 싸우는 거야.”
“점점 마음에 드는데.”
“너희들이 원하면 할 수 없지…….”
심판도 양측의 의견을 존중했다. 살짝 웃는 모습을 보니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 분명했다.
“적당한 거리를 벌려. 소개가 끝나면 곧장 시작이다.”
끄덕끄덕.
경기 규칙은 없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과정은 생략하지 않았다.
태균의 지시에 따라 정우와 주철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물러섰다.
“정우가 누군지는 잘 알 거야!”
우와.
태균은 정우부터 소개했다.
학생들의 함성이 끝나자 태균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정우가 전국 연합 최강의 파이터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고, 전국에 있는 싸움 짱을 찾아다니며 대결을 벌였던 전설적인 존재지. 그동안 몇 명이나 쓰러트린 거야?”
“글쎄… 잘나간다는 일진 포함해서 100명은 넘을걸?”
“우와∼!”
학생들의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도전자를 소개할 차례인데…….”
태균은 서둘러 동빈에게 향했다. 긴장된 분위기를 계속 몰아가겠는 뜻이었다.
“보시다시피 균형 잡힌 체격이 정말 대단해.”
외적인 면에서는 동빈이 앞섰다. 정우는 180이 조금 안 되는 키였고 동빈은 190에 육박하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처음 봐서 자세한 설명을 못 하겠지만 성격이 상당히 과격해. 아까 유리창 깨지는 거 봤지? 들어오자마자 정우를 날려 버렸다고.”
“이야! 만만한 놈이 아닌데?”
“싸움을 키로 하냐? 그래도 정우한테는 안 되지!”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것이다.
“누가 이길지 말만 하면 되겠어? 정우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도전자에게 500만 원 걸었어!”
“뭐야! 돈 따 가라는 소리잖아? 난 정우한테 50만 원!”
“나는 정우한테 100만 원!”
클럽 내부는 도박의 열기로 가득했다.
서로 먼저 돈을 걸려는 학생들로 아우성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원뜻은 완전히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 예상보다 호응이 훨씬 좋은데?”
태균은 흐뭇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렇게 큰 반응을 얻을지는 자신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여러 명이 돈을 걷고 있지만 그 수효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금액이 많이 쌓일수록 학생들의 참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고 보니 아직 도전자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태균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분위기 띄우기에 정신이 없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까먹은 것이다.
“주철아, 이 친구 이름이 뭐지?”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스테이지 바로 앞에 있는 주철에게 나직이 물었는데…….
“명성고 김동빈!”
썰렁.
클럽 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잔뜩 흥분했던 학생들이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춘 것이다.
주철의 목소리가 그렇게나 컸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하하하! 이거 더 재밌게 돌아가는데?”
제일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태균이었다.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여유를 부렸지만 타이밍이 조금 애매했다. 반 박자 정도 늦게 반응한 것이 문제였다. 태균도 순간적으로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더 이상 돈은 걸 필요 없겠지? 미안하지만 나도 이 친구의 정체를 몰랐어. 정말이야?”
“망했다…….”
동빈의 정체가 밝혀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우에게 돈을 걸었던 학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왜 갑자기 분위기가 처진 거야? 너희들은 정우가 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
한번 다운된 분위기를 다시 살리기는 힘들었다. 태균이 뭐라고 해도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김동빈이야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태균은 다시 정우에게 발길을 돌렸다. 차갑게 식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까는 정우에 대해서 대략적인 이야기만 했는데… 이놈이 무술의 고수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거야. 심심하면 각종 무술 대회를 휩쓸고 다녔지. 특기도 워낙 많아서 태권도, 유도, 쿵후… 도대체 합이 몇 단이야?”
“17단.”
“좋아! 이 정도면 괴물하고 충분히 붙을 만한 실력이지!”
웅성웅성.
극으로만 치닫던 분위기가 비로소 중심을 잡았다.
반반 정도의 가능성으로 바뀐 것이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자 뜨거운 열기는 사라졌다.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멋진 승부를 기대하겠어.”
태균은 서둘러 스테이지에서 내려왔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이어 가려는 의도였다.
차작.
태균이 빠지자 둘은 대치 상태로 접어들었다.
서로가 거북한 상대임을 인식한 것인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치열한 눈싸움부터 벌였다. 클럽 안에 있던 학생들까지 괜히 숨이 가빠지는 순간이었다.
“이거… 긴장되는데…….”
태균은 양손을 비비며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렇게 재미있는 대결을 볼 수 있어서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형은 좋겠다.”
“뭐가?”
주철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태균이 반문했다. 어떤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난 동빈이가 싸우는 거 보면… 전혀 긴장이 안 되거든.”
“……!”
태균은 이제야 주철의 말뜻을 이해했다.
너무 뻔한 결과라서 긴장할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화화황.
먼저 움직인 쪽은 정우였다.
가벼운 발차기로 동빈의 심기를 자극했다. 탐색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동빈은 약간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해 냈다.
파팟.
정우의 짧게 끊어 치는 주먹이 이어졌다. 권법이 아니라 복싱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사사삭.
동빈은 상체를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했다. 동물적인 순발력이 없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파앙!
정우의 주먹 끝에서 일어나는 파공음이 매섭다.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동작 또한 매끄럽게 이어졌다. 정우의 발차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붙었다.
탁탁.
처음으로 충돌음이 일어났다.
정우의 발차기는 왼발과 오른발이 시간 차를 두고 이어졌다. 동빈은 손목을 사용해서 정우의 연속 발차기를 막아 낸 것이다.
“주철아, 이제 긴장 좀 되겠는데…….”
태균은 한결 여유를 찾은 목소리였다. 정우가 주도권을 쥐고 몰아붙이는 장면을 주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정우의 변칙적인 공격에 동빈이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였다.
“글쎄…….”
주철도 전방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반응이었다.
“정우는 타고난 싸움꾼이자 무예의 달인이야. 일대일 대결에서 결코 패한 적이 없지.”
“그건 나도 인정해… 그러나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어.”
스테이지의 대결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정우는 파상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동빈은 계속 물러났다.
“김동빈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냐?”
“형도 알지… 난 내가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어.”
“나도 내가 본 것만 믿는 주의야. 그런데 눈앞에 바로 그 증거가 있잖아. 정우는 한번 잡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지!”
후앙.
“오우∼.”
눈 깜짝할 사이에 위기가 지나갔다.
정우의 강력한 발차기를 동빈이 측면으로 빠지며 피한 것이다. 학생들이 나직한 함성을 터트릴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후웅!
“오우∼.”
기선을 잡은 정우의 공격은 점점 거세졌다. 동작이 큰 공격이 계속 이어졌고 학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우가 분위기까지 탔으니 김동빈은 끝이야.”
“형답지 않게 상당히 성급하네…….”
“너답지 않게 너무 침착하니 그렇지.”
“오우∼.”
탄성이 일어나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다.
정우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눈치였다. 학생들도 언제 동빈이 쓰러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