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건물로 지어진 허름한 창고.
천장은 반쯤 뚫려 있고 벽면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원래 있던 문도 떨어져 나간 것이 분명했다. 나무로 대충 만든 구조물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찬바람을 막는 기본적인 구실조차 상실한 창고였다.
“양주철 새끼, 보통 성격이 아니라는데. 괜찮을까?”
“서울 연합을 박살 내면서 병신 됐다는 소문이야.”
낡은 창고 중앙에는 장작불을 지펴 놓은 드럼통이 있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가? 용덕고 일진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성질 더러운 싸이코 건드려서 뭐가 좋냐? 그냥 저 새끼 줘 버리면 되잖아?”
“어차피 전국 연합에서 쫓겨난 놈이야. 강남에서 계속 설치게 놔둘 수는 없지.”
한쪽 구석에는 흠신 두드려 맞은 학생이 쓰러져 있었다.
동빈이 찾던 학생이 분명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데 저 새끼가 어떻게 양주철을 알고 있는 거야? 골치 아프게시리…….”
“주철이 새끼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부우우웅.
경쾌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 쪽으로 쏠리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양주철 얼굴은 알고나 있냐?”
“당연히 알고 있지. 요즘 말하는 꽃미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자들이 무지 따랐지.”
“씨발… 졸라 재수 없게 생긴 놈이네.”
부러움이 가득 담긴 욕이었다. 오토바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놈들도 주철을 맞이할 태세로 접어들었다.
“체격이 호리호리하다고 절대 얕잡아 보면 안 돼. 한때 강남을 평정했던 놈이야.”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도 준비 단단히 했잖아.”
용덕고 일진들은 주변에 널린 각목을 집어 들었다.
땔감으로 쓸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한 손으로 쥐기에 적당한 두께와 길이였다. 무기로 사용하려고 따로 마련한 것이 분명했다.
“긴장을 늦추지 마. 양주철은 검도의 달인이야.”
“씨발… 그놈 목검부터 뺏으면 게임 끝이잖아.”
놈들의 머릿수는 열 명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는 주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이놈 길 몰라서 딴 데로 가는 거 아니야?”
“그, 그럴 리가… 여기는 잘 알고 있을 텐데?”
“오토바이 소리가 계속 커지잖아? 이놈 여길 지나치는 게 분명해! 아, 아니면……!”
점점 커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수상하다.
길을 몰라서 계속 지나치든가 창고와 정면충돌하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진짜 미친놈이 아니고야 건물과 부딪히려고 하겠는가?
후자는 절대 아닐 것이라 판단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와장창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입구가 박살 났다. 창고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고 뿌연 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주철의 오토바이는 사방으로 날리는 나무 파편을 뚫고 등장했다.
“……!”
끼이익.
놈들은 경악을 했고 오토바이는 멋지게 미끄러지며 정지했다.
이렇게 무식한 등장은 동빈조차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야… 살살 좀 몰아라. 춥다면서 문은 왜 부숴?”
“이렇게 등장해 줘야 뽀대가 나거든.”
“잘났다, 정말…….”
“미안한데… 너는 잠시만 있어라.”
주철은 동빈이 헬멧을 벗는 것을 제지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답답하니까 빨리 끝내라.”
“물론이지.”
동빈은 헬멧을 쓴 채로 오토바이에서 내려야 했다. 조용히 팔짱을 끼고는 주철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았다.
부슥.
주철은 헬멧을 벗으며 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용덕고 일진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어떤 놈이 용덕고 짱이냐?”
주철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수적으로 불리했지만 전혀 위축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주철, 오랜만이다.”
“난 전혀 반갑지 않거든. 방금 지껄인 네가 짱이냐?”
“그렇다면?”
곱슬머리에 칙칙한 피부의 학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늙어 보이는 외모였다.
“날 본 적이 있나? 꼭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너는 기억을 못 하겠지만 몇 번 지나친 적은 있었지.”
“날 안다는 놈이 그따위로 전화 받아? 좋은 말로 할 때 찬수라는 애 풀어 줘라.”
“저놈 말이야?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곱슬머리는 한쪽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주철도 시선을 돌렸고, 엉망이 된 찬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아주 병신을 만들어 놨네?”
“저만하면 많이 봐준 거지. 선생한테 고자질하는 것도 모자라서 경찰서까지 갔던 놈이거든.”
“네놈들이 1년 가까이 후배들을 괴롭혔다며? 계속 돈 뜯는 것도 모자라 심심하다고 패고 말이야. 오늘만 해도 그래, 납치에 감금 폭행이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알고나 있나?”
“경고까지 했는데 말을 안 듣잖아. 고자질하는 놈들은 무조건 아작을 내야지. 이게 강남 연합의 규칙이야.”
“시파, 규칙은 무슨… 찬수란 애가 만만해서 본보기로 조지는 거 아니야? 도와줄 부모도 없으니 뒤탈이 없을 줄 알았겠지. 졸라 치사한 새끼들!”
차분한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철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양주철. 넌 이제 전국 연합이 아니야.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할 바가 아니란 말이지.”
“나도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곱슬머리가 한 발 전진하자 주철도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둘의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고 팽팽한 눈싸움으로 번졌다.
“그렇게 죽고 싶어? 저 새끼랑은 어떤 사인데 그렇게 흥분하고 난리지?”
“인터넷에서 만났거든.”
“오호! 불쌍한 놈이라 돕고 싶은 거야? 강남의 양주철이 언제 이렇게 착해지셨나?”
“미안하지만… 난 착한 일에는 취미 없어. 네놈들을 상대해 줄 사람은 따로 있거든.”
주철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뒷걸음쳤다.
곱슬머리가 무서워 물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동빈이 나설 차례라는 행동이었다.
스윽.
동빈이 마침내 헬멧을 벗었다.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네.”
반쯤 오토바이에 기댔던 몸을 완전히 세우자 당당한 체구가 그대로 드러났다. 심상치 않은 동빈의 분위기 때문인지 놈들의 표정은 점차 굳어졌다.
“양주철 많이 약해졌다. 대신 싸워 줄 놈을 데려온 거야?”
놈들은 각목을 들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아직은 불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 이놈이 공부가 안 된다고 해서 잠깐 드라이브 좀 하고 있었거든.”
“십 대 이라… 뭐, 이 정도는 여유롭게 봐주지.”
“미안하지만 난 곱슬머리 너하고 일대일로 붙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되지.”
곱슬머리는 주철의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유리한 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주철을 이기고 싶어 했다.
“너희가 안 된다면 할 수 없지. 그럼 내 친구에게 부탁을 해야겠네. 동빈아! 저 새끼만 남겨 두고 모두 조져 버려. 저놈은 내가 직접 상대하고 싶거든.”
“……!”
용덕고 일진들이 동시에 흠칫했다.
혹시 명성고의 김동빈은 아닐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저놈 진짜 김동빈 맞아… 동영상과 조금 다르잖아?”
“뭘 겁먹어! 주철이 새끼가 뺑끼 쓰는 거야!”
요즘은 모자를 안 써도 몰라보는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사복을 입으면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머리를 길렀더니 못 알아보는 놈들이 많네. 주철아, 내 머리가 그렇게 이상하냐?”
“아니, 과도하게 짧았던 스포츠머리보다 훨씬 낫다.”
동빈은 계속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예전 동영상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충분히 헛갈릴 만한 상황이었다.
“씨, 씨발! 이건 반칙이잖아! 김동빈을 왜 데려와.”
놈들의 황당함은 극으로 치달았다.
동빈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로 알려진 존재였다.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주철에게 괜한 원망을 퍼부었다.
“아까 말했잖아? 이놈하고 드라이브하던 중이었거든. 좋은 말로 할 때 찬수라는 놈 풀어 달라고 했잖아.”
“조, 졸라…….”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모두가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빈과 싸우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동빈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뚜벅뚜벅.
공포의 발소리.
동빈이 거리를 좁히자 놈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10명이나 되는 동료도 믿을 수 없었고, 손에 있는 무기도 의지가 되지 않았다.
“에이… 씨발!”
후앙.
부질없는 반항이 시작되었다.
까만 털모자를 쓰고 있던 놈이 각목을 휘두르며 뛰어든 것이다. 동빈을 잡겠다는 행동은 아니었다. 동빈이 피하면 그대로 입구로 달려갈 태세였다.
푸악!
동빈에게 먼저 덤비면 손해다.
강력한 뒤돌려차기가 놈의 얼굴에 적중했다.
철퍼덕.
놈은 맥없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눈을 부릅뜬 채 고꾸라지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였다.
“도, 도망쳐!”
우르르.
나머지 놈들은 싸울 의욕을 상실했다. 무기를 버리고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주철이 앞 다투어 도망치는 놈들의 진로를 방해했다.
부릉∼!
오토바이로 창고 입구를 막은 것이다. 가까이 접근하는 놈들은 그대로 오토바이로 밀어붙였다.
유일한 퇴로까지 차단당한 놈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푸악!
“크엑…….”
동빈은 너무도 쉽게 놈들을 처리했다. 주철이 입구를 막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