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문한 경찰서.
동빈은 극도로 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항상 죽음을 가까이하고 지낸 그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웠다.
머리가 복잡했다. 누가 자살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입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이쪽에 앉지.”
“…….”
동빈의 행동은 매우 수동적이었다.
박 형사가 하라는 것만 마지못해 행동할 뿐이었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박 형사가 권하는 자리에 몸을 맡겼다.
“마음 편하게 가지라고… 오늘은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자격이니까… 솔직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뭐, 확인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박 형사는 상당히 꾸물거렸다.
의자에 몸을 더욱 깊숙이 묻고는 애먼 서류를 몇 번 뒤적거렸다.
“저기…….”
“……!”
박 형사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동빈이 고개를 들었다. 잔뜩 굳어진 표정. 마음의 준비가 섰다는 뜻이었다.
“혹시… 김철호라고 알고 있나?”
“김철호? 아니요, 모릅니다.”
뜻밖의 질문이었다. 동빈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흔한 성과 이름이었지만 동빈의 머릿속에 확실히 떠오르는 인물은 없었다.
“유정고등학교 학생인데?”
“정말 모릅니다.”
“그래…….”
박 형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빈의 대답을 믿는다는 행동이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괜히 마음만 조급해질 뿐이었다.
박 형사가 쓸데없이 말을 돌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 김철호라는 애에 대해서 묻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자살을 했는지…….”
“자살했다는 사람이 바로 김철호라는 학생이야.”
“네?”
동빈의 마음은 복잡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안심이 든다고 해야 할까? 혜영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학생을 왜 언급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뒤섞여 있었다.
“자네 팬카페 있지? 회원 수도 많고 꽤나 유명하던데?”
“제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닙니다. 선아라는 아이가 무턱대고 만들더니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자네 메일은 살펴보나?”
“아니요. 누굴 때려 달라는 소리가 하도 많아서…….”
동빈은 자신의 팬카페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였다. 우선은 싸움 잘해서 유명해졌다는 말이 싫었다.
계속 들어오는 폭력의 청탁 또한 동빈의 방문을 뜸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다.
“내가 상황을 정리해 주지. 철호라는 학생이 그곳에 많은 내용을 썼더군. 죽기 직전에는 유언 비슷한 내용도 남겼고…….”
“어떤 내용입니까?”
“글쎄… 정확한 내용은 자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 언급하고 싶지 않아. 비상구가 없었다는 표현 정도만 알려 주겠네.”
“비상구가 없다… 비상구가 없다… 비상구가 없다…….”
동빈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계속 반복하여 중얼거리다 보니 대충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빈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고, 박 형사도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 과음을 했더니 머리가 띵해 죽겠어… 철호 학생이 왜 자네한테 유언 비슷한 것을 남겼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한잔했거든.”
‘오늘 왜 이러지…….’
동빈은 박 형사의 푸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장군의 아들부터 시작해서 철호라는 학생의 일까지… 머리가 깨질 듯이 복잡했다.
“동빈이, 자네는 그 학생의 가족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찰도 아닌데 말이야.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없었나? 이럴 때는 형사라는 직업에 많은 회의를 느끼지.”
‘진짜 비상구는 없는 것인가!’
오늘은 수능 날.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시험지와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도 치지 않는 동빈 또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차라리 시험을 보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었다. 수능에는 정답이 있지만 동빈의 고민에는 확실한 답을 찾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