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내일 뵙겠습니다.”
동빈은 예정보다 일찍 피아노 학원을 나섰다.
원장이 제대로 가르치기 힘든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원장은 마음을 추스르고 내려왔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똑같이 장군의 아들인 동빈을 가르쳐야 했기 때문인가? 원장은 결국 중간에 레슨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제… 어디로 가나.”
일찍 끝나도 할 일이 없었다.
공부? 오늘 같은 기분에서는 하나 마나 한 상황이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석진의 충고가 옳았어. 인간관계의 폭을 넓혀야 했는데…….”
마땅히 불러낼 친구도 없으니 문제였다.
주철은 오늘이 대목이라고 좋아했다. 수능 끝나고 쏟아지는 고3 누나들 꼬신다고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또한 석진은 기회만 생기면 수진과 데이트를 즐겼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터벅터벅.
괜히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 양아들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인지도 몰랐다.
“병원이나 갈까…….”
혜영이 입원한 곳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9시 뉴스에 등장한 뒤로 출입 금지 명령이 떨어졌으니… 진짜 외톨이 신세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운동이나 할까… 참… 깡패들 올 시간이 안 됐지…….”
터벅터벅.
동빈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아무리 추워도 항상 손을 빼고 행동했던 동빈이었다. 발걸음도 힘이 없었고 어깨도 약간 처져 보였는데…….
멈칫.
골목으로 들어선 동빈이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동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깡패는 아니다. 정반대되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 형사님.”
“그래… 오랜만이다.”
동빈을 기다린 것인가? 박 형사는 낡은 사륜 구동차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동빈이 먼저 인사하자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로…….”
동빈은 의아한 듯 물었다. 경찰차가 직접 출동한 것이 아니다. 현행범이나 수색영장이 나왔다고 볼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서에 좀 가야겠다.”
“죄송하지만 무슨 사건입니까?”
최근에 벌어졌던 것은 일일 찻집 사건이었다. 이제야 밝혀질 이유는 없었기에 반문하는 것이었다.
“자살 사건인데… 동빈이 너와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이름이 나와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 좀 했으면 하는데…….”
“……!”
동빈의 눈은 몰라보게 커졌다. 박 형사도 뭔가를 눈치 챘는지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누군지 짐작이 가는 사람 있나?”
“서, 설마…….”
동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제발 불안한 예감이 맞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