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4/224)

동빈 일행이 애용하는 분식집은 학교와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빈 일행이 들어서는 분식집은 다른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덜컹.

“누나, 라볶이 3인분요.”

동빈은 분식집에 들어서자마자 주문을 했다. 먹을 때 가장 신나 하는 것이 동빈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빨리 만들어 줄게.”

20대 초반의 여인은 주방으로 향했고 동빈 일행은 지정석에 앉았다. 남들의 시선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장소였다.

“어라? 물이 떨어졌네? 잠시만 기다려.”

“동빈아, 됐다. 내가 가는 게 낫겠다.”

물은 셀프다. 두 잔은 잘 따랐지만 아쉽게도 한 잔이 부족했다. 동빈이 물통을 들고 급히 일어서자 석진이 만류했다.

“내가 간다니까?”

“됐거든. 한창 손님 올 시간이다.”

주철도 동빈이 움직이는 것을 반대했다.

자율 학습을 끝낸 다른 학교 학생들이 몰려들 시간이었다. 최대한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내가 무슨 죄인이냐?”

“참아라. 우리 여기서도 쫓겨나면 진짜 갈 곳 없다.”

또르르.

어느새 빈 물통을 채워 온 석진이 나머지 잔을 채웠다.

이곳만이 유일하게 동빈 일행이 환영받는 장소였다. 예전에는 이곳이 노는 애들의 아지트였다.

지금 주방에 있는 여주인도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타일러도 소용없고 야단을 쳐도 그때뿐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오지 않으니 장사는 날로 어려워졌고, 바로 그때 동빈 일행이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그때 양아치 새끼들을 몰아냈기에 그나마 손님 대접 받는 거야. 너 때문에 다시 손님 끊겨 봐. 저 누나가 좋아하겠어?”

“주철이 너까지…….”

“난 이 집 음식이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조심조심하자.”

“…….”

우울하긴 했지만 동빈은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다닐 마음이 있으니 이런 소리라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막돼먹은 친구였다면 예전에 동빈을 제쳐 놓았을 것이다.

“라볶이 나왔습니다. 맛있게 먹어.”

“네! 열심히 먹겠습니다.”

라볶이가 등장하자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쟁탈전이었다. 누가 먼저 삶은 계란을 집느냐가 첫 번째 관건이었다.

스윽.

주철의 젓가락이 먼저 반응했다.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다. 동빈이 분식집 주인에게 말하는 틈을 이용한 것이다.

“……!”

누가 봐도 삶은 계란은 주철에게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러나 동빈의 반사 신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철의 젓가락이 삶은 달걀에 닿기 직전!

화악.

동빈은 전광석화처럼 계란을 낚아챘다. 스타트가 늦은 불리함을 순간적인 스피드로 극복한 것이다.

“야, 야, 야, 오늘은 좀 양보해라!”

“흐흐흐… 그렇게는 안 되지.”

동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주철을 자극했다.

“내가 계산하잖아. 좀 줘!”

“계산은 계산이요, 계란은 계란이로다.”

동빈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까지 흉내 냈다. 한마디로 못 주겠다는 뜻이었다.

“반쪽짜리 계란 가지고 치사하게 나올래?”

“또 삐쳤는가?”

“누가 삐쳤다고 그래!”

“주철아, 그냥 나처럼 포기해라.”

석진은 삶은 계란에 대한 집착을 버린 지 오래였다.

둘의 싸움을 말리는 듯했지만 서비스로 넣어 준 만두를 열심히 그릇에 담고 있었다. 모두가 경쟁자인 상황이었다.

“주철 학생, 다음부터는 계란 3개 넣을까?”

“아니요. 계속 하나만 주세요. 언젠가는…….”

이런 다툼은 매번 벌어졌다.

분식집 주인이 선심을 쓴다고 해도 주철이 계속 거부한 것이었다.

후르룩.

“우와! 맛있다.”

동빈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먹었다.

계란 쟁탈전이 끝나고 이제는 스피드 싸움이다. 누가 빨리 먹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었다.

“안 뜨겁냐?”

“뜨, 뜨겁기는… 어후∼.”

주철은 스피드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선천적으로 음식을 늦게 먹는 체질이었다.

“석진아, 말 좀 하면서 먹어라.”

끄덕끄덕.

석진은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말없이 꾸준히 먹는 스타일이었다.

“아, 진짜 재미없네. 이야기 좀 하면서 먹자.”

주철은 경쟁에서 탈락한 비애를 철저히 맛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석진과 동빈은 꾸역꾸역 라볶이를 해치웠다.

“꺼억∼, 잘 먹었다. 무슨 말을 하자고?”

동빈은 이제야 주철에게 관심을 보였다. 포만감이 가득한 얼굴로 주철을 바라보았다.

“미친다.”

“열심히 먹는 사람 불러 놓고 왜 미쳐?”

동빈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다. 이렇게 성의를 보이건만 주철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내가 뭘 바라겠냐. 그래, 요즘 조폭들은 어떠냐?”

“조폭? 무슨 조폭?”

“저번에 사고 친 거 있잖아. 잠잠한 거야?”

주철은 일일 찻집에서의 사건을 언급했다.

성격 더러운 조폭들이라 그냥 넘어갈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야간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

“야간 운동?”

“보복을 한다나, 어쩐다나. 뭉텅이로 올 때마다 지그시 밟아 주고 있다. 별문제는 없는데 이놈들이 꼭 밤에만 찾아와. 오늘도 집 근처에 가면 진을 치고 있을 거다.”

주철의 예감은 적중했다. 조폭들은 동빈에게 보복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놈들이 계속 덤비는 거냐?”

“응, 조폭이나 일진이나 어째 그리 똑같으냐? 놈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그렇게 깨지고도 또 와? 일진들이 조폭의 행동을 보고 배운 건지. 일진이 커서 조폭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뭐… 비슷비슷한 놈들이니… 하여간 고생 좀 하겠다.”

주철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동빈이 귀찮다는 반응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꺼억∼. 잘 먹었다. 동빈이, 너 또 사고 쳤냐?”

석진이 뒷북을 쳤다. 라볶이 그릇을 깨끗이 만든 후에야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석진아, 너 계속 먹고 있던 거냐?”

“응, 저녁을 적게 먹어서…….”

매우 궁색한 변명이다. 셋은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때도 석진은 엄청난 식욕을 자랑했었다. 점심을 적게 먹었다는 이유를 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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