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라운드가 끝났다.
동빈의 상태는 과히 좋지 못했다. 여기저기 칼에 베인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뚝뚝뚝.
쇠 파이프를 쥔 손에서는 붉은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주철아, 괜찮으냐?”
“헉헉… 괜찮기는 한데… 히, 힘들어 죽겠다.”
주철은 상당히 지쳐 있었다. 간신히 버티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였다.
“이제 진짜 쉬어도 된다.”
“헉헉… 상황을 봐야지… 또 있을지… 어, 어떻게 아냐…….”
“그거야 물어보면 되겠지. 이봐, 또 소환할 거리 있어?”
동빈은 행동대장을 향해 직접 물었다. 주철은 제발 없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후후후. 이제야 지쳤나?”
“난 괜찮은데, 내 친구가 문제라서 말이야.”
동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괜찮다는 표정을 보였다.
거짓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피로 범벅이 됐지만 안정적인 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괴물이군.”
“그런 말 나올 줄 알았다.”
역시나 행동대장도 똑같은 말을 했다. 동빈의 끊임없는 체력이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자네 정도 상대할 인원은 충분히 남았지.”
“시파…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주철의 인상이 먼저 찌푸려졌다.
일이 꼬였다는 뜻이었지만 동빈은 한술 더 뜨는 행동을 보였다.
“시간 끌지 말고 한꺼번에 소환했으면 하는데?”
“너 미쳤냐!”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넌 저쪽에서 쉬고 있어.”
주철이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동빈은 쇠 파이프를 고쳐 잡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 볼까?”
스윽.
행동대장은 가벼운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부하들을 부르는 행동이 분명했다.
딱!
“……?”
기운차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딱! 딱!
두 번을 연속으로 튀겨도 마찬가지였다. 행동대장의 미소는 단번에 사라졌다. 잔뜩 일그러진 상태로 철문 밖에 있는 수하를 노려보았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저, 저기…….”
행동대장이 소리를 질러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놈은 멍한 표정으로 계단과 이어지는 장소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당장 애들 부르란 말이야!”
행동대장은 잔뜩 열이 받은 상태였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수하에게 달려가려 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푸악.
“……!”
엄청난 타격음이 울렸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곧이어 시커먼 뭔가가 계단 위에서 날아왔다.
쿠웅.
“무, 무슨 일이야?”
행동대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계단 위에서 날아와 철문과 이어지는 벽에 부딪친 것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수하가 분명했다. 수하들이 미친 것인가? 아니면, 밖에서 기다리기 지루하여 계단 위에서 몸을 날려 벽면에 박치기를… 당치도 않은 소리다. 문 앞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수하 또한 멍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무슨 일이냐니까!”
“그, 그게…….”
철문 밖을 지키던 놈은 뭔가를 말하려 했다. 그러나 운이 나쁜 것인지 또다시 날아오는 놈과 정통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푸악.
“크윽…….”
문 앞의 놈은 엄청난 덩치에 깔려 꼼짝도 못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행동대장도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후앙.
철퍼덕.
세 번째 놈은 업어치기를 당한 것 같았다.
거꾸로 날아와서 벽면에 처박혔다. 철문과 이어지는 계단 벽면은 조폭들로 쌓여 갔고 요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북한 말씨를 쓰는 노인의 음성이었다.
“뭔 깡패들이 이리도 많네? 또 덤벼 보라우.”
퍽퍽퍽.
우당탕탕!
이번에는 단체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조폭 여럿이 한데 엉켜서 계단을 굴러 내려왔다.
뚜벅뚜벅.
정체불명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도, 도대체…….”
행동대장은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겁을 먹은 것인가? 철문 밖으로 나가서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정체불명의 인물은 계단을 내려와서 모습을 드러냈다.
“동빈이, 여기 있네?”
말쑥한 양복 차림의 노인이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상당히 작은 체구여서 거구의 조폭을 휙휙 집어 던질 정도로 보이진 않았다.
“교, 교관님?”
“오! 제대로 찾아왔구만기래.”
송 교관은 동빈을 발견하고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서는 곧장 동빈에게 다가왔다.
“학원 간다는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기야?”
“죄, 죄송합니다.”
송 교관은 주변 상황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수많은 조폭이 쓰려져 있어도, 사방에 붉은 피가 흥건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빈이 피아노 학원을 빠졌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정 여사가 얼마나 기다리갔어? 날래 가자우.”
“늙은이, 당신은 뭐야?”
송 교관이 동빈을 끌고 가려 하자 행동대장이 나섰다. 철저히 외면당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어린노무 새끼가 누구한테 반말이네?”
“개념 없는 늙은이… 다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행동대장은 매우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천하의 송 교관에게 폭언까지 한 것이다.
송 교관을 아는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거대한 실수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정말 죽고 싶네?”
꾸악.
“크악!”
송 교관은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행동대장의 팔을 꺾었다.
놀라운 스피드였다. 송 교관이 움직인 것을 제대로 확인한 사람이 없었다.
“이 깡패 노무 새끼… 어디부터 부러트려 줄까?”
따르릉따르릉.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에서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따르릉.
“누구 전화간? 동빈아, 빨리 받으라우.”
“잠시만요.”
이곳은 핸드폰이 되지 않는 장소였다. 동빈은 계산대에 있는 전화를 받았고 송 교관은 잠시 체벌을 중단했다.
“여보세요? 네… 이번에 온 깡패 두목도 전화 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저기… 그쪽이 보스인 거 알고 있거든요.”
“동빈아, 무슨 전화네?”
“행동대장 바꾸라고 하는데요?”
“이 싸가지 없는 놈 말이네?”
끄덕끄덕.
동빈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전화를 바꿔 줄지 말지는 송 교관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싸가지 없는 깡패 새끼. 전화 받으라우.”
송 교관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행동대장을 풀어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행동대장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크윽… 여, 여보세요. 네, 보스!”
다 죽어 가던 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보스에 대한 예의가 확실한 놈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바, 방금 들어왔습니다. 북한 사투리를 쓰고… 네, 맞습니다.”
행동대장은 송 교관의 눈치를 보며 통화를 했다.
“처, 철수요? 지, 지금 말입니까?”
“통화는 간단히, 모르네? 대체 누구 전화네?”
화악.
“……!”
송 교관은 순식간에 수화기를 뺏었다.
행동대장은 다시 뺏으려 했지만 송 교관의 움직임을 당할 수는 없었다.
꾸악.
“또 움직이면 모가지가 부러질지 알라우.”
“……!”
송 교관은 어느새 행동대장의 목을 쥐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행동대장이 잠잠해지자 송 교관은 진중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떤 깡패 자식이네?”
뚜뚜뚜뚜.
“메야?”
조직 폭력배의 보스가 송 교관을 알고 있는 것인가? 송 교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대편은 전화를 끊었다.
“싸가지 없는 깡패 새끼. 네 보스인지 뭔지 만나면 전하라우. 다시 내 눈에 띄면 그냥 밟아 버리겠어.”
“모, 모두 철수한다.”
엉금엉금.
우르르 도망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이 환자였기에 멀쩡하게 나가는 놈은 없었다.
“쯧쯧쯧… 젊은 놈들이 할 짓이 없어 깡패나 하고 말이지.”
송 교관은 혀끝을 차며 조폭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장군과 송 교관은 깡패라면 이를 갈았다. 그 영향으로 동빈도 깡패라면 안 좋게 생각하는 면이 많았다.
오늘은 송 교관이 양복 더러워질까 봐 많이 참는 것이었다.
“동빈아,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은 누구네?”
조폭들이 모두 떠나자 송 교관은 주철에게 관심을 보였다. 기생오라비? 쉽게 말하면 잘생겼다는 뜻이었다.
“제 친구 주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꾸벅.
주철은 크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보통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한 행동이었다. 이처럼 포스가 넘치는 노인은 처음이었다.
“그래, 고놈 참… 머리도 작고, 몸도 호리호리하구만기래. 요즘은 이런 놈들이 여자한테 인기가 많다며?”
주철은 꽃미남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다.
송 교관은 주철의 모습을 계속 아래위로 살펴보았다.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제가 좀 생겼습니다. 물론 여자한테도 인기가 많습니다.”
“아주 좋아. 나와 함께 가자우.”
송 교관은 다짜고짜 주철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안달하는 행동을 보였다.
“저기… 어, 어디를…….”
“어디긴? 내래 좋은 여자 소개해 주려고 그러디.”
“여, 여자요?”
주철은 여전히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마음에 들었단 말인가?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굴 소개해 줄지가 의문이었다. 주철은 꽤나 눈이 높은 편이었다.
“아무렴, 아주 좋은 아이디.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쁘고… 키도 큰 편에다…….”
“교, 교관님. 호, 혹시…….”
동빈이 불안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쁘고, 키도 큰 편인 여자? 비슷한 나이 대를 감안하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네 예감이 맞을 기야. 유나를 소개해 주려고 하는데? 그래야 내가 장 여사와 편하게 만날 수 있지비.”
“교관님. 주철이와 유나는 같은 반이에요.”
“같은 반이 무슨 상관이가? 동성동본만 아니면 됐지.”
송 교관은 유나의 남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동빈의 이야기는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저, 저기요, 교관님. 주철이는 여자가 엄청 많습니다. 이런 바람둥이를 유나한테 소개해 준다고요?”
“아직 좋은 짝을 못 만나서 그런 기야. 유나를 만나면 이놈 방황도 끝이야. 아무렴 그렇고말고.”
“도, 동빈아. 제발…….”
주철은 동빈에게 구원 요청의 눈빛을 보냈다.
상대가 부반장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교관님. 제발 그만 하세요. 주철이도 싫다고 하잖아요.”
“너 혹시 질투하는 기가? 이놈 보게… 진짜로 유나한테 관심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