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8화 (119/224)

동빈과 주철은 일진들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웬만큼 인원이 줄어들자 동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철아, 등에 멘 건 뭐냐?”

주철은 등에 뭔가를 메고 있었다. 긴 막대기 같은 것을 검은 천에 싼 모습이었다. X 자로 단단히 묶어 놓은 형태였다.

“목검이다. 혹시 몰라서…….”

주철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이곳을 방문했다.

미군들과 싸웠을 때처럼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겠다는 행동이었다.

“검도가 전공이라고 했지. 그런데 무슨 검도를 배웠냐?”

“비싼 검도.”

“비싼 검도? 그런 검도 유파도 있냐?”

동빈은 검도의 종류를 물어본 것이었다.

대한 검도, 해동 검도, 한국 검도 같은 답변을 원했지만 생뚱맞게 비싼 검도가 튀어나왔다.

“우리 아버지가 비싼 돈 주고 데려온 사범한테 배웠거든. 일반적인 검도는 아니래. 우리나라의 숨은 고수래나 어쨌다나.”

“돈 밝히는 고수였군.”

“그래도 돈값은 했다고 본다. 우리 아버지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진 않거든.”

동빈과 주철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다 빠져나가고 몇몇 학생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은실에 대한 처벌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우르르.

뭔가 잘못된 것인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일진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동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온 것은 아니었다. 바싹 겁먹은 놈들의 얼굴이 바로 그 증거였다.

“야! 너희들 왜 들어와? 아직도 부족한 게 있어?”

“그, 그게 아니라…….”

일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곳에 정이라도 든 것인가? 놈들은 처음에 있던 구석 자리로 다시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좀 전과 똑같이 몸을 사리기 분주했다. 뭔가에 잔뜩 겁먹은 행동이었다.

쿠앙!

와르르.

“어떤 새끼가 보스의 전화를 그따위로 받아!”

일진들이 허둥대며 들어온 이유가 밝혀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일당이 출현한 것이다. 각목과 쇠 파이프로 괜히 벽면을 때리면서 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빈아, 이번에도 나 때문에 공부 못 했다고 원망하지 마라.”

“걱정 마라.”

동빈과 주철은 새로운 조폭들과 맞서야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사고가 커진 것이다.

뚜벅뚜벅.

“이거 난리도 아니구만.”

인상이 험악한 조폭이 들어오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가 두목인 모양이다. 요란스럽게 난리를 치던 놈들은 순식간에 입구에 정렬했다.

“어서 오십시오, 큰형님.”

험악한 인상은 수하들의 인사를 받으며 동빈 쪽으로 다가왔다.

“주철아, 조폭에 대해 좀 알고 있냐?”

“약간… 우리 아버지 일을 거드는 조직이 있어서…….”

동빈과 주철은 귓속말을 나누었다.

“저 험악한 놈이 보스일까?”

“보스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행동대장 정도?”

“행동대장…….”

동빈과 주철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귀찮아진 것이 문제라는 반응이었다.

“누가 내 애들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지?”

행동대장은 꽁꽁 묶여 있는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누구한테 당했는지 몰라도 철저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동빈은 행동대장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뭐야? 고딩 새끼한테 당한 거야?”

“그러게요.”

동빈은 여유롭게 조폭들을 상대했다. 너무나 당당한 모습인지라 행동대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보통 놈은 아닌 것 같군. 정체가 뭐냐?”

“명성고 학생입니다. 그러는 그쪽은 누구신지?”

“그것까지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애들아, 준비해.”

“네, 큰형님.”

더 이상 대화가 필요 없다는 뜻인가? 행동대장이 한 발짝 물러나자 그의 수하들이 몰려들었다.

무조건 힘으로 제압하고 물어보겠다는 행동이었다.

“주철아, 넌 피해 있어라.”

“무슨 소리야? 마침 준비까지 다 하고 왔는데?”

주철은 오토바이 장갑을 끼고 헬멧을 썼다. 그만의 전투태세로 접어든 것이다.

“꼭 호구를 착용한 것 같다?”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

호구護具는 무술 경기 등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머리에 쓰거나 몸의 일부를 가리는 용구였다.

주철은 오토바이 슈트까지 입은 상태라 어느 정도 비슷한 모양새가 갖춰졌다.

“준비됐냐?”

“…….”

동빈은 조폭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상대는 정확히 열 명. 주철이 몇 명을 맡아 주면 손쉽게 끝낼 수 있었다.

“야, 준비됐냐고!”

“…….”

동빈은 뛰어들 태세를 끝마쳤다. 주철의 마음이 바뀐 것인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뭐 해? 아직 준비 안 됐……!”

주철에게 시선을 돌린 동빈은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시파! 왜 이리 안 빠져! 당기면 풀려야 하는데…….”

끙끙.

주철은 어깨에 멘 목검을 꺼내려 안달을 했다.

너무 단단히 묶은 것이 화근이었다.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는 상태였다.

“그냥 나 혼자 싸우련다.”

“기다려, 시파.”

“언제까지 기다려? 저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야, 안 되겠다. 이것 좀 빼 줘. 매듭이 뒤에 있거든.”

“뭘 이리 꽉 맸어?”

초반부터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동빈과 주철은 목검을 감싼 천을 풀기 위해 티격태격했다. 조폭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뭘 기다리는 거야. 그대로 조져!”

“네, 큰형님.”

우르르.

행동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조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종 무기를 앞세우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동빈은 서둘러 매듭을 풀려 했지만 너무나 꽉 묶여 있었다.

“안 되겠다. 그냥 끊어 버리자.”

“절대 안 돼!”

주철은 입에 거품을 물고 만류했다.

조폭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동빈의 속은 바싹 타들었다.

“누가 이리 복잡하게 만든 거야!”

“야! 우리 엄마는 모독하지 마! 한때는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였단 말이야! 날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거야!”

“저놈들이 거의 다 왔다니까! 끊지 않으면 어쩌자고!”

“잔소리 말고, 계속 풀기나 해!”

“도저히 안 풀리잖아. 그냥 주먹으로 싸워!”

“싫다니까! 저번처럼 추하게 싸울 수는 없어! 빨리 풀어!”

“미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험악한 조폭들은 거의 지척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척척척.

놈들은 무기를 치켜세우며 뛰어들 태세로 돌입했다.

“부숴 버려!”

“우와와!”

맨 앞에 있던 놈이 뛰자 나머지 놈들도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물론 동빈은 매듭을 풀지 못한 상태였다.

“에이… 씨!”

후앙.

퍼억!

동빈은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맨 앞의 놈을 발차기로 날려 버렸다. 매듭을 풀어야 했기에 손을 쓸 수 없는 처지였다. 주철은 결국 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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