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6/224)

성큼성큼.

동빈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앞길을 막을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깡패 두목은 혼자서 동빈이란 괴물과 맞서야 했다.

“…….”

두목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자신의 부하 아니, 수십의 일진까지 처리한 존재와 홀로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

동빈은 쇠 파이프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상태… 한마디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멈칫.

“깡패 두목… 뭐라고 소감 한마디 해 봐.”

“…….”

두목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철컥.

잭나이프를 손에 쥐고는 서슬 퍼런 칼날을 튀어나오게 했다. 그러고는 상체를 잔뜩 낮추면서 방어와 공격의 중간적인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칼 솜씨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휭휭휭휭.

“내가 제비뽑기로 이 자리까지 오른 것 같나.”

칼을 다루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잭나이프 칼날은 두목의 손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별 기술도 아니구만…….”

동빈은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동시에 묘기에 가까운 쇠 파이프 기술까지 선보였다.

훙훙훙훙훙.

두 개의 쇠 파이프는 엄청난 회전을 하면서도 동빈의 손을 벗어나지 않았다.

왼손, 오른손 번갈아 쇠 파이프를 돌리다가 한꺼번에 돌리는 장면까지 이어졌다.

촤악.

동빈은 쇠 파이프를 교차한 상태에서 묘기를 끝냈다.

훙훙거리던 파공음이 일시에 사라지자 침묵이 맴돌았다.

“뭐 해? 어서 덤벼 봐.”

주춤주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인가? 두목은 오히려 뒷걸음치며 물러섰다. 동빈과 일대일로 맞서는 놈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어이, 제비뽑기로 깡패 두목 된 게 아니라며?”

후웅.

빡.

“큭…….”

두목은 황급히 손목을 감싸 쥐었다.

칼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방금 맞았건만 눈에 보일 정도로 손목이 퉁퉁 부어올랐다.

“뭐야? 이런 시시한 공격도 못 막고 말이야. 이래서야 깡패 두목이라 할 수 있겠어?”

“이, 이놈이…….”

동빈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서면서 깡패 두목의 사기를 꺾어 놓았다. 차근차근 밟아 주겠다는 행동이었다.

“욕만 하지 말고… 제대로 막아야지.”

퍼억.

“크윽…….”

이번에는 어깨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전광석화 같은 동빈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목은 계속 물러나면서 동빈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했다.

“깡패 두목이라고 해서 뭔가 다를지 알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도망만 다니면 내가 섭섭하지.”

빠각.

휘청.

깡패 두목의 무릎이 아작 났다.

그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크게 비틀거렸다. 무엇이든 지탱할 것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동빈의 다음 공격이 훨씬 빨랐다.

푸억.

주르르.

동빈의 쇠 파이프가 두목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마가 찢기면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깡패 두목의 얼굴은 점점 추하게 변했다.

“깡패 두목까지 올라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롭힌 거야?”

퍽퍽퍽.

동빈의 파상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인간 샌드백을 치는 것과 흡사했다. 잔뜩 몸을 움츠린 깡패 두목의 상체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피가 튀건 비명을 지르건, 동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깡패 짓 하려면 혼자나 할 것이지. 왜 학생들까지 끌어들여!”

푸악. 푸악. 푸악.

복날 개 잡는 것보다 더욱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

동빈은 한쪽 손으로 두목의 멱살을 잡고 다른 손으로 연신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사방으로 튀는 피는 동빈의 얼굴까지 붉게 물들였다.

푸악! 푸악! 푸악!

쇠 파이프의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한쪽 구석에 몰려 있던 일진들도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조, 졸라 무섭다. 저러다 진짜 사람 잡겠는데…….”

“조용히 해, 씨발… 김동빈 새끼 아주 미친 거 같다.”

일진들은 숨을 죽이며 동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깡이 세다는 놈들이었지만 슬슬 외면하는 놈들이 속출했다.

“다시 학생들에게 접근하면 진짜 머리통을 부숴 놓는다.”

빠각!

동빈은 리더의 머리를 후려치면서 폭력을 중지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동빈은 놈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이봐, 내 말뜻 알았어? 몰랐어?”

흔들흔들.

여전히 말이 없다. 두목의 고개는 힘없이 축축 늘어질 뿐이었다.

“말 안 하면… 지금 부숴 버린다.”

“꺼억…….”

리더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뜻이라 할 수 있었다.

벌떡.

동빈이 몸을 일으키자 일진들은 몸을 사리기 분주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몇 놈이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후우… 후우…….”

이상한 일이다. 싸움이 끝난 순간 멀쩡했던 동빈의 숨이 거칠어졌다. 어깨까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숨을 고르고 주변에 널려 있는 조폭들을 쳐다보았다.

챙그랑.

동빈은 손에 있던 쇠 파이프를 던지고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난장판으로 변한 곳곳을 뒤져서는 밧줄과 포장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쓰러진 조폭들을 묶을 만한 것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참! 너희들은 이 무기도 먹어야 하지?”

“……!”

기절한 척했던 조폭들의 눈이 커졌다.

동빈이가 열쇠를 삼킨 것처럼 자신들은 쇠 파이프와 사시미 칼을 먹어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리 와.”

동빈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놈 중에서 한 명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고는 두꺼운 쇠 파이프를 놈의 입속에 넣으려 했다.

“음! 음음! 음∼!”

놈은 반항을 하려 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다.

꽉 입을 다물고 고개를 흔드는 행동이 고작이었다.

“뭐야? 더 이상 안 들어가잖아. 할 수 없지. 그냥 옆으로 물어.”

“으음∼. 커억!”

동빈은 놈의 입에 쇠 파이프를 물리고 포장 테이프로 감았다. 그러고는 손과 발은 준비한 밧줄로 묶었다.

동빈으로서는 꽤나 선심을 베푼 셈이었는데…….

“뭐야… 넌 이걸 사용했지?”

“……!”

사시미 칼을 무기로 사용했던 놈은 난감함을 감출 수 없었다.

쇠 파이프라면 옆으로 물어도 상관없지만 칼은 달랐다. 자칫하면 입이 찢기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걱정 마. 칼날은 반대로 할 테니까.”

“으음∼! 으음∼!”

오늘따라 동빈이 많은 선심을 베풀었다. 입이 찢기는 사태는 막기 위해 칼날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놈은 잭나이프잖아? 이건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데?”

동빈은 쓰러진 조폭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조폭들을 모두 포박한 동빈은 계산대 쪽으로 다가갔다.

동빈은 일진들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계산대에 등을 기대고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역시…….”

이곳은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장소였다. 핸드폰 액정에는 통화권 이탈이라는 표시만 들어와 있었다.

“어디 보자.”

동빈은 이리저리 주변을 뒤졌다. 그러고는 박살 난 전화기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유선전화만이 밖과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부스럭부스럭.

동빈은 떨어져 나간 부품을 모아서 전화기 수리를 시작했다. 통신 장비에 대해서는 동빈도 일가견이 있었다.

이것저것 짜 맞추고는 두 동강 난 수화기를 테이프로 감았다.

스륵.

화들짝.

동빈의 단순한 손놀림에도 일진들은 주춤거렸다. 사실 그들도 몰래 핸드폰으로 도움을 요청하려 했었다. 물론 통화권 이탈이라 실패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었다.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동빈의 행동을 주시했다.

“다 됐나…….”

동빈은 전화기 코드를 꽂고는 수화기를 귀에 댔다.

“아주 좋아.”

통화가 가능한 모양이다. 동빈은 흡족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번호를 다 누르고는 통화가 되기를 기다렸다. 목이 뻐근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었다.

“여보세요. 주, 주철이냐?”

제대로 연결이 된 것 같다. 동빈은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별건 아니고… 아니, 사실은 별거 맞다. 내가 사고 좀 쳤는데 뒷수습이 필요하다.”

동빈이 사실대로 털어놓자 주철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에고! 귀야…….”

동빈은 귀에서 잠시 수화기를 떼었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처럼 빠져나갈 구멍까지 생각하지 않잖아. 뭐… 빨리 올수록 좋지. 여기? 일일 찻집. 서일여고 근방 일진들이 하는 거라는데? 그래… 핸드폰 안 되니까 도착하면 바로 이 번호로 전화해. 그래, 부탁한다.”

딸깍.

동빈은 전화를 끊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폭력의 정점에 선 존재였지만 뒷수습은 영 재주가 없었다. 주철이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부슥.

잠시 고개를 숙였던 동빈은 이제야 일진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르르.

동빈의 눈길을 외면하려 딴청을 부리는 장면이 속출했다. 고개를 처박는 것은 기본이었고 괜히 땅바닥의 먼지를 쓸기도 했다.

“방은실.”

“엉? 나, 나 말이야……?”

동빈의 나직한 목소리에 은실은 경기를 일으켰다. 그녀도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다. 사건이 커진 것도 다 그녀의 책임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진진하게 대화 좀 해 볼까?”

끄덕끄덕.

은실은 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일으키자 수군거림이 동시에 일었다.

“씨발. 모든 게 저년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그러게… 왜 김동빈은 끌어들여서…….”

은실은 뒤통수가 따갑게 느껴졌다.

자신을 원망하는 눈길이 선했다. 고개를 들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으로 동빈을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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