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2/224)

최 원장은 팔짱을 끼고 상담실의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상담에 임하는 의사의 바른 자세는 아니었다. 그만큼 머리가 복잡하다는 뜻이다.

“장군님, 아니… 이제부터는 선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최 원장은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의사가 아닌 다른 입장에서 대화를 하겠다는 표현이었다.

“최 원장한테 선배 소리를 들으면 괜히 무안해지는데?”

외모로 보면 최 원장이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장군은 장난처럼 말했지만 최 원장의 반응은 여전히 심각했다.

“농담은 그만 하십시오. 무슨 이유로 저를 만나자고 한 겁니까? 진짜 상담을 받고 싶은 겁니까? 아니면… 비밀스러운 고민이라도 털어놓으실 작정입니까?”

“물론 상담을 받고 있는 입장이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를 떠나 의사는 자네 아닌가? 나는 군인일 뿐이지.”

“뭐… 좋습니다. 상담하는 입장에서 장군님의 신념까지 반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빈이가 관련되었다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동빈의 무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사회에서의 싸움은 군대의 전투와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군. 과정이야 어떻든, 싸워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최 원장은 머리숱도 별로 없는 정수리를 매만지며 반문했다.

장군의 말과 태도는 반항심에 물든 청소년의 그것들과 비슷했다. 대한민국 장성이라는 이미지와 상당히 동떨어져 보였다.

“한번 전쟁을 시작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지. 사회에서도 똑같은 법칙이 통하고 있지 않은가?”

“글쎄요. 국가 간의 전투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회에서는 공평한 싸움이 없습니다. 힘이 부치는 전쟁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전쟁의 법칙 아닙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학원 폭력은 사회적 현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침 잘됐군. 이참에 뒤틀린 사회 모순까지 바로잡으면 될 거야. 동빈이의 생각은 무척 간단하지. 장애물은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는 파괴 본능이 숨겨져 있거든.”

장군은 묘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어떤 조직도 동빈을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현재의 사회까지 포함해서…….

“무슨 뜻입니까? 동빈이가 사회적 모순을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까?”

“적이라는 개념까지는 아니겠지. 동빈에게 적이라는 의미는 불쌍한 존재에 불과해. 적으로 찍히면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으로 전락하거든. 지금은 그냥 장애물이라는 개념에 머물러 있을 거야. 장애물도 타도의 대상이긴 하지만 완전히 끝장을 보지는 않아.”

“점점 무서운 말씀만 골라서 하시는군요. 그래서 저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저도 동빈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거들었으니 책임을 지라는 뜻입니까?”

최 원장의 음성이 높아졌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정을 느낀 것이다.

“이런… 기분이 상했다면 내가 사과하지.”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장군님의 입김이 작용하긴 했지만 의사 된 도리에서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신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 원장은 굳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동빈이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 장군이 직접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찾아온 목적은 당연히 상담을 받기 위해서네. 이젠 명령으로 다스릴 수 없으니… 아비 된 입장에서 동빈이를 대해야겠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지 않은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셨군요. 저도 자식이 있지만 제가 좋은 아버지인지는 장담 못 합니다. 정확한 해답이 없으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동빈이 문제는 일단락 짓고 이제는 장군님 문제로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최 원장은 질문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좋은 아버지? 누군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너무 광범위해서 확실한 대답을 하기 힘들었다.

“내 문제는 간단하네. 예전에도 물었던 것인데… 자식을 잃은 슬픔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만 가져오셨군요. 이번에는 너무 쉬운 질문입니다. 그때도 똑같은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장군님이 죽을 때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끄덕끄덕.

장군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네.”

고갯짓을 멈춘 장군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고 최 원장도 상담을 계속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도움이 못 되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나마 자네가 있어서 마음이 편해. 정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면 내 정적들이 꼬투리로 삼으려 하겠지.”

장군과 최 원장은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정신과 상담이 아니라 선후배 간의 대화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를 곱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아직도 군 내부의 싸움이 정리되지 않았습니까?”

“정리는 무슨… 더욱 복잡하게 되었지.”

군에서 장군의 위치는 조금 애매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입장을 고수했다.

“선배님, 어느 사회의 조직이든 파벌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중립적인 노선보다는, 어느 한쪽에 확실히 몸을 의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회든 파벌은 존재하지만 군대는 달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커다란 명제가 있는데 왜 파벌로 갈려야 하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뭉치는 놈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장군의 의지는 확실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군인의 위치를 넘어선 행동은 절대 받아들일 용의가 없었다.

“장군님은 적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이제는 편히 쉬셔야지요. 그래야 마음의 상처도 빨리 아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내 팔자라고 생각하네. 국가 간의 전쟁이든 개인적인 알력이든, 절대로 피할 마음은 없네.”

“저는 선배님을 믿습니다.”

최 원장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병원 밖까지 장군을 배웅하려는 의도였지만 곧바로 제지를 받았다.

“됐네. 괜히 수고할 필요 없네.”

“아닙니다. 기분도 그런데 술이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술은 됐고… 대신 부탁 하나만 하지.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면 동빈이를 잘 부탁하네. 아직은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할 것 같아.”

“장군님, 무슨 말씀을……?”

최 원장은 깜짝 놀라 반문했고 장군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너무 놀랄 필요는 없네. 만약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았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치사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자네도 동빈이를 사회에 끌어들인 책임이 있지 않은가?”

“…….”

최 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최 원장이 주춤하는 태도를 보이자 장군은 계속 말을 이었다.

“먼저 가야겠네. 오랜만에 한잔하고 싶지만… 자네를 나쁜 아버지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빨리 돌아가서 아이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게. 그래야 좋은 아버지 소리를 들을 것 아닌가?”

“제 아이들은 그렇게 어리지 않습니다. 큰놈은 군대까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할 나이입니다.”

“대학생 아들과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톡톡.

장군은 최 원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이다. 아들이 무사했다면 올해 수능을 치를 나이였다. 장군의 아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끼이익.

“최 원장.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술을 사지.”

장군은 상담실 문을 연 상태에서 말했다.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 원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엄청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잘 있게.”

장군은 조용히 상담실을 나섰다. 최 원장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지 스스로 문까지 닫았다.

딸깍.

문이 닫히자 최 원장의 표정이 변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터지려고…….”

한숨에 가까운 독백이었다.

상담이 끝나고도 머리가 복잡했다. 최 원장의 시선은 장군이 방금 나간 문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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