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10/224)

동빈이 상담을 받았던 신경정신과 병원.

누군가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힘든 발걸음을 했지만 병원 안으로는 들어서지 못했다. 일요일은 쉰다는 표시판이 입구에 붙어 있었다.

쩔렁쩔렁.

오늘 병원이 쉰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지 않고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덜컹.

위아래로 잠긴 자물쇠를 열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 내부는 깜깜했고 보안장치의 불빛만이 연신 깜박거렸다.

-카드를 넣어 주세요. 카드를 넣어 주세요.

“아차! 카드가 어디 있더라…….”

병원 직원이 아닌가? 보안장치가 작동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보기 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카드를 찾는 남자의 손길도 덩달아 바빠졌다.

“맞다.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지.”

기계음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보안 카드를 찾을 수 있었다.

부리나케 카드를 꺼내서는 보안장치에 가져갔다.

틱.

“휴∼. 정말 요란하게도 울린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이 일시에 사라지자 병원에 들어선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벽면에 있는 스위치를 찾아서 눌렀다.

딸깍.

형광등의 불이 켜지자 병원 안이 환해졌다.

물론 어둠 속에 있던 남자의 정체도 드러났다.

“내가 원장 맞는 거야? 병원 보안장치도 잘 모르니…….”

최 원장은 금테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원 문을 열고 닫는 일은 거의 간호사들이 담당했다. 최 원장이 혼자만, 그것도 남들 다 쉬는 휴일에 직접 나온 것은 뭔가 특별한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최 원장, 이 시간에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장군님. 어서 들어오시죠.”

언제 나타났는지 장군이 최 원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군과의 약속 때문에 최 원장이 부랴부랴 나온 것이다.

“병원이 조금 바뀌었군. 예전에는 자동문 아니었나?”

장군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던 모양이다. 투명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물었다.

“관리도 힘들고 해서 얼마 전에 바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최 원장은 따듯한 미소로 장군을 맞이했다. 가벼운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는 상담실로 장군을 안내했다.

끼익.

최 원장이 먼저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형광등부터 켜는 것이 순서였다. 언제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담실 내부가 드러났다.

“장군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고맙군.”

최 원장은 가볍게 손을 뻗어 자리를 권했다.

장군이 소파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최 원장도 자리를 잡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군인의 삶이야 언제나 비슷하지. 훈련에 훈련… 계절이 바뀌는 것 빼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어.”

최 원장은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꺼냈다. 장군 또한 일상적인 대답으로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사고가 한꺼번에 터져서 국방부가 곤란하다고 하던데요?”

“글쎄, 내가 언급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장군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애매하게 이야기를 끊었다.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장군님 문제로 오셨습니까… 아니면 동빈이 문제로…….”

“둘 다라고 할 수 있지.”

“한꺼번에 들을 수 없으니, 우선 동빈 군에 관한 내용부터 말씀해 보시지요.”

최 원장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표정 또한 잃지 않았다. 이야기가 길어져도 상관없다는 행동이었다.

“동빈이는 뛰어난 군인이야. 처음에는 사회 적응이 더뎌서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정반대의 입장이지. 며칠 전에 최 원장과 상담을 받았다고 하던데… 특별한 문제라도 생겼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아무리 부자 관계라도 개인적인 상담 내용까지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뭔가 특별한 이상을 발견했다면 제가 먼저 장군님을 찾았을 겁니다.”

최 원장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장군은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동빈이를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야. 동빈이의 많은 부분이 국가 기밀로 취급되지.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섭섭한 말씀이군요. 동빈 군의 경력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동빈의 경우도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처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에 불과합니다.”

“최 원장. 내 말뜻을 아직 이해 못 한 모양이군.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네.”

장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너무나 차분하여 위협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동빈이를 사회로 불러들인 사람은 장군님입니다. 그리고 지금 동빈이가 겪고 있는 일 또한 보통의 학생이라면 한번쯤은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동빈이의 과거로 볼 때 그리 심각한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폭력을 언급하는 것인가?”

“글쎄요. 반드시 학교 폭력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사회적 부조리나 불합리성에 대한 적응 과정입니다. 처음이야 사회가 이렇구나 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입장이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왜 그런지 하는 의문을 품게 되고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찾게 되는 겁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이야. 예전에야 명령으로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거든.”

“동빈이가 다칠까 염려하시는 겁니까?”

“뭐, 뭐라고? 우리 동빈이가 다쳐? 하하하하!”

냉철한 표정을 유지했던 장군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크게 웃었던 때가 언제던가? 장군은 눈물까지 찔끔할 정도로 웃고 있었다.

“험험. 미, 미안하군…….”

장군은 웃음을 멈추려 노력했다. 최 원장의 황당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 고맙네. 큭…….”

장군은 완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무는 과정을 거치고야 간신히 말문을 열 수 있었다.

“험… 동빈이의 안전에 대해서 걱정한 적은 없네. 물론 동빈에게 맞는 놈들 또한 신경 쓰지 않을 거야. 폭력을 쓰는 놈들에게 학생 대접은 과분하지.”

“매우 위험한 말씀입니다. 예전 아드님 때문에 학원 폭력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장군님의 주장대로라면 동빈이도 똑같은 입장 아니겠습니까? 더 큰 폭력을 쓰니 말입니다.”

“그때도 분명히 말했을 거네.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전쟁의 법칙이라고…….”

“……!”

최 원장의 입가가 실룩였다.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장군의 아들이 죽었을 때 진지한 상담을 했던 기억이었다.

그때도 똑같은 말을 듣긴 했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없었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의 표현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장군의 발언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장군님, 일진회 몇 개 박살 낸다고 학원 폭력이 없어질 것 같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글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줄어들긴 하겠지?”

“학원 폭력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성세대의 사회적인 병폐가 가장 큰 원인라고 봅니다. 강압적인 방법은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그런 학생들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선도를 하여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지속적인 선도라… 아주 좋은 말이군. 그러나 페어플레이도 페어플레이를 이해하는 상대한테 적용해야지. 폭력을 쓰는 존재에게 그런 관용은 필요 없네. 그놈들은 폭력을 페어플레이라 생각하니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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