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7/224)

우르르.

사건이 커졌다. 여러 테이블에 흩어져 있던 창석고 놈들이 동빈을 향해 뛰어들었다. 거칠기로 소문난 창석고답다. 의자까지 들고 달려드는 놈도 있었다.

“진짜 대화하기 힘드네.”

파파팟.

쓴웃음을 지어 보인 동빈은 앉은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났다.

몸이 서서히 펴짐과 동시에 뒤돌려차기로 곧바로 이어졌다.

푸악.

의자를 들고 오던 놈이 날아갔다. 손을 높이 치켜든 상태라 동빈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했다.

와장창!

놈은 고개가 확 꺾이면서 다른 테이블로 날아가 쓰려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지만 끝까지 의자는 놓치지 않았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일일 찻집 아닌가?”

퍽퍽.

입을 여는 놈부터 손보는 것이 동빈의 특기였다.

왼손과 오른손. 동빈은 가벼운 주먹을 놈의 얼굴에 적중시켰다. 워낙 빠른 공격이었다. 방금 맞은 놈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주르르.

“코, 코피… 이런 개새……!”

붉은 피를 확인하고야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표정이다. 곧바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뛰어들려 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동빈의 발차기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빠각.

“……!”

가공할 내려찍기가 놈의 정수리에 내려꽂혔다.

조용히 흐르던 코피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뿌려졌고, 놈의 몸은 천천히 기울어졌다.

풀썩!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파에 쓰러진 것이다. 눈을 부릅뜬 채로 의식을 놓고 말았다.

“뭘 보고 있어! 차, 창석이 당하고 있잖아.”

당황한 창석고는 다른 학교에 도움을 청했다. 초록은 동색이라 했던가? 관여치 않고 있던 놈들이 한꺼번에 몸을 일으켰다.

와르르.

꽤 수가 많다. 동빈보다 체격이 좋은 놈도 여럿 있었다.

이 근방 일진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동빈은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은실이 너 인기 좋다.”

동빈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숫자를 배경으로 둔 은실이 겁먹은 표정이었다.

“내, 내가! 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낮아졌다. 동빈의 눈치를 보며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

“은실아. 진짜 이 새끼 누구야?”

“…….”

은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빈의 정체가 밝혀지면 자신을 버릴 거라는 두려움에 빠졌다.

“진짜 궁금한 것도 많네… 난 혜영이 남자 친구라고 말했잖아. 그러니까 너희들은 하던 짓이나 계속해. 아니면 덤비든가!”

차작.

“……!”

동빈의 차가운 목소리에 주변이 다 조용해졌다. 뭔가 있는 놈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전국 연합이냐? 아니면 학생 경찰이냐?”

“뭐야? 그러면 너희들은 학생 깡패였어?”

고교 삼국지.

지금 이곳에 모인 놈들은 조직 폭력배의 지원을 받는 일진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의심될 만한 적들을 언급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동빈도 놈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깡패가 아니라 조직이다.”

“조직이나 깡패나 똑같은 거 아닌가? 은실이한테만 볼일이 있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어… 우리 아버지가 깡패를 무척 싫어하시거든!”

촤르르.

동빈이 탁자를 바로 밀치면서 먼저 움직였다.

사각의 탁자는 약간 비스듬히 돌면서 학생 깡패들을 향해 돌진했다.

“……!”

기습을 당한 놈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몰려 있기에 탁자를 피하기가 수월치 않았다.

와장창!

“크억… 이런 씨발!”

탁자에 맞아 넘어지는 놈들이 속출했다. 한 명이 넘어지자 줄줄이 뒤엉켜 쓰러졌다.

“겁대가리 없는 새끼!”

부웅!

재빠른 놈은 탁자를 피할 수 있었다.

탁자를 뛰어넘으며 동빈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물론 동빈도 같이 뛰어오르며 발차기를 시도했다.

퍼억!

발차기 기술은 동빈이 한 수 위였다.

놈의 발차기를 가볍게 손으로 막고는 그대로 안면에 뒤꿈치를 작렬시켰다. 달려오던 속도가 있기에 놈의 충격이 배가되었다.

철퍼덕!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땅으로 처박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흐를 정도로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무턱대고 뛰어들려던 놈들도 멈칫했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쨍그랑 쨍그랑!

곳곳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동빈을 잡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야야∼.”

한 놈이 고함을 지르며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차 없이 휘두르는 동빈의 주먹에 날아가는 놈들이 속출했다. 탁자가 부서지고 병이 깨지고… 일일 찻집은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했다.

“은실아, 저놈 누구야?”

여자 일진들은 한쪽 구석에 몰려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면 남자 못지않은 깡으로 뛰어드는 애들도 많았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수많은 싸움 구경을 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은실아, 내 말 안 들려! 저놈 누구냐니까?”

“…….”

가장 궁금한 것이 동빈의 정체였지만 은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문제였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의 여자 친구 이름이 혜영이란 것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떤 놈을 건드린 거야? 혜영이란 년은 또 누구고?”

“말 좀 해 봐, 이년아!”

“…….”

은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곳곳에서 원망의 눈길이 쏟아졌다.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은실의 입이 열리긴 했는데…….

“엄마야!”

와장창!

누군가 피떡이 되어 날아오자 비명을 지른 것에 불과했다.

잔뜩 겁먹은 눈으로 동빈의 활약을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정말 답답해 죽겠네!”

“…….”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은실의 마음은 더 답답했다.

장난삼아 혜영을 놀린 것이 이런 사태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흠칫.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질 때마다 은실의 표정도 함께 변했다. 얼굴은 이미 하얗게 변했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도망?

은실은 이제야 왜 그런 생각이 났는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동빈의 기세에 눌려서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부슥.

은실은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동빈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움직이려 했는데, 그때였다.

덥석.

“엄마야!”

누군가 은실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은실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토했다. 다행히 동빈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크억… 켁! 끄윽… 칵… 사… 살려…….”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장천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공격을 당했기에 이런 추한 모습까지 보인단 말인가? 창석고 짱이라는 존재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자, 장천아…….”

은실을 측은하게 장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여자 친구라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창석고 짱이라고 사귀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이었다.

“제발 이것 좀 놔라. 응?”

“크억… 켁! 끄윽…….”

은실은 매정하게 장천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입구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동빈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 거의 다 왔다.”

은실의 마음이 급하다. 동빈이 언제 자신을 발견할지 몰라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도 노력한 보람은 있는지 두꺼운 철문에 거의 다 도착했다.

“혜영이 년… 나중에 잡히기만 해 봐라.”

이제 몸을 일으키면 된다. 철문만 빠져나가면 반은 성공한 셈이었는데…….

털컹!

빠악.

갑자기 철문이 열렸고 은실의 이마에 정통으로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벅벅벅벅.

“아야 퍼! 어떤 새끼가…….”

은실은 버둥거리며 이마를 매만졌다.

함부로 소리를 지를 수 없으니 더욱 괴로웠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시자 은실은 고개를 들었다. 욕이라도 퍼부어 주려 했지만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

일진과는 상대도 안 되는 존재들이 등장한 것이다.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는 조폭은 은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난장판으로 변한 가게를 보고는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주춤.

내부에 있던 학생들이 한꺼번에 동작을 정지했다. 동빈도 싸움을 멈추고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재미있게 놀라고 가게까지 빌려 줬더니…….”

“혀, 형님!”

10명가량의 조폭이 출현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진짜 조직 폭력배가 나타나면서 싸움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뚜벅뚜벅.

날카로운 인상의 조폭이 천천히 걸어왔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학생들은 숨조차 조심스럽게 쉬며 조폭들을 쳐다보았다.

스윽.

조폭의 리더는 동빈과 알맞은 거리에서 멈췄다.

부하들이 서둘러 의자를 대령하자 진중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비스듬한 자세로 동빈을 쳐다보았다.

“입구에 있던 2명도 네놈 짓이냐?”

“돈 주고 산 티켓을 안 받잖아.”

동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진짜 조폭들이 몰려왔다고 긴장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 가게를 망친 건 괘씸하지만 기백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조직으로 들어와라.”

“지랄하네… 난 깡패 새끼들 싫어하거든. 공산당보다 더 싫어.”

동빈의 입이 거칠어졌다. 조폭들이 발끈했지만 리더는 손만 치켜들어 수하들을 진정시켰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어차피 네놈도 폭력을 쓰는 놈이잖아. 주먹을 쓰려면 제대로 된 물에서 놀아야지.”

“닥쳐… 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던 놈이야. 똑같은 부류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동빈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

목숨 바쳐 충성했던 과거의 전력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것 같은데… 문 잠가.”

“네, 형님.”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놈이 철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열쇠를 꺼내서 두꺼운 자물쇠까지 채웠다.

철컹.

거북한 쇳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폭들의 행동에 완전히 기가 죽은 반응이었지만 한 명은 예외였다.

“아, 아저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저는 나가야 해요.”

“미친년… 저리 안 가!”

저만치 밀려난 은실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는 조폭들이 동빈을 이겨 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봐. 내가 한 가지만 말해 주지. 이곳은 보통 업소가 아니야.”

“몰랐네? 일일 찻집 아니었어?”

리더의 위협을 동빈은 장난으로 받아쳤다.

“일일 찻집은 하루지… 대부분은 손봐야 할 놈을 정리하는 데 쓰고 있지.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전혀 모르거든. 어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나?”

“아니… 내 생각은 절대 변함없어!”

“……!”

파파팟.

동빈은 속임수를 쓴 것인가? 당당하게 맞서던 태도를 버리고 갑자기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저 새끼 도망친다.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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