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걸터앉은 동빈은 벽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봉사 활동을 갔다 온 다음부터 쭉 이런 모습이었다. 매우 전투적인 모습이었고 진짜 벽이 뚫어질 것 같은 착각까지 일었다.
“왜 불러도 대답이 없네?”
“네?”
깜짝 놀란 동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골똘히 생각하느라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무슨 고민 있네?”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송 교관이 방문을 빠끔히 연 상태에서 동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괜찮다는 동빈의 말을 믿지 못하겠는지 방 안까지 들어왔다.
“쯧쯧쯧… 사내대장부가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러네?”
“네?”
동빈의 고민을 눈치 챈 것인가? 송 교관은 동빈의 넓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공부야 못할 수도 있는 기야. 꼴찌는 조금 심했지만 말이디… 동빈이 네가 노력을 안 했다면 문제지만 해도 안 되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기야. 아무렴.”
“네…….”
송 교관의 헛다리 짚기에 동빈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날래 내려와서 과일 먹으라우. 장군님도 기다리고 계시디.”
“알겠습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이디… 아까처럼 그런 표정 짓지 말라우. 꼭 작전 투입 직전의 살벌한 모습이잖네. 이젠 평범한 고등학생 아이가?”
“……!”
눈빛… 작전 투입 직전의 동빈의 눈빛… 작전을 함께 수행하는 동료들조차 꺼릴 정도였다.
적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눈빛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터벅터벅.
동빈은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거실 풍경은 한가롭게 보였다. 소파에 앉은 장군과 송 교관은 9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장군님 오셨습니까.”
“그래, 이쪽으로 앉아라.”
동빈은 장군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TV 쪽으로 곧장 시선을 돌렸다. 조금 무뚝뚝한 부자 관계였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장군은 과일을 집어 주며 대화의 물고를 열려고 했다.
“이것 좀 먹어 보아라.”
“감사합니다.”
동빈의 대답은 단답형으로 끝났다. 그러고는 다시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나 없는 동안 잘 지냈느냐?”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
동빈이 놀라서 쳐다보자 장군은 할 말을 잃었다.
출장을 떠났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아비보다 더 무심한 아들이었다.
“나와 함께 TV를 보는 것이 거북한 것이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장군도 동빈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무엇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인다. TV도 전투적으로 보고 있고… 무슨 일 생긴 것이냐?”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대화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장군은 괜히 동빈의 시간만 뺏은 느낌이 들었다.
“피곤한 것 같구나. 올라가 쉬어라.”
“네…….”
동빈은 기다렸다는 듯이 위층으로 올랐다. 괜찮다는 대답을 기대했던 장군은 더욱 난감한 상황이었다.
“송 교관님, 동빈이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저놈의 문제야 공부밖에 더 있겠습니까?”
끄덕끄덕.
장군이 생각하기에도 그 문제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신 공부를 해 줄 수도 없으니… 장군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여자 앵커의 또박또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늘 오후 6시경 서울 인근의 정신병원에서 탈출로 추정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취재에 박영관 기자입니다.”
여자 앵커의 화면이 사라지면서 정신병원 정경이 드러났다. 중년의 기자는 10층짜리 건물을 배경으로 멘트를 시작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탈출 소동이 벌어진 장소입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체격이 건장한 청년이 옥상으로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말해 주는 밧줄까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찍은 영상을 보면…….”
화면이 바뀌면서 화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모자를 쓴 건장한 청년이 기가 막힌 솜씨로 밧줄을 타고 올랐다. 5층부터 옥상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정신병 환자가 탈출한 것이 아닌지 추정되고 있지만, 병원 관계자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안전 장비 없이 건물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라 합니다. 경찰은 전문적으로 건물을 털었던 전과자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가장 염려스러운 일은 병원 가까이 고아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군님. 범인이 누군지 짐작이 가십니까?”
“…….”
장군은 송 교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 반복되는 탈출 영상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