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병동이 있는 10층짜리 건물은 최근에 건축을 했는지 깨끗하고 말쑥한 모습이었다. 5층은 환자보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더욱 많았다. 복도를 걷던 누군가가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끼이익-.
젊은 여의사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여러 가지 차트를 비교하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갸웃?
문 쪽을 향한 여의사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금테 안경을 살짝 올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상담은 끝난 것 같은데요?”
“안녕하십니까. 김동빈이라고 합니다.”
꾸벅.
잘못 찾아왔다는 말이었지만 동빈은 여의사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봐요. 상담은 끝났어요.”
“급하게 물어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혜영이 남자 친구입니다.”
“……!”
여의사는 이제야 뭔가를 눈치 챈 표정이었다. 동빈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쪽으로 앉아요.”
“감사합니다.”
여의사는 동빈이 의자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혜영이가 입원한 건 어떻게 알았어요? 가족들이 연락했나요?”
“아니요.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가족들의 동의도 없이 절 찾아왔다는 뜻인데…….”
여의사의 얼굴에는 난감한 빛이 역력했다. 환자나 가족의 동의 없이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혜영이를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안 돼요.”
여의사의 의지는 단호했다. 동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혜영이가 어머님을 만난 것을 봤습니다.”
“동빈 학생은 가족이 아니잖아요. 환자의 상태를 봐서 외부인의 면회를 허락해요.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판단되면 만나게 해 줄게요.”
“…….”
동빈은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의사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동빈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찾아온 성의는 고맙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요.”
“병실만 살짝 보는 것도 안 됩니까?”
도리도리.
여의사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도와주고 싶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그럼 언제쯤 면회가 가능합니까? 다음 주에 오면 되겠습니까?”
“조금 힘들 것 같은데… 환자의 상태가…….”
벌떡.
동빈은 여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일으켰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여의사가 흠칫할 정도였다.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
동빈의 음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했다. 동빈의 눈을 쳐다본 여의사는 숨이 막히는 느낌에 빠졌다.
뚜벅뚜벅.
동빈은 조용히 뒤돌아 상담실을 빠져나갔고 동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의사의 표정은 복잡했다.
“휴우∼.”
갑자기 터지는 한숨.
진짜로 숨이 막혔던 것이다. 동빈의 모습이 사라지자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