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1/224)

동빈이 찾아간 정신병원은 규모가 꽤 컸다.

정신 장애인 진료와 정신과 의료 요원의 교육 훈련까지 실시하는 병원이었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현재는 12개의 진료과와 1,000개 가까운 병상을 보유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정신과 병원이란 소개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이거… 시간 때우기가 만만치 않은데…….”

서류를 전해 줄 의사 선생은 외출 중이었다.

동빈은 정신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오죽했으면 병원을 소개하는 글까지 열심히 읽겠는가. 할 일 없이 기다리는 것은 동빈의 체질과 맞지 않았다.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

심심할 때 울리는 전화벨처럼 반가운 것은 없었다.

동빈은 발신자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전화를 받았다. 땅 사라는 전화도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여보세요. 응!”

반가운 전화가 확실하다. 동빈의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졌다.

“뭐 하긴 열심히 봉사 활동 하고 있지. 나 빼놓고 잘 놀고 있냐?”

그럼,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 쓰러질 지경이다.

놀이동산에 있는 석진의 전화였다. 동빈만 빼고 놀러 간 것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주철이 여자 친구 또 바꿨지?”

당연하지. 내가 이름 잘못 불러서 분위기 몇 번 썰렁했다.

“다음부터는 같은 이름 사귀라고 해. 우리만 골치 아프잖아.

동빈은 전화를 길게 끌고 싶었다.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장기전 태세로 접어들었다.

언제 끝나냐?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

“저녁은 무슨… 그냥 너희들끼리 잘 놀아라.

다시 생각해 봐라. 이따 저녁때 너 소개시켜 주려고 했던 여자 애도 나오기로 했거든?

“……!”

동빈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여자란 말에 또 충격을 받은 것인가? 멍한 표정까지 지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도, 동빈아? 듣고 있냐?

“응…….”

동빈의 목소리는 매우 기운이 없었다.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야? 괜찮아. 주철이가 그러는데 너하고 잘 어울릴 거래. 편하게 저녁이나 하면서…….

“미, 미안한데… 수, 수진이 좀 바꿔줘.”

수진이? 자, 잠깐만…….

“…….”

수진이가 조금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석진이 수진을 부르는 목소리가 동빈의 핸드폰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서둘러 뛰어오는 기척과 함께 수진의 활기찬 음성이 들렸다.

안녕. 동빈아. 여기 너무 좋다. 너도 함께 왔으면 좋았잖아.

“…….”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행동만을 반복했다.

왜 그래… 동빈아?

“저기…….”

동빈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잔잔하게 떨리는 음성이 수상하다.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헛갈리는 목소리였다.

우리끼리 놀러 와서 삐친 거야?

“그게 아니라… 캐나다에 있는 혜영이는 잘 있어……?”

동빈아…….

수진은 탄식에 가까운 음성을 발했다. 아직도 혜영이를 떠올리는 동빈이 안타깝다는 표현이었다.

“말해 봐… 남자 친구도 생기고… 잘 지낸다고 했잖아.”

그래, 너무 잘 있지. 당분간은 귀국하기 힘들 거야. 아니, 계속 캐나다에서 살 수도 있어. 그러니까 동빈이도 혜영이는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

“다른 문제는 없고……?”

문제가 무슨 문제? 너무 편한가 봐. 살이 쪄서 걱정이란 소리는 들었거든.

“사, 살이 쪘다고… 내가 보기에는 수척해서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무, 무슨 소리야? 동빈아. 동빈아!

핸드폰을 쥔 동빈의 팔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빈 수화기에서는 연신 동빈이를 부르는 수진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젠장… 여기가 캐나다야……?”

동빈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캐나다에 있다는 혜영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보게 되었다. 몰라볼 정도로 수척한 얼굴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무슨 고민이 많아서 이곳에 온 거야…….”

옷차림이 수상하다. 정신병원에서 주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연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힘없이 걸었다.

“그, 그래도… 머리는 많이 자랐구나…….”

언제쯤 돌아올 것이냐고 동빈이 물은 적이 있었다. 예전처럼 머리가 길어지면 온다는 그녀의 대답…….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긴 했지만 아직 동빈을 만날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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