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의 계절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학생들은 들뜨기 시작한다. 특히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이라면 그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우르르.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가방을 챙겼다. 동빈 역시 빠르게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빈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유나는 연신 싱글벙글거리는 동빈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리도 즐겁냐는 물음이었다.
“아주 좋은 일이 있지. 알아맞혀 봐.”
“나한테 다시 물어보면 어떻게 하니? 도대체 뭔데?”
“봉사 활동!”
“봉사 활동?”
동빈은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유나는 고개만 갸웃했다.
동빈이 봉사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의문인 표정이었다.
“지금 고아원 갈 거야.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기분도 꽤나 괜찮은데?”
“어머나! 동빈이 다시 봐야겠다. 다른 애들은 놀러 간다고 난리도 아닌데…….”
“뭘 이런 거 가지고… 내가 사람들을 돕는 걸 좀 좋아하지.”
다행이다. 유나는 동빈이 봉사 활동 점수가 없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동빈이 순수한 마음으로 고아원을 찾는 것이라 판단했다.
“동빈이 너 약속 있었어?”
“바로 옆에 있으면서 못 들었냐?”
주철의 물음에 동빈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둘의 서먹서먹한 사이가 꽤나 오래가고 있었다.
“봉사 활동은 몇 시에 끝나는데?”
“하루 종일 할 예정이다. 그건 왜 묻지?”
“석진이랑 같이 놀이동산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석진이? 극장이고 어디고 남자끼리 가면 무조건 추하다며?”
“미쳤나? 그놈하고 둘이 가게? 당연히 커플 모임이지. 내가 자유이용권이 많이 생겼거든.”
주철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석진이 뒤에서 조종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재미있게 즐기면서 오해를 풀자는 소리였지만 동빈의 반응은 냉담했다.
“난 싫으니까 너희들끼리 잘 갔다 와라.”
“너 진짜 이렇게 나올래? 도대체 왜 싫은 거야?”
“너희들은 쌍이고 난 혼자잖아? 그냥 봉사 활동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국가 최고의 특수부대원이 솔로 부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커플들의 염장질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구슬픈 반항이었다.
“쯧쯧쯧… 그럴 줄 알고. 내가 괜찮은 여자 구해 놨다.”
“여, 여자… 그것도 괜찮은…….”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봉사 활동이냐 여자냐… 동빈은 심하게 갈등하는 표정이었다.
“정말 괜찮은 여자다. 놓치면 후회할걸?”
‘봉사 활동은 잠시 미뤄도 상관없지 않을까? 조만간 고아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동빈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주철이와 화해도 할 수 있는 기회잖아? 놈이 어렵게 마련한 자린데 함부로 거절하기도…….’
자꾸만 놀이공원에 가야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못 이기는 척 따라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유나가 끼어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철아, 그만 해라. 동빈이는 봉사 활동 하러 갈 거야. 그렇지 동빈아?”
“무, 물론이지… 보, 봉사 활동은 매우… 중요하지…….”
유나의 말은 무엇이든 옳다는 생각 때문인가? 아니면 주철에 대한 반항심이 남아 있는 것인가? 결국은 유나의 말에 동조해 버렸다. 물론 표정 관리는 잘 되지 않았다.
“어째 아쉬운 표정인데?”
“무슨 소리!”
주철의 의심을 받자 더욱 큰 목소리로 반박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끝까지 밀어붙일 작정이었다.
“아무리 봐도 아쉬운 표정이야.”
“아쉽기는! 나도 여자 친구 있잖아. 비록 멀리 갔지만…….”
“야! 제발 정신 좀 차려. 넌 버림받은 거야. 수진이도 그만 잊으라고 했잖아. 혜영인가 뭔가 캐나다 가서 잘 살고 있다며? 남자 친구까지 사귀었다고 하던데? 너보다 키도 더 커. 190이래나…….”
“한번 여자 친구는 영원한 여자 친구야. 그 애가 잘 살고 있다면 당연히 축하해 줘야지.”
“동빈이 너무 멋지다. 진짜 남자다워.”
“고맙다. 날 인정해 주는 사람은 유나밖에 없구나.”
주철이 소외당하는 상황이다. 동빈의 해병대 같은 말투에 유나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주철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진짜 잘 논다. 이 기회에 사귀지그래?”
“…….”
“…….”
동빈과 유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