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7/224)

“크윽…….”

맨바닥에 떨어진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흙먼지로 뒤덮인 대수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게, 한꺼번에 덤비라고 했잖아?”

“……!”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준 벙거지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대신 강진고 일진들은 당혹한 빛이 역력했다.

한번 붙어 보자 했던 부짱조차 흠칫할 정도였고 동빈 또한 매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 뭐야? 실전에 쓰이는 특공 무술!’

일반적인 특공 무술이 아니었다. 특수부대 내에서 갈고 다듬어진 특공 무술이 출현한 것이다.

“너희들은 잠시 기다려. 우리 원석이가 복수를 해야 하거든.”

벙거지는 나머지 강진고 학생들이 뛰어들지 못하게 막아섰다. 그러고는 한쪽 구석에 있던 원석을 불렀다.

“원석아. 밟아 버려.”

“…….”

“뭘 망설여? 너를 괴롭혔던 놈이잖아?”

주춤주춤.

벙거지가 독촉하자 껄끄러운 반응을 보였던 원석이 움직였다. 괴로운 신음을 토하고 있는 대수에게 다가간 것이다.

“매일 당한 게 분하지도 않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동안 당한 것을 똑같이 갚아 주는 것뿐이야.”

부들부들.

원석은 심하게 몸을 떨었다.

힘들게 발을 들긴 했지만 차마 짓밟지는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과 그동안 쌓여 온 감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새 까먹은 거야? 너뿐만이 아니라 힘들게 고생하는 어머니까지 욕했잖아.”

“이 새끼… 죽어! 죽어! 죽어!”

퍽퍽퍽!

마침내 원석의 분노가 폭발했다.

아무런 반항도 못 하는 대수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독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보아 웬만해선 끝낼 것 같지 않았다.

“대, 대수야. 괜찮아!”

“내 허락 없이 움직이면 안 되지.”

파팍!

참다못한 강진고 일진이 뛰어들었지만 벙거지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쉴 사이 없이 쏟아지는 벙거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이건 또 뭔 난리래?’

동빈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원석은 미친 듯이 대수를 밟아 댔고 강진고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어찌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커다란 변수가 작용했다.

“크윽… 너 같은 새끼한테는 안 당한다!”

퍼억-.

피떡이 된 대수가 반격을 성공시켰다.

순간적으로 주먹을 뻗어 원석의 얼굴을 가격하여 쓰러트린 것이다.

“씨발! 주제를 알고 덤벼야지!”

퍽퍽퍽-.

상황이 역전되었다. 비틀비틀 일어난 대수가 원석을 짓밟았다. 벙거지는 원석을 돕지 않고 소리만 질러 댔다.

“원석아. 일어나! 일어나서 싸우란 말이야!”

“크악…….”

“이 새끼가 어딜 잡아!”

원석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수의 발을 잡는 것뿐이었다. 연신 얻어터지면서도 끝까지 잡고 매달렸다.

“원석아,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미친 새끼! 완전히 끝장을 내 주마.”

“컥… 컥… 컥…….”

원석의 상체는 대수의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연신 거북한 신음을 토했지만 끝까지 붙잡고 매달렸다.

“언제까지 당할 거야. 싸워서 물리쳐!”

“이야야∼!”

풀썩.

찢어지는 듯한 원석의 고함과 함께 대수가 뒤로 넘어갔다. 원석이 발을 잡고 넘긴 것이다.

“그래! 원석이 넌 할 수 있어!”

“대수야! 저런 새끼한테 당할 수는 없잖아!”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개싸움이 따로 없다. 원석과 대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필사적으로 싸웠다. 겉보기에는 엇비슷한 형세였지만 경험 면에서는 대수가 한 수 위였다.

“이 새끼야! 진짜 죽고 싶지!”

퍼억퍼억!

가끔 터지는 대수의 주먹은 매서웠다.

비록 한 손밖에 사용을 못 했지만 파괴력은 여전했다. 원석은 독기로 버텼지만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필요했다.

“끄악! 이 새끼야! 물지 마!”

부웅-.

모든 면에서 불리한 원석은 입까지 사용했다.

대수는 비명을 지르며 원석을 발로 밀쳐 냈다. 바싹 마른 원석의 몸은 한참이나 밀려서 반쯤 무너진 벽면까지 날아갔다.

비틀비틀.

“헉… 헉… 헉…….”

정신력의 승리인가? 원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다. 눈은 반쯤 풀렸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정도였다.

“개새끼… 이제는 내가 용서 못 한다.”

대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까지 몰린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솟구치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니가 먼저 덤빈 거야… 죽어도 책임 못 져!”

대수는 이를 악물고 원석에게 달려들었다. 주먹까지 불끈 쥐며 확실히 끝장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헉… 헉… 헉…….”

원석은 사납게 달려드는 대수를 보며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자꾸만 눈을 찡그리는 것이 수상하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지 벽에 등까지 기댄 상태였다.

“원석아! 맞받아쳐! 너는 할 수 있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뜻인가? 벙거지는 직접 원석을 돕지 않았다. 여전히 목청만 높여서 원석이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을 보냈다.

“대수야, 제발 확실히 처리해!”

강진고도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대수가 원석에게 패한다면 이만저만한 망신이 아니었다.

양측 모두가 이번 충돌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허접한 새끼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

대수는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을 뒤로 뺐다. 상체까지 크게 뒤로 젖히면서 최대한 힘을 모았다. 달려가는 속도까지 있으니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부들부들.

원석도 부실한 주먹을 뒤로 뺐다. 정면으로 맞받아치겠다는 행동이었다.

누구의 주먹이 먼저 닿을 것인가! 아무래도 대수 쪽이 유리해 보였다.

“이 새끼야! 싸움은 내가 한 수 위라고 했지!”

후웅-.

대수가 먼저 주먹을 뻗었다.

무게중심을 확실히 담은 회심의 일격이다.

자신감의 표현인가? 얼굴에는 승리를 예감하는 미소가 번졌다.

“원석아! 뭐 하는 거야! 주먹을 뻗어!”

절체절명의 순간, 원석은 주먹을 뒤로 뺀 상태를 고수했다.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다. 주먹을 뻗을 힘조차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의지는 있었으나 체력이 따라 주지 않으니… 결과는 너무나 뻔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빠악!

예상보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원석은 처참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먹을 뒤로 뺀 상태에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수의 주먹이 빗나간 것인가? 그렇다면 엄청난 소리의 정체는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저, 저놈은 또 누구야?”

모든 시선이 반쯤 무너진 벽에서 튀어나온 동빈에게 집중되었다. 결정적인 순간, 대수와 원석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다.

“나한테 고맙다고 해. 내가 막지 않았으면 사람 죽었어. 그러니까… 손목 부러진 것 정도는 이해하라고.”

“……!”

대수는 주춤거리며 자신의 주먹을 살펴보았고, 동빈의 주먹과 정면으로 맞닿은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막혔다면 문제가 없지만 손목이 심하게 뒤틀린 모습까지 선명하게 들어왔다.

단련된 동빈의 주먹과 정면충돌했으니 콘크리트 벽을 맨손으로 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악!”

대수는 선천적으로 반응이 느린 모양이다.

벙거지에게 손목이 부러졌을 때에도 뒤늦은 비명을 질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이나 부러진 손목을 확인한 후에야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원석이라고 했지. 괜찮으냐?”

동빈은 비틀거리는 원석을 양손으로 부축해 주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제대로 숨을 쉬지도 못했다.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먹 세례뿐이었다.

툭….

원석도 대수 못지않게 반응이 느렸다. 이제야 주먹을 뻗은 것이다. 동빈은 피하지 않고 그냥 맞아 주었다.

피할 정도로 파괴력이 넘치지는 않았다.

“어라? 민간인에게 정통으로 맞긴 처음이네?”

동빈은 엄살을 부렸지만 얼굴을 건드리는 정도의 충격이었다. 기력을 상실한 원석을 위로해 주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독기 품고 반항하는 것도 좋지만 몸도 생각해야지… 저런 놈들한테 다치면 너만 손해란 말이야. 의식 잃지 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셔. 그래… 잘하네.”

“헉… 헉… 헉…….”

동빈은 원석이 쓰러지지 않게 꼭 끌어안아 주었다.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누워 버리면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회복시키려는 배려였다.

갑작스러운 방해꾼의 등장.

모자를 쓴 집단이나 강진고 일진 모두 침묵을 지켰다. 방해꾼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미 동빈의 정체를 파악한 사람도 있었다.

“기, 김동빈! 너도 이놈들하고 한패였냐?”

“뭐라고? 김동빈!”

강진고 부짱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서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동빈은 태연하기만 했다.

“미련한 놈… 내가 모자 썼다고 의심하는 거냐?”

동빈은 계속 원석을 끌어안은 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원석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놈들하고는 관계가 없어? 확실해?”

“속고만 살았냐? 나도 모자 쓴 놈들의 정체가 궁금해. 어이, 벙거지 모자. 도대체 너희들의 정체가 뭐야?”

동신의 시선은 곧바로 벙거지 모자를 향했다. 실전용 특공 무술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 정체가 궁금하지?”

“말해… 아니면 실력 행사 들어간다.”

“……!”

동빈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하자 벙거지가 흠칫했다. 동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인식하고 있는 반응이었다.

“나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고 싶은데… 한 가지가 걸려서 말이야. 빨리 말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

이젠 동빈의 표정까지 변했다.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곧바로 움직이겠다는 마지막 경고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고 마침내 벙거지가 입을 열었다.

“우린 학생 경찰이다.”

“학생 경찰?”

진중했던 동빈의 표정이 단번에 무너졌다. 학생 경찰?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동빈은 자신이 아는 지식 내에서 그들의 정체를 유추할 뿐이었다.

“너희들도 경찰서에서 봉사 활동 하는 거냐? 나도 경찰서에서 일 좀 하고 있지만 그런 거 없었어. 청소만 시키던데?”

“장난치지 마라. 우리는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을 위해 뭉쳤다.”

“장난이 아니고… 싸우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싸워. 까딱했으면 원석이가 위태로웠잖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것이지.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계속 일진들에게 당하게 된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어이? 난 그런 복잡한 일에는 관심 없거든. 누구한테 특공 무술 배웠는지나 말해.”

동빈은 벙거지의 말을 잘랐다. 학생 경찰이 무슨 일을 하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동빈의 관심은 그들이 어떻게 실전용 특공 무술을 배웠는지에 쏠렸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비밀이다.”

“비밀? 나도 미안하지만 지금 알고……!”

에에엥-.

동빈은 끝까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 경찰이 출동한 게 분명했다.

“뭐냐… 이 반갑지 않은 소리는…….”

동빈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사이렌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다. 이쪽으로 오는 것이 확실했다.

“김동빈, 나중에 보자!”

“뭐 하는 거야! 빨리 튀어!”

학생 경찰과 강진고 일진은 부리나케 내달렸다. 동빈도 서둘러 움직이려 했지만 커다란 짐을 안고 있으니 문제였다.

“워, 원석아? 정신 좀 차려? 나 도망쳐야 하거든!”

아무리 흔들어도 원석은 눈을 뜨지 않았다. 의식을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었다.

“뭐, 뭐야… 또 일이 꼬인 거야?”

동빈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급해도 환자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곧이어 경찰차가 도착했고 죄 없는 동빈이 제일 먼저 붙잡혔다.

“김동빈… 급한 일이 이거였냐?”

“자, 장 순경님… 그게 아니라요. 난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냥 맞기만 했어요. 정말이에요.”

“누가 맞았다고? 니가?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다.”

사실이지만 아무도 동빈을 믿지 않았다. 괴물로 통하는 동빈이 맞았다? 경찰들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에에엥-.

동빈을 태운 경찰차는 지구대를 거치지 않고 경찰서로 향했다. 장 순경이 머리를 쓴 것이다. 이번 기회에 완전히 동빈을 떨쳐 내겠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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