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도저히 안 되겠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동빈이 움직였다. 인상까지 찌푸리는 모양이 뭔가 사고를 칠 분위기였다.
“도, 동빈아. 어디를 가려고?”
“예? 무슨 말씀을…….”
장 순경은 재빨리 동빈의 팔을 잡았다. 사고 치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동빈은 왜 팔을 잡혔는지 이유를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경고했지. 다른 학생들 겁먹으니까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쓸데없이 나서면 사고만 더 커져.”
“아닌데요? 저는 그냥 밖을 청소하러…….”
동빈은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쓰레기가 점점 쌓여서 뭔가 조치를 해야 할 시점이었다.
“미, 미안… 내가 오해를 했네… 어서 나가 봐. 모자는 푹 눌러쓰고!”
“네, 알겠습니다.”
장 순경은 무안한 표정으로 팔을 놓아 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동빈은 모자를 더욱 눌러쓰며 지구대 밖으로 나섰다.
슥싹슥싹.
동빈은 커다란 빗자루로 지구대 앞을 청소를 했다.
철없는 중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터트린 것인가? 쉬지 않고 계속 쓸어도 쓰레기가 줄어들지 않았다.
멈칫.
열심히 비질하던 동빈의 손길이 멈추었다.
지구대로 몰려드는 강진고 학생들 때문이었다. 씩씩거리며 걸어오더니 지구대 바로 옆 건물로 몸을 숨겼다.
“방금 들어간 놈은 강진고 부짱 같은데?”
날카로운 인상의 소유자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뭔가 작당을 꾸미는 것이 분명했다.
“에이…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말자.”
동빈은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청소에만 열중했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비질을 하는 방향이 수상하다. 어째 지구대 옆 건물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대수 새끼, 왜 잡혀간 거야?”
“씨발! 다짜고짜 원석이란 범생이 때리잖아.”
어느 정도 접근하자 안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빈은 모자를 다시 한 번 눌러쓰고는 계속 청소를 했다.
“진짜 범생이 놈이 먼저 때린 거 맞아?”
“그렇다니까? 범생이 새끼가 미쳤는지 갑자기 달려들었어.”
‘흠… 삐쩍 마른 애가 먼저 때린 게 사실이구나.’
엿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빈은 청소보다는 강진고 학생들의 대화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원석이 새끼를 어쩌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잖아?”
“공부 좀 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 예전에는 대수 새끼한테 꼼짝도 못했는데 말이야.”
“한마디로 미친 거지. 한번 대차게 게기면 우리가 안 건드릴 거라고 착각한 모양인데?”
“기어오르는 놈들은 반드시 본때를 보여 준다. 그놈 집 아는 새끼 수배하고… 야, 선생 온다. 완전히 안으로 들어와.”
‘헉! 서, 선생님! 빨리 숨어야…….’
동빈은 강진고 학생들이 있는 건물로 숨을 뻔했다. 그들의 대화에 너무 심취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 내가 왜 당황을…….’
동빈은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비질을 했고, 강진고 선생님은 상기된 표정으로 지구대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대수와 원석이 선생님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좋은 일이 아닌지라 선생님의 얼굴은 침통했다.
“선생님. 전 가 볼게요.”
“…….”
대수는 건들건들 인사를 하고는 먼저 사라졌다.
선생님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대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야 입을 열었다.
“원석아, 어쩌자고 저런 놈들을 건드린 것이냐?”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그래… 어서 가자.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마.”
선생님은 제자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며 앞장섰고 원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뒤를 따랐다. 이것으로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다. 원석이 떠나자마자 지구대 옆 건물에서 강진고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씨발! 선생이 붙었잖아?”
“상관없어. 선생은 곧 사라질 거야. 어서 가자.”
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원석의 뒤를 따랐다. 지금은 선생님 때문에 어쩌지 못하지만 단단히 버릇을 고쳐 줄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원석이 저놈… 괜히 석진이 생각나게 하잖아?”
동빈은 이번만은 남의 일에 상관하고 싶었다. 그냥 지나쳤다가는 마음이 편할 것 같지 않았다.
덜컹.
마음을 정한 동빈은 서둘러 지구대 안으로 들어갔다.
“박 순경님.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말?”
동빈은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박 순경은 상당히 반색했다. 절대로 붙잡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오늘 못 한 것은 다음에 와서…….”
“괜찮아. 괜찮아. 다시 올 필요 없거든? 내가 확인서 써 줄 테니 잠시만…….”
“아닙니다. 확인서는 다음에 와서 받겠습니다.”
확인서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동빈은 부리나케 지구대를 빠져나갔다.
찰랑찰랑.
“진짜 안 와도 되는데…….”
박 순경은 동빈이 방금 뛰쳐나간 출입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