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3/224)

장 순경의 걱정과 달리 동빈은 매우 성실한 학생이었다.

지구대를 청소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미리 준비한 작업복과 모자를 쓰고는 전투적으로 청소를 했다.

푸악푸악.

힘차게 움직이는 대걸레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터질 정도였다. 청소의 새로운 경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장 순경. 저 학생은 누구야?”

밖에서 들어온 지구대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생전 처음 보는 학생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질문이었다.

“봉, 봉사 활동 학생을 받았습니다.”

“봉사 활동? 내 허락도 없이 받은 거야?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는 놈들은 받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불편하시면 확인서만 써 주고 그냥 돌려보낼까요?”

장 순경은 제발 그렇게 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지구대장은 열심히 대걸레질을 하는 동빈을 쳐다보았고 장 순경은 지구대장의 안색을 살피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깨끗해진 것을 보니… 내가 들어왔다고 열심히 하는 척 꾀를 부리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지구대장은 너무나 깨끗이 변한 지구대를 둘러보았다.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이라 청결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잖아. 장 순경이 알아서 보살펴 줘.”

“네…….”

장 순경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동빈을 보면 꼭 시한폭탄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단 한고비는 넘겼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경찰들의 표정이 변했다. 이제부터 한창 바빠지는 시간이란 반응이었다.

“난 잠시 서류를 정리할 테니 수고 좀 하라고.”

“알겠습니다.”

지구대장은 서둘러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그러나 열심히 청소하는 동빈을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툭툭.

“체격 좋은 학생.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지구대장은 대견한 표정으로 동빈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동빈의 대걸레질이 더욱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콰앙!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찰이 양아치 한 명을 끌고 들어왔다.

“박 순경. 이놈은 또 왜 잡아 왔어?”

장 순경은 양아치의 죄목을 물었고 동빈은 계속 청소에만 집중했다. 동빈의 머릿속에는 지구대를 깨끗이 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중학생 돈을 갈취한 놈입니다. 순찰하다 현장에서 적발했습니다. 한 명이 또 있는데 한 순경이 쫓아갔으니 곧 잡아 올 겁니다.”

“이놈 진짜 정신 못 차리는 놈이네. 빨리 이쪽에 앉아.”

“씨팔… 재수도 더럽게 없네.”

양아치는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없었다. 운이 나빠 잡혔다는 표정으로 장 순경 앞에 앉았다.

“넌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하면 될 거 아니야? 왜 어린 학생들의 돈은 갈취해?”

“누가 갈취했다고 그래요? 빌려 준 돈 받으려 했단 말입니다. 그 중딩 새끼들한테 물어봐요. 내가 돈 뺏었나, 안 뺏었나.”

“어쭈? 경찰서를 밥 먹듯이 드나들더니 요령만 늘었네?”

장 순경은 기도 안 찬다는 반응이었다. 빠져나갈 구실을 미리 생각하고 사고를 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골치 아프게 싸우지 맙시다. 난 죄 없으니 빨리 풀어 줘.”

“이놈이 어디서 반말이야? 소년원에 들어갈 때마다 싸가지를 맡겨 놓고 나오나.”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니까 그렇지! 그 중딩 새끼들하고 대질심문 하자고!”

양아치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한참이나 형뻘인 순경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너랑 이제는 인간적으로 말하기도 싫어진다. 한 순경, 간단한 신원 파악 하고 곧바로 경찰서로 인계해.”

“씨발! 맘대로 해. 누가 짭쌔 새끼들 무서워할 것 같아? 더럽고 치사해서. 카악… 퉤!”

“이 새끼가! 어디서 침을 뱉어!”

장 순경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성질 같아서는 면상부터 후려치고 싶지만, 경찰의 신분이라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씨발, 쳐 봐. 쳐!”

“진짜 경찰 못 해 먹겠네…….”

양아치는 얼굴까지 들이밀며 장 순경을 자극했다.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경찰의 입장을 잘 이용한 행동이었다.

“왜 못 쳐, 씨발! 한 대만 쳐 봐. 제발 부탁이니까 쳐!”

“…….”

장 순경은 한숨을 푹 쉬며 양아치를 외면했다. 상종을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 짭쌔 새끼들! 나중에 내 손에 걸리면 죽어!”

더욱 기고만장해진 양아치는 계속 목청을 높였다.

순경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조용했던 지구대가 난장판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네 발이나 치워… 이 양아치 새끼야.”

“……!”

고래고래 고함을 치던 양아치가 입을 다물었다.

대걸레를 든 동빈을 보고는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당당한 체격도 문제였지만 쫙 깔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너, 넌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발 치우랬지. 청소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부윽부윽.

동빈은 양아치의 반응은 전혀 고려치 않았다.

대걸레를 앞세우며 땅에 떨어진 양아치의 이물질을 닦아 냈다.

“어휴∼ 많이도 뱉었네…….”

“…….”

양아치는 할 말을 잃었다. 청소부라 하기에는 나이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찰도 아니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겁에 질려 추한 꼴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저리 꺼져, 새끼야!”

양아치는 동빈의 대걸레를 발로 차며 시비를 걸었다. 괜히 겁먹은 것이 억울하다는 뜻이었는데…….

부슥.

“왜 신성한 파출소에서 침을 뱉어? 그것도 가래잖아.”

“……!”

동빈이 몸을 세우고 바싹 다가서자 양아치가 주춤했다. 주춤 정도가 아니라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는 행동에 가까웠다.

“여긴 공공장소니까. 다시는 침 뱉지 마라. 응?”

“시, 씨발… 누, 누구 맘대로… 내 침 내가 뱉겠다는데…….”

어설픈 양아치의 반항은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동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똑바로 말해 봐. 하나도 안 들리잖아”

“씨발! 내가 침을 뱉든 뭐 하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열심히 청소하는데 침 뱉으면? 너 같으면 좋겠냐?”

“짭쌔들 믿고 게기나 본데… 넌 학교 다 다닌 줄 알아라. 내 친구들한테 말하면 너는 끝장이야. 그때도 허접한 짭쌔들이 보호해 줄 것 같아?”

양아치는 점점 목소리를 키워 반박했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지만 동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니 친구들이 누군데? 그놈들도 침 좀 뱉는 놈들인가?”

“그, 그래… 침 좀 뱉는 놈들이다. 너 어디 학교야. 자신 있으면 말해 봐, 이 새끼야.”

“…….”

동빈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활한 봉사 활동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양아치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겁먹었구나, 이 새끼. 그러면 그렇지…….”

스윽-.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 동빈은 조용히 모자를 벗었다. 그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명성고 김동빈이다. 이젠 됐냐?”

“……!”

양아치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조금 논다는 사람치고 어찌 동빈을 모를 수 있겠는가!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한다는 전설을 달고 다녔고 목격자도 상당수였다.

그 목격자 중 한 명이 바로 이 양아치였다.

“뭘 그리 놀라? 이제 침 좀 뱉는 친구들 이야기나 하시지?”

주춤주춤.

양아치는 어찌할 줄 모르는 반응을 보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행동에 가까웠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는데…….

“짜, 짭쌔들 뭐 하는 거야! 기, 김동빈이 설치고 다니잖아! 빨리 체포하지 않고 뭐 해!”

양아치가 급했다. 난리를 쳤던 경찰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물론 장 순경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뭘 체포해? 청소하는 사람을 모두 체포하라는 뜻이야?”

“…….”

양아치는 아무런 반박도 못 했다.

동빈은 자신이 뱉은 이물질을 청소하던 중이었다.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환경 미화원들은 모두 경찰서에 잡혀 와야 했다.

“양아치. 나 청소할 동안 조용히 앉아 있어.”

화다닥-.

동빈은 다시 청소를 시작했고 양아치는 구석진 의자에 앉았다.

“떠드는 건 상관없는데… 말하면서 침만 튀어 봐…….”

끄덕끄덕.

양아치는 입을 꽉 다물고는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난리를 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청소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동빈아, 이쪽으로 와서 앉아 봐라.”

“네!”

지구대가 평화를 찾자 장 순경이 동빈을 불렀다.

힘차게 대걸레질을 하던 동빈은 부리나케 장 순경 앞자리에 앉았다.

“저놈 조용히 시킨 건 좋은데 말이야,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동빈은 눈만 똥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칭찬도 아니고 꾸중도 아닌 어중간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양아치가 경찰을 안 무서워하고 주먹 좀 쓴다는 사람들을 더 겁내고 있으니…….”

“글쎄 말입니다. 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동빈을 잡고 신세 한탄을 하겠는가. 장 순경은 점점 권위를 잃어 가는 경찰들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혹시나 네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생각한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많은 비행 청소년들이 그런 안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든.”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 봉사 활동 나왔으면 좋은 것만 배워 가야지.”

장 순경은 길게 충고하지 않았다. 지구대 밖이 소란스럽다.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쿠웅.

“반항하지 말고 똑바로 못 걸어.”

“아… 진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래요.”

문이 열리면서 양아치 하나가 또 끌려왔다. 노랑머리에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보아 도망치다가 잡혀 온 모양이었다.

“한 순경, 수고했어. 저놈하고 공범이지?”

“그렇습니다. 잡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아 진짜! 난 죄 없으니까. 법대로 해. 법대로.”

찍찍.

조용히 앉아 있는 양아치의 친구가 분명했다.

확실히 침 좀 뱉는 놈이다. 지금도 연신 침을 뱉고 있었다.

“어디서 침 뱉고 그래?”

“내 맘이야, 내 맘. 억울하면 딱지 끊어.”

찍찍.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습성이다.

방금 잡혀 온 노랑머리 양아치는 사방으로 침을 난사했다.

뚜벅뚜벅.

조용히 앉아 있던 동빈이 일어났다. 그러고는 커다란 대걸레를 들고는 양아치에게 다가섰다.

“청소하러 왔냐? 조금 바쁠 거다.”

찍찍찍.

“…….”

사태 파악을 못한 노랑머리 양아치는 마냥 신이 났다. 동빈을 보자마자 더욱 힘차게 침을 뱉었다.

“빨리 닦아. 왜 이 정도는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나도 준비한 게 있지. 카아아악∼!”

노랑머리 양아치는 거북한 소리를 내며 뭔가를 모았다.

흡족한 양이 찼는지 힘차게 내뿜으려 했는데, 그때였다.

“배, 뱉지 마! 그놈이 김동빈이야!”

“……!”

친구의 간절한 외침에 노랑머리 양아치의 표정이 변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은 것이다.

꿀꺽.

양아치는 애써 모은 이물질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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