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2/224)

강북에 위치한 경찰서.

언제나 북적이던 생활 안전과가 웬일로 한가하다. 청소년 범죄를 담당하는 경찰도 이런 풍경에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조용했기에 쏟아지는 잠을 어찌할 줄 몰랐다.

“으∼ 갸갸갸.”

박 형사는 거하게 기지개를 펴고는 주위를 한번 살펴보았다.

“진짜 웬일이야?”

꿈이 아닌 건 확실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여전히 한가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이러한 평화로움을 오랫동안 느끼고 싶다는 뜻이었다.

“저기… 박 형사님?”

“누, 누구?”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박 형사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상관은 아니다. 그렇다고 반가운 사람도 아니라 문제였다.

“김동빈? 어쩐지 조용하다 했다. 오늘 또 무슨 사고 친 거야?”

박 형사와 동빈은 인연이 많았다. 공원에서의 사건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만나게 되었다. 미운 정이 들었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오늘은 사고를 친 게 아니라…….”

“사고 친 게 아니면 여기는 왜 왔어?”

“저기… 봉사 활동 좀 하려고요. 그동안 형사님을 많이 괴롭힌 것도 있고… 반성하는 마음에서…….”

“뭐라, 봉사 활동? 동빈이 네가?”

박 형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믿겠지만 동빈은 절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뭐든 시켜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미안한데… 일의 특성상 우린 봉사 활동 잘 안 받거든? 방학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몇 명은 받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곳은 다 찼다고… 구청도 가 보고 우체국도 가 봤습니다. 동사무소와 복지관까지 갔지만 똑같은 말만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인정을 해 주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제가 믿을 사람이라고는 박 형사님밖에 없습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아이구… 좋은 일 하겠다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박 형사는 난감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사고 쳐서 들어온 것보다는 백번 낫다.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특별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대부분 청소나 사무 정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시켜만 주시면 범인 체포나 조폭 소탕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동빈아, 그만 해라. 어떻게 학생에게 그런 일을 시키겠냐?”

“오죽하면 제가 이런 말까지 하겠습니까? 60시간 중 1시간도 못 채웠습니다. 봉사할 마음은 있는데 봉사할 곳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동빈은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박 형사가 뭔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안 되고… 강진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지구대로 가 봐. 내가 전화 넣어 줄게.”

“지구대라 하시면 예전 파출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지구수비대의 준말인지 알았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동빈은 연방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봉사 활동을 시켜만 준다면 지구수비대에 들어가 우주 괴물하고 싸울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절박했던 상황이 해결된 것이었다.

“말썽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

“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동빈은 서둘러 생활 안전과를 빠져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차! 저놈은 엄청 빠르지.”

박 형사는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관할 지구대로 연락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장 순경도 잘 지내지?”

저야 언제나 그렇죠 뭐. 근데 목소리가 수상하시네요?

통화는 빨리 이루어졌다. 박 형사는 상대방의 안부부터 챙기며 청탁할 분위기를 조성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원래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잖아.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아니, 어려운 건 아니고… 내가 학생 하나 보냈는데 봉사 활동 좀 시켜 줘.”

봉사 활동을요? 그 정도야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분명히 약속했다. 취소하기 없기다?”

그럼요. 봉사 활동 받는 게 뭐 대순가요?

“여기서 방금 떠났으니까 그쪽에 곧 도착할 거야. 잘 부탁해.

곧 도착하다니요? 오토바이라도 타고 오나요? 우리도 순찰차가 많아서 주차하기 곤란한데요?

“워낙 빠른 학생이라 금방 도착할 거야.”

뛰어서 오고 있다고요? 육상 선수라도 보내셨어요?

장 순경은 박 형사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똑같은 말장난으로 응수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목소리였다.

박 형사님… 그런데 여기 오는 학생 이름이 뭡니까?

“김…동빈.”

서, 설마… 명성고등학교 학생은 아니겠지요?

장 순경도 동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요주의 인물이라 모르면 더 이상했다.

“미안해. 내가 나중에 한잔 쏠께.”

뚜뚜뚜뚜.

박 형사는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강진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지구대.

“박 형사님! 박 형사님!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장 순경은 끊어진 전화에 대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물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제 풀에 지친 장 순경은 수화기를 세차게 내려놓았다.

쾅!

“우와! 내가 미친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원망에 사무친 절규부터 터져 나왔다. 이 지역 최대의 문제 학생을 받게 된 심정은 참담했다.

“경감님께 뭐라고 말씀드리지. 물… 어디 있어. 물!”

앞날이 캄캄했다. 심한 갈증을 느꼈는지 정신없이 주전자를 찾았는데…….

털컹!

“……!”

지구대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학생이 들어왔다. 장 순경의 눈이 똥그랗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박 형사님 추천받고 왔습니다. 명성고등학교 김동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

장 순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당장 돌려보내고 싶지만 박 형사와 약속을 했으니 문제였다.

한숨만 푹푹 쉬면서 생글생글 웃는 동빈을 바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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