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민 봉사
최악의 성적을 받은 동빈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려 몸부림쳤다. 반드시 음대에 들어가겠다는 열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동빈아, 제발 오늘은…….”
“걱정 마. 네 공부에 방해되진 않을 거야.”
동빈이 제일 먼저 택한 방법은 석진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당연히 석진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주철아, 동빈이 좀 어떻게 해봐라.”
“이놈은 나랑 안 논다고 했잖아. 그리고 석진이 너 말이야… 어떻게 동빈이 놈만 맛있는 거 사주냐?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람 차별하는 거냐? 엉?”
주철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과거의 상처만 들쑤시는 결과를 낳았다.
“삐, 삐쳤냐?”
“나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
삐친 거 맞다. 석진에게는 설상가상의 상황이었다.
동빈은 개념 없이 쫓아다니고 주철은 대책 없이 토라졌다. 석진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우선은 동빈의 마음부터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동빈아,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잖아. 난 집에서 조용히 해야 잘된단 말이야. 넌 피아노 학원 안 가?”
“학원은 잠시 접어 둬도 상관없어. 내 삶의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한 중대한 시점이야. 너와 함께 공부하면서 많은 걸 배울 거야.”
“난 지금 공부하러 가는 게 아니야. 다른 친구들과 봉사 활동 가기로 했거든?”
“봉사 활동! 역시 넌 내 우상이야. 공부 잘하지, 성격 좋지, 여자 친구도 있지. 엄청난 효자에다 이제는 봉사 활동까지!”
“어휴∼ 이걸 어쩌면 좋아…….”
석진은 고개까지 설레설레 저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석진아, 너 아직 봉사 활동 시간 못 채웠냐?”
잠시 삐쳤던 주철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봉사 활동 점수가 모자라기에 평상시에도 하냐는 뜻이었다.
“아니, 60시간은 훨씬 넘게 채웠지.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예전에 봉사 활동 나갔던 곳인데…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꾸준히 가고 있어.”
“짜식… 사회복지과라도 들어갈 거냐? 나처럼 대충대충 해도 대학 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잖아?”
“너, 너희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마… 성격 더러운 주철이 너까지… 보, 봉사 활동을 했어? 정말 별일이네…….”
동빈이 알고 있는 봉사 활동은 사전적 의미의 봉사 활동이 분명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들어가는 봉사 활동임을 짐작도 못 하는 눈치였다.
“석진아. 이놈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러게…….”
이제야 사태를 파악한 주철과 석진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동빈아, 우리가 말하는 봉사 활동은…….”
결국은 석진이가 총대를 멨다. 차분하게 고등학교 봉사 활동에 관하여 설명해 주었다.
“뭐라고? 대민 봉사가 점수에 들어간다고?”
대충 설명을 들은 동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석진도 마찬가지였다.
“너 공무원이냐? 그런 말을 사용하게?”
학생들에게는 대민 봉사라는 단어가 더 생소하게 들렸다. 그러나 어떤 의미인지는 통했기에 석진이 추가적인 설명을 했다.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동안 몇 시간이나 했는데?”
“전혀 없어.”
“뭐? 학교에서 주는 것만 해도 10시간은 되잖아? 여름방학 때 학교 나와서 청소한 거 합치고…….”
“그때마다 빠졌거든…….”
“그럼 빵점이야?”
끄덕끄덕.
동빈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빵점… 상당히 불량한 어감이었다.
“아무리 봉사 활동에 취미가 없어도 그렇지. 기본은 해야 할 것 아니야?”
“나도 사정이 있었지…….”
동빈이 완전한 민간인으로 거듭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이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많은 수업을 빠져야 했다. 진도에 가장 지장이 없는 시간을 선택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동빈아, 괜찮아. 이번 겨울 방학 때 채우면 되겠네. 수험생이 되면 진짜로 시간 없거든.”
“겨, 겨울방학… 그때도 난 시간이 없는데?”
“왜? 해외라도 나가는 거야?”
동빈은 일정한 기간 동안 특수 훈련을 받아야 했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 함부로 빠질 수 없었다.
“석진아, 호, 혹시… 예비군 훈련 같은 것도 봉사 활동 점수에 포함되냐?”
“너 미쳤니?”
당연한 소리다. 다른 사람이라면 진짜 욕부터 했을 것이다. 석진이기에 그나마 미쳤냐는 반응으로 끝날 수 있었다.
“석진아, 내가 대신 말하는 게 낫겠다.”
“그래야겠다. 나는 아직 동빈의 정신세계를 이해 못 하겠다.”
마침내 주철이 나섰다.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는 동빈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짧고 간단하게 매듭을 지으려는 표정이었다.
“동빈아, 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봉사 활동 안 해도 대학 가는 데는 별로 지장 없거든? 수능 때 몇 개만 더 맞으면 되는 거야? 내말 이해하겠냐?”
“무슨 소리! 교육부에서 정한 일이잖아. 난 반드시 60시간을 채우고 말 거다.”
주철의 충고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동빈의 반발심만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놈 또 시작이다. 넌 외국에서 전학 왔잖아? 60시간까지도 필요 없을 거야. 잘 알아보라고!”
“흥! 나는 너처럼 꼼수를 부리긴 싫거든?”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주철이 포기하자 동빈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주철이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현이었다.
“석진아, 우리 함께 봉사 활동 가자. 이제라도 알았으니 대민 봉사 열심히 해야지.”
“저기… 내가 가는 곳은 학교에서 인정 안 해 주는데… 나도 처음에는 황당했거든… 확인서는 다른 곳에서 받았어.”
“뭐야, 또 그런 것도 있었어?”
학교에서 봉사 활동을 인정해 주는 곳이 따로 있었다. 동빈은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나 석진을 따라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강했다.
“괜찮아. 학교에서 인정해 주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때? 봉사한다는 의미가 중요하지.”
“그게 아니라… 너랑 같이 가면 다른 애들이 거북해할까 봐.”
“내, 내가 어때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석진이 동빈을 거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미 동빈은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가 훨씬 더 강했다. 다른 학생들이 편안하게 봉사 활동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부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