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악-.
동빈의 파괴력은 미군의 상상을 초월했다.
동빈의 발차기를 맨손으로 막았던 프러쉬는 인상을 쓰면서 뒷걸음치기 급급했다.
현재는 이 대 일의 싸움. 거구의 험프리는 한발 물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비슷한 체격의 프러쉬가 형편없이 밀리는군.’
험프리는 동빈의 움직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공격과 방어 동작은 물론이고 동빈의 얼굴 표정까지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분명 낯이 익은 얼굴이야… 대체 어디서 봤을까?’
떠오르지 않는 기억 때문에 답답증이 났다.
어느 나라였을까? 어느 작전에서 봤을까? 확실한 것은 없었다. 실전 무예의 달인이었다는 어렴풋한 기억만이 존재했다.
퍼퍼퍼퍽-!
미군은 수적인 우세를 활용하지 못했다.
동빈의 손 기술 빠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양편에서 달려드는 상대를 동시에 상대한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패터슨, 함부로 끼어들지 마.”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니었으면 넌 벌써 쓰러졌어.”
흑인인 프러쉬는 짧은 곱슬머리에 동빈과 비슷한 체격이었다.
동빈에게 밀린 것을 괜히 동료에게 화풀이했다. 190이 넘는 키의 패터슨이 아니었다면 동빈의 주먹에 꼼짝없이 당할 위기였다.
“잠시 방심했을 뿐이야.”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방심할 상대가 따로 있지…….”
패터슨은 프러쉬의 궁한 변명을 믿지 않았다. 체격 좋은 동양인은 무술의 고수였다. 실력 차이로 밀린 것이 확실했다.
“내가 먼저 들어간다. 프러쉬, 너는 기회가 생기면 뛰어들어.”
“맘대로 해라.”
이번에는 패터슨이 동빈과 직접 겨루려 했다.
신장도 크고 유난히 팔다리가 긴 백인이었다. 복싱의 방어 자세를 취하며 동빈을 노려보았다.
까딱까딱.
동빈은 어서 오라며 손짓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 안 들어와? 기분이 상했나?”
어린것이 버릇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패터슨은 계속 노려만 볼 뿐이었다. 동빈이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분명했다.
마음씨 착한 동빈은 상대의 의견을 매우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화화확.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동빈.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며 패터슨의 얼굴을 노렸다. 빠른 주먹을 연이어 구사했지만 별로 소득은 없었다.
패터슨은 계속 뒷걸음치며 동빈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팟팟-!
후퇴하면서 뻗는 패터슨의 주먹이 날카롭다.
팔다리가 길면 어떤 종류의 무술도 잘 소화할 수 있었다. 견제하듯 끊어 치는 주먹은 웬만한 스트레이트보다 위력적이었다.
동빈은 전진을 멈추고 패터슨의 주먹을 피해야 했다.
팟팟팟-!
패터슨의 연타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동빈은 치고 들어가기 마땅치 않은지 가드를 내리고 주위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기회를 노려봤지만 패터슨의 방어는 완벽해 보였다.
스윽.
한 발만 조용히 뻗어도 전광석화 같은 잽이 쏟아졌다.
팟팟.
동빈은 주춤 물러서는 듯하다가 앞차기로 응수했다.
사람의 팔이 다리보다 길 수는 없다는 진리를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후앙.
“……!”
동빈의 발차기는 패터슨의 얼굴까지 곧장 치고 들어왔다.
놀란 패터슨이 허겁지겁 물러났으나 동빈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화화화확!
동빈의 현란한 발차기에 패터슨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발을 손처럼 자유롭게 쓰는 것은 둘째 치고, 불안정한 자세에서 나오는 파괴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빠각.
“크윽…….”
괜히 발차기를 손으로 막았다가 낭패를 본 패터슨. 자신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표정이다.
그의 격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저런 연속 동작이 가능하지!’
감탄사만 터트릴 때가 아니다. 동빈의 현란한 발차기를 막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막는단 말인가? 엄청난 중압감에 머리까지 멍해졌다.
불쌍한 패터슨… 그는 살극무가 시작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 살인 기술이었다.
사사삭-.
패터슨이 멈칫하자 동빈이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팔다리가 유난히 길면 접근전에 약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스륵.
“……!”
동빈은 몸을 최대한 붙이면서 측면으로 빠져 들었다.
패터슨의 뒤를 점령한 것이다. 그러고는 곧바로 관절꺾기로 돌입했다.
우득.
패터슨의 어깨는 힘없이 늘어졌다.
“크악!”
요란한 비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잔인한 만큼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이 살극무였다.
동빈은 패터슨의 탈골된 어깨를 잡고서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철퍼덕.
낙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패터슨의 충격은 대단했다. 탈골된 어깨부터 떨어졌기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패터슨!”
깜짝 놀란 프러쉬가 동료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동빈이 발을 치켜드는 장면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무방비 상태의 패터슨을 노리는 것이 분명했다. 저런 상태라면 동료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미친 새끼!”
후웅-.
프러쉬는 허공에 몸을 띄우며 주먹을 휘둘렀다.
공격을 성공시키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동빈을 패터슨에게 떼어 내려는 노림수였다.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지만 몸을 띄운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
빙그르.
동빈은 반원을 그리며 돌았다. 프러쉬의 주먹이 빗나가자 360도 돌려차기로 응수했다.
빠각.
동빈의 발등이 프러쉬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허공에 떠 있던 프러쉬의 상체는 앞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동빈은 끝까지 발차기를 이어 갔고, 프러쉬는 안면부터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철퍽!
프러쉬의 얼굴이 뭉개지면서 목이 꺾였다.
얼굴부터 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곡예를 하듯 활처럼 휘어졌던 프러쉬의 몸 또한 천천히 기울어졌다.
풀썩.
회색 시멘트 바닥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동료를 구하기도 전에 프러쉬가 먼저 쓰러지고 말았다.
휘익.
동빈의 시선은 다시 패터슨을 향했다.
방금 당한 프러쉬처럼 완전히 보내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웅.
동빈은 최대한 높이 떠올랐다.
허공에서 양 발목을 잡는 게 수상하다. 무릎 공격을 시도할 모양이었다.
“……!”
패터슨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체중까지 실린 무릎 공격에 정통으로 찍힌다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막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미, 미친새끼!”
터업!
살고 싶은 욕망이 기적을 만들어 냈다. 패터슨은 동빈의 무릎 공격을 양손으로 막아 냈다. 부러진 어깨는 완전히 작살나고 손가락이 몇 개 부러졌어도 만족한 표정이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백번 나았기 때문이다.
부들부들.
패터슨의 손이 심하게 후들거렸다. 동빈의 무릎에 눌려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동빈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막아 줘서 고마워.”
스윽.
동빈은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군인에게는 확실한 마무리를 하고 마는 동빈이었다.
퍼억.
패터슨의 눈이 툭 튀어나올 듯 커졌다.
동빈의 주먹이 명치를 강타한 것이다. 엄청난 충격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패터슨의 팔다리가 서서히 늘어지면서 고개가 힘없이 돌아갔다. 결국은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툭툭툭.
동빈은 바지에 묻은 먼지를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겼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 장면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서는 거구의 험프리를 노려보았다.
“빨리 끝내자.”
동빈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말이 통했는지 험프리가 육중한 몸을 끌고 다가왔다.
“괴물이군.”
“고마워. 그 단어는 알아듣겠어.”
괴물. 동빈과 싸웠던 놈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외국인의 기준으로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렇게 긴장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차착.
험프리가 먼저 공격 자세를 취했다.
힘만 믿고 설치는 놈은 아니다. 몸에 밴 자세로 보아 무술의 고수가 분명했다. 험프리가 바싹 긴장한 행동을 보이는 반면 동빈은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갈 뿐이었다.
상대를 의식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더욱 차가운 눈빛만이 유일한 변화였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187의 신장이 작게 보였다. 험프리의 사정권에 들어선 것이었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나도 껄끄럽지!”
후웅.
험프리는 통나무처럼 두꺼운 팔을 쭉 뻗었다. 동빈의 접근을 경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는데…….
터엉.
“……!”
동빈은 간단한 돌려차기로 험프리의 팔을 걷어 냈다. 그리고 펼쳐지는 연속 동작. 발차기한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몸을 완전히 한 바퀴 돌렸다.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 회전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수평으로 팔을 휘둘렀다.
빡.
동빈의 손등이 험프리의 팔목에 가로막혔다.
공격 실패? 살극무의 강인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촤라락.
각도를 무시하고 날아오는 발차기가 위협적이다.
험프리는 패터슨처럼 손으로 막아 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슬쩍 뒷걸음치면서 동빈의 발차기를 흘려보냈다.
‘기회다.’
험프리의 눈이 빛났다. 동빈의 공격이 실패한 순간을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방어를 풀고 주먹을 뻗으려고 자세를 바꿨는데…….
“……!”
어느새 동빈의 주먹이 바로 코앞까지 날아와 있었다. 반격이 문제가 아니다. 서둘러 안면부터 방어해야 했다.
퍼억.
충격이 엄청나다. 팔목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동빈의 체격에서는 나오기 힘든 파워였다.
다시 몇 걸음 물러서는 험프리. 그러나 동빈이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퍽퍽퍽.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동빈의 손 기술. 험프리는 웅크린 자세를 풀 수 없었다. 그의 오랜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방어를 푸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짜악!
휘청.
거구의 험프리가 비틀거렸다. 묵직한 동빈의 발차기가 험프리의 허벅지에 작렬한 것이다. 얼굴에 너무 치중하여 하체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였다.
‘이건 대체… 내가 인간하고 싸우고 있는 거야!’
동빈의 파상적인 공세에 험프리가 맥없이 밀리는 장면이 계속 반복되었다. 발차기에 이은 연타. 측면에서 날아오는 팔꿈치 공격…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다.
이제는 뒷걸음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상황이었다.
퉁.
“……!”
설상가상. 이젠 물러설 곳도 없었다. 험프리는 공사를 위해 설치해 놓은 방어벽에 부딪쳤다.
‘어, 언제 이렇게 밀린 거지?’
동빈의 뒤로 보이는 골목이 상당히 길어 보인다. 주변을 확인할 정도의 여유도 없었단 말인가?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
사사삭.
동빈의 빠른 몸놀림과 동시에 험프리의 호기심은 막을 내렸다.
이리저리 공격할 방향을 탐색하는 동빈 때문에 험프리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왼쪽인가? 아니면 오른쪽? 동빈의 사전 동작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촤락-.
‘젠장! 정면이잖아!’
대책이 없다. 웅크린 상태에서 무작정 앞으로 뛰어들었다. 동빈과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었다.
툭.
‘뭐, 뭐지?’
팔목으로 전해지는 충격이 의외로 적다.
좋은 현상이지만 괜히 불안하다. 정면에 있어야 할 동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후앙.
“……!”
파공음이 측면에서 들려왔다. 놀란 험프리는 서둘러 방향을 틀었다. 크게 몸을 비틀며 돌려차기를 시도하는 동빈을 볼 수 있었다. 동작이 큰 만큼 엄청난 위력이 느껴졌다.
푸악.
험프리는 간신히 막기는 막았다. 그런데 몸이 붕 뜨는 기분이다. 괜한 느낌만이 아니다. 다리가 허전하고 주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발차기의 힘에 밀려 육중한 험프리가 날아가는 것이다.
우당탕탕.
공사장의 방어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육중한 체구의 험프리는 벽면까지 부수며 튕겨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