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4/224)

끼이익 끼익-!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와 뿌연 흙먼지가 진동했다.

심하게 흔들리던 선도 차량이 갓길을 벗어나서 멈춰 선 것이다. 뒤따르던 차량들은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촤르르.

운이 좋았다. 세 대의 지프는 가까스로 충돌을 면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다.

“무슨 일이야!”

두 번째 차에 타고 있던 헌병대 장교가 급하게 내렸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씩씩거리며 문제를 일으킨 선도 차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네 미쳤나!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건가!”

헌병대 장교는 고함부터 퍼부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질책이었지만 선도 차 운전자는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그랬다는 건가!”

딸깍.

헌병 장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도 차 뒷문이 열렸다.

프러쉬와 험프리는 가볍게 몸을 풀면서 차량에서 빠져나왔다.

“운전자는 죄 없어. 내가 세우라고 시켰거든.”

“……!”

험프리의 차가운 목소리에 헌병대 장교는 흠칫했다. 기세 좋게 헌병을 다그쳤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우린 헌병대 차 타고 복귀하기 싫다. 나중에 우리 발로 찾아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지?”

“…….”

헌병대 장교는 말이 없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요구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황당한 표정보다는 곤란한 상황에 적합한 얼굴이었다.

험프리를 제재할 권한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뭐 해? 데이비드와 패터슨, 너희들은 타고 갈 차나 수배해.”

“오케이. 우리도 그냥 복귀하긴 싫었거든.”

행패를 부린 나머지 2명도 다른 차량에서 내렸다.

완전히 안하무인이다.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 별짓을 다 했지만 헌병들은 제지하지 못했다. 상관인 헌병 장교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보다 못한 통역 장교가 나섰다. 격양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지만 역시 부질없는 짓이다.

“우린 저들을 구속할 권한이 없다. 신병만 인도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헌병이 구속할 권한이 없으면? 그럼 누구에게 권한이 있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헌병대 장교는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했다.

무슨 의미인지 대충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통역 장교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건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상부에 보고를 하겠습니다.”

딸깍.

지체 없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통화를 시도했다.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누가 마음대로 전화하라고 했나?”

“……!”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거구의 험프리가 통역 장교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국 놈들은 왜 이리 말이 안 통해.”

우지끈!

험프리는 통역 장교의 핸드폰을 빼앗아 꺾어 버렸다.

두 동강 낸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발로 짓밟으며 계속 투덜거렸다.

빠직빠직.

“이봐, 우린 죄를 짓고 끌려가는 게 아니야. 약간의 말썽이 생긴 것뿐이야. 조금 즐기다 들어가도 아무 문제 없다고. 안 그래?”

“말이 심하군. 약간의 말썽이라니? 10명의 한국 대학생들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단 말이다.”

통역 장교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험프리의 부리부리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박했다.

“우리 미군이 한국을 지켜 주고 있잖아.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 북한에 있는 공산당이 무섭지도 않아?”

“한미 관계의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이다. 네놈의 돌발적인 행동은 미군에게도 전혀 이득이 될 것 없어.”

“나는 남의 눈치나 보는 성격이 아니야.”

“더러운 성격이군.”

“그래 아주 더럽지. 내가 성격 좋았으면 한국이란 나라에 오지도 않았어. 본국에 남거나 일본으로 보내졌겠지.”

빠직.

통역 장교의 눈이 찌푸려졌다.

확실히 성격 더러운 놈이다. 이런 놈이 한국을 지키러 왔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었다.

“미군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야. 엄청난 사고를 쳐도 문제될 것이 없거든. 난 SOFA가 정말 마음에 들어… 내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 미군이 결정한다. 그러니까 한국 놈들은 빠져.”

“…….”

잠시 말없이 노려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주먹다짐이라도 벌어질 분위기였는데…….

“험프리. 차 잡았다. 빨리 뛰어와.”

“알았어. 지금 간다.”

팽팽한 긴장감이 깨졌다. 험프리는 묘한 웃음을 남기고 동료들을 향해 뛰어갔다.

“데이비스, 뭔 차를 이렇게 늦게 잡았어?”

험프리는 사륜 차량에 오르며 불만을 터트렸다. 통역 장교와 말다툼을 벌인 여파가 남은 모양이었다.

“한국 놈들이 운전하는 차만 걸리잖아. 우리 중에 한국말 할 줄 아는 놈이 있냐?”

“됐으니까 어서 출발해. 기분도 그런데 화끈하게 놀자.”

“좋지!”

미군이 탄 차량은 다시 시내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는 장면을 바라보는 통역 장교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에이 시팔! 진짜 못 해 먹겠네!”

통역 장교는 모자까지 집어 던졌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을 했는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거북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승용차가 급정거했다.

검은색 스키드 마크가 길게 이어질 정도로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야, 미쳤어! 이 차 고장 나면 나도 끝장이야!”

광수는 자나 깨나 차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급정거를 한 충격으로 대시보드에 머리를 부딪친 아픔조차 잊었다.

“광수야, 봤냐?”

“보긴 뭘 봐, 임마! 귀신이라도 본 거야!”

“방금 지나간 사륜 차량 말이야. 미군 놈들이 타고 있었거든.”

“미군? 나는 잘 못 봤는데… 어라! 저기 봐라. 군바리 차들이 서 있다. 사고라도 났나?”

길길이 날뛰던 광수는 전방의 상황을 주시했다. 주차된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맞아. 분명히 봤어. 내 눈은 틀림없거든.”

끼기기긱-.

주철은 사정없이 핸들을 돌렸다.

유턴을 하기에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울퉁불퉁한 갓길까지 충분히 활용해야 했다.

덜컹덜컹.

“이야! 제발 살살 좀 몰아!”

역시 거품을 무는 광수. 차가 긁히는 소리에 완전히 사색이 되었다. 물론 운전을 하는 주철은 미군을 따라잡으려 혈안이 되었다.

“됐어. 다시 쫓아간다.”

부르릉.

유턴을 끝낸 주철은 다시 속력을 높였다.

지나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머지않아 꼬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주철아.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 이 길은 샛길이 없다고.”

“집중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

주철은 이를 악물고 운전했다. 자동차 경주를 했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빠른 속력이지만 꽤나 안정적으로 차를 몰았다.

완만한 경사면을 다 오르자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야, 저기 보인다. 저 차 맞지?”

“오케바리!”

심각했던 주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방금 지나쳤던 차량이 틀림없었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제 속도 좀 줄여. 불안해 죽겠다.”

“알았어. 조금만 더 거리를 좁히고…….”

“야, 앞에 택시 온다. 조심해라.”

“걱정도 팔자다. 저렇게 천천히 달려오는데 뭐가 문제야.”

후웅.

주철이 탄 승용차와 낡은 택시가 스치듯 교차했다.

주철의 차량은 가속도를 높이며 사라졌고 낡은 택시는 천천히 멈춰 섰다.

털털털털.

“아저씨! 저, 저 차예요. 유턴! 유턴하세요!”

동빈은 주철이 운전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서둘러 쫓아가자고 부탁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털털털털- 털털털털-.

“아저씨. 빠, 빨리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운전자 탓이 아니다. 전진과 후진을 몇 번이나 거듭한 택시는 간신히 유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저 차만 계속 쫓아가면 됩니다.”

“에휴… 언제 또 쫓아가나…….”

택시 기사의 한숨 소리가 유난히 처량하게 느껴졌다. 차량의 형편상 쉽게 따라붙기는 힘들다는 푸념이었다.

털털털털.

동빈이 탄 택시는 요란한 배기음을 내며 출발했다.

주철의 차량을 잡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이는 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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