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이를 찾아서
동빈의 마음은 다급했다.
당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는지 한 발자국 내밀기도 힘들었다.
‘주철이 이노무 새끼… 잡히기만 해 봐라.’
오기와 끈기로 간신히 계단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홀과 이어지는 통로는 더욱 분주했다. 싸움이 났으니 구경꾼들이 몰려든 것은 당연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꽉 막힌 인파의 물결을 보자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조, 조금만 지나가겠습니다.”
“밀지 말아요. 우리도 못 움직여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글거리는 사람들을 헤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동빈은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힘겨운 걸음을 해야 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걱정스러운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저러다 학생 잡겠네…….”
“미군 놈들은 뭘 먹고 저리도 덩치가 좋아?”
‘돌아가신다! 무릎을 다쳤다는 놈이 뭘 믿고 덤빈 거야?’
동빈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캠프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병원부터 가야 할 처지였다. 과격하게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지만 불안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큰일이네… 미군 놈들을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괜히 말렸다가 저런 신세 될 거 아니야.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잖아.”
동빈은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와 점점 가까워졌다. 패싸움으로 번진 것이 분명했다. 요란한 고함과 함께 각종 욕설이 난무했다.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였지만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됐다. 거의 다 왔는데…….’
전방의 상황을 파악할 정도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몰려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시야를 확보할 수는 없었다. 덩치가 큰 미군들의 얼굴 정도만이, 구경꾼들의 머리 사이로 가끔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정의의 기사라도 그렇지! 상대를 봐 가며 덤벼야 하는 것 아니야!’
동빈의 전문 분야가 바로 군대였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특수부대 요원들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미군의 모습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직감이 있었다. 보통 군인이 아니라는 불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끄악! 도, 도와주세요!”
다급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큰 사고가 터진 것이 분명했다. 동빈은 구경꾼들을 힘으로 밀치며 나갔다.
“……!”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여대생이 왜 비명을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피떡이 된 남자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그녀는 반쯤 쓰러진 남자를 자신의 몸으로 보호하려 했다. 가녀린 여인이 막아서도 미군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저 미친 새끼……!”
동빈의 눈은 발차기를 하는 백인 병사에게 집중되었다. 크게 몸을 비트는 것이 수상하다. 체중을 실어 내려찍기를 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무방비 상태에서 전투화로 내려찍으면…….”
전투화 굽은 살인 무기에 가까웠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도 함부로 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단련된 팔목으로 막아도 뼈가 부러지기 십상이었다.
후앙!
“……!”
백인 병사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자세를 잡자마자 곧장 내려찍기를 시도했다. 매우 위급한 상황. 그러나 동빈의 머릿속이 빠르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젠장! 너무 위험하잖아!”
파파팟.
동빈은 난장판으로 변한 홀로 뛰어들었다. 주철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멀쩡한 사람을 병신 만들 수 없었다. 이젠 동빈이 정의의 기사로 돌변하고 말았다.
클럽이 몰려 있는 번화가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밤이 깊을수록 화려한 네온 불빛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러나 번화가와 이어진 골목은 행인들의 발길이 뜸했다. 호프집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돌아가시겠네… 이 동네는 왜 문을 연 약국이 없는 거야?”
누군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클럽 안에 있어야 할 주철이었다. 친구인 광수는 빼곡하게 주차된 차량 사이를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 약국 찾는 놈이 이상하지.”
“사람들이 낮에만 아프냐? 밤에는 아프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고!”
주철은 약을 구하기 위해서 한참을 헤맨 모양이었다. 꿍얼거리는 모습이 꽤나 오래갔다.
“그래도 내 덕에 파스라도 구한지 알아. 치사하게 이 시간에 불러서 파스까지 뺏어 가냐?”
“광수 너는 얼굴에나 신경 써라. 넌 파스가 필요 없었잖아?”
약국을 찾지 못한 주철은 광수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가 쓰려고 산 파스를 강탈한 것이 분명했다.
“근데, 파스는 왜 필요하냐? 너는 싸우지도 않았잖아.”
“내가 쓸 게 아니다. 동빈이 놈 주려고…….”
“김동빈? 그놈도 이런 거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완전 괴물이잖아? 강철로 만들어진 몸이 분명해.”
광수는 동빈을 괴물이나 인조인간으로 취급했다. 싸우는 장면을 직접 보았기에 더욱 확신하는 눈치였다.
“헛소리 그만 해라.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오늘은 너무 많이 싸웠어. 피아노를 치는 놈이니 손목에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지. 그런데… 대체 이놈 어디로 간 거야?”
두리번두리번.
편의점에 도착한 주철은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속 장소는 확실한데 사람이 없다. 클럽 앞에 있는 편의점은 이곳밖에 없었다.
“주철아, 혹시 너 찾으러 간 게 아닐까? 약국 찾느라 한참이나 돌아다녔다며?”
“그런가? 뭐 할 수 없지…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낫겠다.”
풀썩.
주철은 파라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엇갈렸다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괜히 찾으러 나섰다가 또다시 엇갈릴 수도 있었다.
“주철아, 저기 좀 봐라. 웬 사람들이 저리 모였냐?”
“글쎄…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겼나?”
광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클럽 입구를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슬쩍 살펴본 주절도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얼마 전에 나온 클럽이 아니던가? 아무리 인기가 좋은 클럽이라도 저리 붐빌 수는 없었다.
“싸움 난 것 같은데? 우리 같이 가 볼까?”
“이제 싸움이라면 지겹다.”
광수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계속 바라봤지만 주철은 조용히 외면했다. 싸움 구경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는 반응이었다.
“주철아, 아무래도 큰 싸움인 거 같다. 경찰차까지 출동했어.”
“제발 신경 끄라니까.”
에에엥!
“비켜 주세요. 비켜 주세요. 차량 지나갑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경찰차가 등장했다. 빼곡히 몰려 있는 구경꾼 사이를 지나자 클럽 입구에 차를 세웠다.
“주철아, 미안하다. 내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올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광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경찰차가 출동하자 구경꾼들이 더욱 많이 몰려드는 상황이었다.
“동빈이 놈은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물론 주철은 끝까지 자리를 고수했다. 싸움 구경보다 친구를 기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