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8/224)

클럽에서 생긴 일

조직 폭력배와 연계한다는 경기 연합이 깨졌다. 그것도 단 한 명에게 박살 난 것이다.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경기 연합의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광수야, 상처는 괜찮냐?”

“저놈들보다야 괜찮겠지…….”

경기 연합의 아지트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광경을 보니 확실히 광수의 상태가 나은 편이었다.

“광수야, 빨리 돈 좀 꿔줘라. 간만에 몸 좀 풀어야겠다.”

“야, 어디를 가려고! 캠프로 돌아가야지.”

동빈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캠프로 돌아가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시간이 좀 남잖아. 나이트 가서 머리 좀 식히고 들어가자.”

“머리를 식히러… 나, 나이트에 간다고……?”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르지. 광수야, 이쪽에 물 좋은 곳이 어디냐?”

주철의 결심은 확고했다. 반드시 나이트에 가서 몸을 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쪽은 없는데, 쪼금 나가야 있어. 미군 부대 근처에 괜찮은 클럽들이 많거든.”

“미군 부대… 이젠 군대 소리만 들어도 신물이 나는데…….”

“왜? 안 갈 거야?”

“아니다. 할 수 없지, 뭐. 빨리 그쪽으로 안내해라.”

주철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군대 근처도 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이트의 유혹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클럽을 들어가기 전.

동빈과 주철은 옷부터 바꿔야 했다. 주철은 군복 자체를 싫어했고 동빈은 피가 묻어서 어쩔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곳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학생들은 뭐를 입어도 어울리네?”

20대 후반의 여점원은 칭찬하기 바빴다. 옷을 팔 목적도 있지만 과장된 발언은 아니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은 동빈과 주철의 모습은 상당히 말끔해 보였다.

“광수야, 계산해라. 돈은 집에 도착하는 대로 부쳐줄게.”

“알았다.”

광수는 지체 없이 계산을 했다. 주철의 집이 부자였기에 돈 떼먹힐 걱정은 없었다.

“어디가 괜찮은 클럽이냐?”

“글쎄, 이쪽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저기야.”

옷가게를 나온 주철은 마땅한 클럽을 물색했다. 이곳은 나이트보다 클럽 개념이 발달했기에 결정한 일이었다. 단순히 춤추고 노는 목적이라면 나이트보다는 클럽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군.”

“물론이지. 홍대에 있는 클럽 못지않아.”

“그래! 나는 동빈이하고 놀다 갈 테니, 광수 너는 먼저 들어가라.”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야! 그 얼굴로 어디를 들어가려고?”

얼굴이 못생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경기 연합에게 얻어터진 광수의 얼굴은 정상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클럽에 들어갈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다.

“치사하게…….”

“치사해도 할 수 없거든. 난 간다. 나중에 서울 한번 올라와라.”

주철은 성큼성큼 유흥가를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몸을 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워 보일 수가 없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반복되는 일렉트로닉한 음악.

클럽 내부는 춤의 열기에 빠져 들었다. 미군 부대 근처라 그런지 외국인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주철과 동빈이 들어선 클럽은 꽤나 규모가 있는 곳이었다. 1층은 커다란 홀이었고 2층엔 앉아서 쉴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있었다. 춤에 관심이 없는 동빈은 2층에서 남들이 춤추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신났다, 신났어…….”

주철은 쉬지 않고 춤을 추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2층에는 올라올 생각이 없는지 1층에서만 놀았다. 가끔 힘이 부치면 춤을 추다 잠시 멈추는 것이 전부였다.

“저러면 정말 스트레스가 풀리나?”

머리를 식히러 왔다는 주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당히 과도한 운동량이었다. PT보다 격한 동작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 열심히 놀아라. 나는 음료수나……!”

동빈의 표정이 변했다. 어떤 여자가 주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장면을 보았다. 처음 보는 여자는 아니었다. 그녀도 뭔가 이상한 눈치를 챘는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동빈과 시선이 마주치자 서둘러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우와! 땀 좀 뺐더니 살 것 같다. 물 좀 없냐?”

어느새 주철이 2층으로 올라와 있었다. 잠시 동빈이 한눈을 파는 사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온몸이 다 젖을 정도로 춤을 췄으니 갈증이 나는 건 당연했다.

“야, 물 없냐고! 목말라 죽겠다.”

“주철아, 물보다 말이야, 아까부터 널 유심히 쳐다보는 여자가 있는데?”

“날 쳐다보는 여자가 어디 한둘이냐?”

주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클럽이나 나이트에 가면 항상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란 뜻이었다. 여유작작한 웃음으로 자신감을 보였는데…….

“그게 말이야, 아까 공원에서 봤던 여자 같은데?”

“……!”

주철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반가운 표정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질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말해봐. 네가 아는 여자 맞지?”

“나는 말이다. 저 여자보다 네 질문이 더 지겹거든!”

주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양손으로 테이블을 잡고 일어서는데, 귀찮아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야, 어디 가?”

“아무래도 담판을 지어야겠다.”

주철은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목표를 발견했는지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주철이가 관심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여자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건가? 선아처럼……!”

동빈은 부르르 몸까지 떨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스토커를 직접 겪었기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뭐야, 저놈… 아무리 그래도 여자를 울리다니?”

주철은 동빈과 달랐다. 여자가 눈물이 찔끔 나도록 야단을 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자가 눈물을 보인다고 약해지지 않았다. 잔소리의 강도를 더욱 높여서 몰아붙였다. 그러고는 대차게 그녀를 외면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잔뜩 열을 받았는지 숨까지 씩씩거릴 정도였다.

“저년은 어째 말귀를 못 알아들어. 열 받게시리… 야, 물 없어!”

아까부터 물은 없었다. 주철의 답답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는 왜 울려?”

“내가 울렸냐? 지가 혼자 우는 거지?”

동빈의 심정은 복잡했다. 여자가 불쌍하기도 했고 주철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이 어떤 사이였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 같은데? 어떻게 아는 애냐?”

“나도 몰라. 구해줘서 고맙다고 헛소리 찍찍 하잖아.”

“뭐? 니가 구해줘?”

동빈의 반문은 당연했다. 주철은 뭐든 말로 해결하지 않는가? 말싸움에서 지는 것을 구해줬다는 뜻이냐는 표정이었다.

“나도 한때는 정의의 기사처럼 행동한 적이 있었거든. 위기에 처한 사람을 많이 구해줬지.”

“물론 여자한테만?”

“당연하지.”

주철의 대답은 너무나 확실했다. 그게 뭐 잘못됐냐는 당당함까지 느껴졌다.

“저 여자한테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마라. 고마워서 그러는 거 아니냐.”

“고마우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왜 따라다니는 건데?”

“나한테 물으면 답이 나올 것 같으냐?”

“…….”

여자문제를 동빈에게 묻다니… 주철이 실수한 게 분명했다. 괜히 무안해진 주철은 잠시 아무 말도 못 했다.

“에이, 분위기 살려야겠다. 동빈아, 춤추러 나가자.”

“춤… 시, 싫어… 어려워 보이는데…….”

동빈은 주철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춤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르쳐줄게. 너 정도 운동 신경이면 금방 배워.”

“싫다니까. 춤을 추느니 차라리 PT를 하겠다.”

“PT보다 춤이 백번 낫거든! 빨리 나와.”

“진짜 싫어!”

주철은 억지로 동빈을 끌고 나가려 했다. 대부분은 못 이기는 척 나가야 하건만 동빈의 반항은 매우 심했다. 그러나 주철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동빈을 홀까지 끌고 나가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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