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6/224)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경기 연합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그동안 패싸움을 많이 했는지 꽤나 익숙하게 행동했다. 각목까지 챙겨 든 놈도 여럿 있었고, 독기 서린 눈초리로 동빈을 노려보는 놈들도 꽤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 상태가 계속되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경기 연합은 함부로 덤비지 못했다. 동빈 또한 먼저 움직이지 않고 놈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놈들 완전히 조폭 수준이네?”

팽팽한 긴장감은 주철이 깼다. 동빈이 쉽게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경기 연합의 단결된 모습은 진짜 조직 폭력배를 연상케 했다. 주철이 도발을 걸어도 발끈하는 놈은 없었다. 리더의 명령을 기다리며 차분히 자리를 고수했다.

“요즘은 학교 폭력도 많이 발전했지. 조직 폭력배와 연계한다고 하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네?”

주철은 혼자서 떠드는 꼴이었다. 경기 연합과 동빈은 치열한 눈싸움을 벌일 뿐이었다.

“어이, 칼자국! 네가 경기 연합의 리더냐? 생긴 것도 꼭 조폭처럼 생겼네? 등에 용 문신이라도 새겼냐?”

주철은 경기 연합을 자극하려 안달했다. 무작위적인 도발이 통하지 않자 리더로 보이는 놈을 공략한 것이다. 다른 놈들과 거리를 두고 있어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살벌한 외모 또한 리더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현준아, 저 나불대는 새끼부터 뭉개버릴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김동빈부터 잡는다.”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놈이 리더가 확실한 모양이다. 조용한 말 한마디로 발끈하는 동료들을 단숨에 진정시켰다. 그러나 주철은 여기서 포기할 인물이 아니었다.

“칼자국의 카리스마가 엄청나구만. 말 한마디에 다른 놈들은 완전히 깨갱이네. 하긴, 조폭들하고 어울리니 학생들이 우습게 보이겠지. 룸싸롱 몇 번 가고 여자 좀 따먹었다고 꼭 어른이 된 것 같지? 똘마니들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눈에 뵈는 게 없겠지.”

주철은 더욱 자극적인 말로 현준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정도면 욱해서 덤벼들어야 하건만 현준의 반응은 남달랐다.

“현준아, 저래도 놔둘 거야?”

“신경 쓰지 말랬지. 우리의 목표는 김동빈이다.”

동료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동빈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동빈만을 잡겠다는 의지였다.

“진짜 재미없는 놈이네.”

상대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주철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세상이 다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모두 준비해!”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현준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매우 작은 목소리. 그러나 경기 연합의 반응은 대단했다. 각자의 무기를 고쳐 쥐고는 뛰어들 채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공격 명령뿐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경기 연합의 얼굴은 바싹 굳은 상태였는데…….

“쳐!”

“우와와와.”

“와아-!”

현준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경기 연합은 함성까지 지르며 떼거리로 덤벼들었다. 진짜 조직 폭력처럼 험악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퍼억.

동빈은 먼저 달려오는 놈부터 차근차근 요리했다. 몸을 띄우며 정면에서 뛰어들던 놈에게 발차기를 시도했다. 상대를 쓰러트리는 의도가 아니라 날려 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발차기를 맞은 놈은 붕 뜬 상태로 밀려났고 뒤따라오던 놈들과 뒤엉켜 넘어졌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동빈은 파상적인 공격을 펼쳤다.

퍼벅.

“크악.”

두 번째로 덤비는 상대는 안면 공격으로 먼저 제압했다. 놈이 얼굴을 부여잡고 주저앉자 오른발 무릎 공격으로 마무리했다.

푸욱.

강력한 무릎 공격.

놈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고, 뒤따라오던 놈들과 뒤엉켜 쓰러졌다.

동빈의 공격은 대단했지만 놈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후웅후웅.

동빈이 상체를 뒤로 젖히자 두꺼운 각목이 지나갔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각목 공격은 연거푸 쏟아졌다. 동빈이 조금만 늦게 반응했다면 위험했을 타이밍이었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동작이었다.

“뭐 하는 거야. 뛰어들어!”

놈들은 물러서지 않고 동빈을 몰아붙였다. 공원에서 싸웠던 양아치들하고는 차원이 틀렸다. 동빈의 무력에 겁먹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빠각.

뒤에서 뛰어드는 놈은 뒤돌려차기로 제압했다. 중심을 잡기도 전에 놈들이 몰려왔다. 빠른 발차기로 상대를 무너트리고 거리를 벌렸다. 치고 빠지는 작전. 그러나 놈들의 쪽수가 많아서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와락.

무작정 덮치는 놈들이 많았다. 몸을 날려서 동빈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의도만 좋았다. 이러한 공격에 당할 동빈이 아니었다.

빠각.

“크악… 졸라 아프다.”

바로 지척까지 뛰어든 놈은 뒤통수를 날려 쓰러트렸다. 그러나 양 측면을 동시에 막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자, 잡았다.”

“씨발! 나도 잡았어!”

동빈의 몸이 휘청거렸다.

양쪽에서 붙잡혔으니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물귀신처럼 붙들고 늘어지는 놈들부터 처리해야 했다.

퍽퍽.

동빈은 뒤로 물러서면서 팔꿈치 공격을 시도했다. 정확히 목을 가격하자 놈들은 눈이 뒤집히면서 쓰려졌다.

그러나 엄청난 머릿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한 놈을 쓰러뜨리면 다음 다른 놈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쳐서 떼어내면 또 달려들고… 동빈의 주위는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는 경기 연합으로 넘쳐났다.

“자, 잡았다. 시팔!”

“이번에는 놓지 마! 꼭 잡고 있어!

“뭐 해! 각목으로 까버려!”

구석으로 밀린 것이 실수였다. 몰려있는 놈들이 워낙 많기에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동빈이 주춤하자 다른 놈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각목 공격까지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팔, 나 때리지 마!

“넌 거기 왜 있는 거야! 고개 숙여!”

퍽퍽퍽퍽.

난장판이 벌어졌다. 동빈을 잡으려 경기 연합의 경쟁이 심해졌다. 불난 곳에서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 아우성치는 모습이었다. 경기 연합에 포위된 동빈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요란한 각목 소리와 비명만 울릴 뿐이었다.

“확실히 잡은 건가?”

현준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작은 모양이었다. 그 이상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저 정도면 끝난 거 아닌가?”

“글쎄… 워낙 유명한 놈이라…….”

현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시장통처럼 북적이는 곳만 지그시 응시했다.

각목이 쏟아지는 소리와 고함은 여전했다.

“현준아, 어차피 쪽수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어떤 놈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래… 애초부터 황당한 싸움이었지.”

현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조폭들의 세계에도 이러한 경우는 없었다.

오십 대 일.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어이, 칼자국. 함부로 방심하면 안 되지.”

“저놈 또 설친다.”

주철의 목소리에 리더를 보조했던 놈이 발끈했다.

상황이 바뀌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준의 반응도 달라졌다.

“양주철,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침착한 목소리로 주철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동빈을 제압했다고 생각하니 여유가 생긴 모양이었다.

“어이쿠, 감사해라. 이제야 관심을 가져주시네?”

“대책 없이 큰소리만 치는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을 믿고 그렇게 설치는 것이지?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인가?”

“병신… 당연히 동빈이를 믿고 개기고 있지.”

“김동빈? 벌써 끝난 게임이라는 생각하지 않나?”

현준은 동빈이 포위된 장소를 쳐다보았다. 아직은 변화가 없다. 이대로 싸움이 끝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본 주철의 해석은 달랐다.

“멍청한 새끼. 쪽수로 판가름 날 싸움이면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나도 한때는 10명 단위로 싸웠던 놈이거든. 서울 연합을 박살 낼 때는 몇 명이랑 붙었는지 기억도 없다.”

“서울 연합!”

현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주철을 바라보는 눈빛까지 따라 변했다. 뭔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반응이었다.

“칼자국, 네가 어떻게 경기 연합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신통치 않았을 거야. 내가 전혀 모르겠거든. 아니, 네놈이 날 모르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인가?”

“후후후, 뜻밖이네? 서울 연합을 박살 낸 그 미친놈이 바로 너였어? 완전히 미쳐서 병신됐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말이야.”

“소문은 믿을 게 못 돼. 아니, 한 가지 경우만 빼고… 동빈이에 대한 소문은 조금 축소된 경향이 있지. 지금부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동빈이 놈이 화가 난 거 같거든.”

“……!”

현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북적거리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인가?

속은 게 분명하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짜식 놀라기는… 겁먹었구나?”

“양주철… 이젠 주둥이만 살아남았구나.”

현준의 입가에 작은 경련이 일었다.

속마음을 들킨 것이다. 동빈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무릎이 좋지 않아서 말이야. 나는 입으로 싸우고 동빈이 저놈은 몸으로 싸우지. 조심해. 동빈이가 화난 것 같거든.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진짜야.”

“끄아악!”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렸다.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

현준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몇 겹이나 포위한 진영이 흐트러졌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우두득.

“크악! 내 어깨…….”

아직은 동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기괴한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쯧쯧쯧… 내가 뭐랬어? 조심하라고 했잖아. 동빈이가 화났으니 어떻게 하냐? 너희들 이제 죽∼었다.”

우두득.

“끄악! 내 팔목… 시, 씨발… 팔목이 안 움직여…….”

주철의 예언은 현실로 나타났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자 동빈의 공격은 잔인해졌다. 괜히 조직 폭력배를 흉내 냈던 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퍼억!

우르르.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포위망이 완전히 무너졌다.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놈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강한 발차기에 맞았는지 뒤에 있던 놈들까지 와르르 쓰러졌다.

“후우… 후우…….”

무너진 포위망 사이로 동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꽤나 진땀을 뺐는지 숨이 거칠어졌다. 그러나 지쳐서 헐떡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리듬을 타면서 숨을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괴물 같은 새끼… 경기 연합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한 놈이 각목을 들고 달려들었다.

동빈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갔다.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 상대와의 거리를 좁힌 것이다.

터업.

동빈은 각목을 쥔 놈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놈이 놀랄 사이도 없이 그대로 손목을 꺾어버렸다.

우둑.

“크악! 내, 내, 내 손이…….”

거북한 소리와 함께 놈은 완전히 자지러졌다. 이상하게 휜 손목을 보며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나 동빈의 응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저앉은 놈의 안면을 돌려차기로 강타했다.

퍼억.

진한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뭔가 하얀 것도 튀어 나갔다. 처참하게 찢어진 입술 사이가 허전해 보였다. 앞니가 뭉텅이로 빠진 것이다.

“동빈아! 바로 그거거든! 이런 놈들은 인정사정없이 박살 내 버려. 일진이니 뭐니 하는 거 사실은 별거 아니야. 여자 따먹으러 가입한 놈들이 수두룩하지. 여자들하고 놀려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 폭력을 쓰는 경우가 허다해.”

주철은 경기 연합이 맞아야 하는 이유를 열거했고 동빈은 몸으로 뛰었다.

놀라서 주춤거리는 경기 연합을 철저하게 괴멸시켰다.

퍽.

작은 충격음.

그러나 맞은 놈의 충격은 대단했다. 급소를 가격당한 경기 연합 멤버는 거품을 물고 주저앉았다.

또 다른 놈이 뛰어들자 목을 잡아챘다. 그러나 목을 쥔 놈을 처리할 시간도 없이, 다른 놈이 또 뛰어들었다.

빠각.

동빈은 급한 일부터 하나하나 처리했다. 뒤에서 달려드는 놈을 뒤돌려차기로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목을 잡고 있던 놈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커억!”

목이 돌아간 놈은 천천히 눈이 뒤집히면서 기절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급소를 맞아 거품만 무는 놈이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지만 용서는 없었다.

푸억.

철퍼덕.

동빈은 돌려차기로 뒤통수를 강타했다.

놈은 눈이 반쯤 튀어나온 상태에서 땅바닥에 엎어졌다.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지만 집념 하나는 대단했다. 끝가지 급소를 가린 상태에서 정신을 잃었다.

“이놈들이 제대로 임자 만났군. 이놈들은 남을 괴롭히고 다니는 게 문제야. 강함은 곧 폭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빠진 놈들이라고. 폭력에 길들어 있어서 좋은 말도 먹히지 않아. 이놈들의 방식대로 폭력으로 철저히 밟아버려야지.”

“이 새끼! 내가 죽여버린다!”

동빈은 쉴 틈이 없었다. 막바지에 들어도 경기 연합의 반항은 계속 이어졌다.

악을 쓰며 달려오는 놈은 방어가 부실해 보였다. 동빈은 몇 번 도움닫기 하면서 날아차기를 시도했다.

푸악.

우당탕탕.

놈은 제대로 맞은 모양인지 허리가 휜 상태로 나가떨어졌다.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일어서질 못했다. 축 늘어진 팔과 다리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대충 봐주지 마라. 이런 새끼들한테 당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괴롭힘을 낙으로 삼는 놈들에게 자비는 없다. 학교 폭력으로 자살하거나 정신적으로 폐인이 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솔직히 혜영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로 떠난 거지.”

쿠앙!

엄청난 타격음에 주위가 다 조용해졌다.

동빈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땅바닥에 벌러덩 누워있는 놈이 보였다. 양손으로 동빈의 주먹을 막기는 했지만 힘에서 밀린 것이 분명했다. 동빈의 주먹은 놈의 방어를 뚫고 땅바닥까지 이어진 것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동빈아, 이젠 살살해도 되겠는데… 그러다 진짜 사람 잡겠다.”

“여기서 혜영이 이야기가 왜 나와…….”

몸으로만 뛰던 동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층 낮아진 목소리에 주철조차 흠칫했다. 물론 경기 연합의 사기는 말이 아니게 떨어졌는데, 그때였다.

“김동빈, 아직 사시미 맛을 못 봤지.”

스릉.

현준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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