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5/224)

경기 연합

빨간 모자 양아치가 안내한 곳은 낡은 건물이었다. 철거가 예정된 건물인지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었다. 출입을 통제하려고 철조망을 쳤지만 별로 효용은 없어 보였다. 철조망 곳곳이 찢어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제대로 못 합니까. 오리걸음 싫으면 다시 포복 들어갑니다.”

“헉헉… 오, 오리걸음 좋습니다. 헉헉…….”

주철의 행동은 악질 조교보다 더욱 심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끝까지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빨리빨리 움직이십시오.”

“헉헉… 씨발… 힘들어 죽겠네… 헉헉…….”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아닙니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빨간 모자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오리걸음을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휘청거렸다.

맥없이 쓰러지기를 수십 번. 마지막은 거의 기다시피 철조망에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빨간 모자는 주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땅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가쁨 숨을 몰아쉬었다.

“어이, 숨은 집에서 쉬고 빨리 안 꺼져?”

“가, 갑니다. 아, 안녕히…….”

“인사 필요 없으니까. 빨리 꺼져.”

“네… 지, 지금 꺼집니다.”

빨간 모자는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뛰었다. 체력이 바닥났는지 몇 걸음 비틀비틀 가다가 픽 쓰러졌다.

“저것 봐라. 저거…….”

“허걱!”

빨간 모자는 주철의 목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다.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키고는 죽어라 내달렸다. 물론, 오래 뛰지는 못하고 쓰러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쯧쯧쯧… 저러니 생양아치 소리를 듣지. 주먹 무서운 것만 아는 놈이니…….”

“주철아, 그만 쯧쯧거리고 할 일이나 하자고.”

동빈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철은 양아치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여기저기 찢기고 구멍 난 철조망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찾긴 한 것 같은데…….”

“이쪽으로 들어가자.”

동빈과 주철은 크게 벌어진 철조망 사이로 몸을 빼냈다. 예전에 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깨진 아스팔트 바닥을 걸으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철아, 우리를 별로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건물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끼리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큰 소리로 떠들며 장난을 쳤다.

“놀기 바쁘잖아. 신경 쓰지 말고 저쪽으로 가자.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그런 것 같다.”

동빈과 주철은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콘크리트 벽에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가 수상했다.

퍽퍽퍽.

싸우는 소리가 확실했다.

사람을 패는 소리와 욕설을 들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확실히 들려왔다.

스윽.

벽면을 따라가던 동빈과 주철은 열린 공간을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출입문이 있던 자리였다.

조용히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았고 예상과 다르지 않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퍼억.

엄청난 주먹질에 피가 터지는 장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집단으로 폭행을 가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로 쓰러지면 안 되지.”

주먹을 맞고 비틀거리는 학생을 다른 놈이 붙잡았다. 불쌍해서 부축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주먹세례를 퍼붓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으니까 개긴 거 아니야? 주제를 알고 덤벼야 할 것 아니야!”

퍼억퍼억.

놈은 엉망이 된 학생의 얼굴을 난타했다. 쓰러지지 못하게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서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었지만 주철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드디어 아는 사람 찾았냐?”

“빙고!”

주철은 환한 웃음까지 지으며 좋아했다. 불쌍하게 얻어터지는 학생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네 친구라는 놈들은 대부분 저러냐?”

동빈은 상당히 못마땅한 말투였다.

무슨 이유로 사람을 패는지는 모르지만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저러지는 않지.”

“어쨌거나 빨리 끝내고 가자.”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금방 돈 꿔 올게.”

주철은 집단 폭행의 현장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것이 반가운지 손까지 번쩍 치켜들었다.

“반갑다, 친구야. 잘 있었냐!”

멈칫.

집단으로 구타하던 놈들의 손길이 멈추었다. 주철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다가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넌, 누구야? 어떤 놈이 저놈 친구야?”

“나는 모르는 놈인데… 혹시 너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탓인가?

놈들은 주철을 보고도 뚱한 반응이었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 누구 친구인지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광수야, 오랜만이다. 엄청 많이도 맞았구나.”

“……!”

‘뭐야? 때리는 놈들이 아니라 맞는 놈이었어?’

모두가 황당한 반응을 금치 못했다.

폭력을 썼던 놈들은 경계의 눈빛으로 돌아섰고 동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대부분 저러지 않는다는 주철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거 뜻밖인데… 광수 놈한테 도와줄 친구가 있었어?”

풀썩.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놈들은 피떡이 된 학생을 풀어주었다.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기에 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광수야, 나 몰라? 강남의 양주철이야.”

주철은 다른 놈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축 늘어져 있는 광수한테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했다.

“양주철… 그래… 강남의 양주철…….”

피떡이 된 광수는 주철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름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보니 안다는 듯이 분명했다.

“다행이다. 날 알아보긴 하는구나.”

“고, 고맙다. 나를 도와주러 왔구나…….”

세상에 이렇게 반가운 일이 어디 있으랴? 위기의 순간 친구를 만난 것이다. 광수는 엉망이 된 얼굴로 힘들게 미소까지 보였는데…….

“도와주러 온 건 아니고… 돈 좀 빌려달라고 찾아왔다.”

“…….”

감격에 젖었던 광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주철의 의지는 확실했다.

“뭐 하냐? 피 좀 닦고, 돈 좀 꺼내봐.

“…….”

“기운 없으면 내가 대신 꺼낼까? 어느 주머니에 있냐?”

주철은 광수의 옷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했다.

제일 황당한 것은 광수였고, 그다음은 집단 폭력을 행사했던 놈들이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눈이 삐었냐? 돈 찾고 있잖아.”

우선은 아군인지 적군인지부터 구별이 가지 않았다. 때렸던 놈의 친구라 하여 긴장했는데, 하는 짓은 영 아니었다.

“너 누구냐고? 대체 정체가 뭐야!”

“강남의 양주철이다. 이름은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광수야, 돈 이거밖에 없어?”

주철은 계속 주머니를 뒤지면서 대답했다. 상대가 어떤 표정으로 물어보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 개념 없는 새끼야, 한 번도 못 들어봤다.”

“젠장… 또 일이 꼬였군. 진짜 모르나 보네?”

주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진짜 내 이름 몰라? 그러면 경기 연합 아는 놈은 없냐?”

“완전히 정신 나간 새끼구만. 어디서 경기 연합 이름을 팔아먹어. 우리가 바로 경기 연합의 일진이야.”

주철의 말은 놈들의 분노만 자극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다른 놈들까지 합세하여 주철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언제 경기 연합이 이런 놈들로 바뀌었지? 그래… 호랑이가 떠나면 여우가 날뛰니까 말이야.”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여우가 날뛴다고?”

“진정들 하라고. 세월이 지났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

경기 연합은 험악한 얼굴로 주철에게 다가갔다.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집단으로 린치가 날아올 상황이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누구한테 진정하라 마라 명령이야.”

“왜… 다가오냐? 웬만하면 대화로 해결하자고…….”

분위기자 점점 험악해지자 주철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겁도 없이 우리 일을 방해하고 경기 연합까지 사칭했겠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조용히 말로 해결하자고.”

주철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콘크리트 벽에 몸을 바싹 붙인 상태였다.

“좋은 주먹 놔두고 뭐 하러 말로 해결해. 이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나지? 뺀질한 면상부터 확!”

“잠깐! 소문 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요즘 이상한 소문 하나가 떠돌고 있지. 너희들과도 관계된 일이니 듣는 게 좋을 거야.”

주철은 양손을 치켜들며 뛰어들려는 놈들을 제지했다.

정말 귀한 정보라고 주장했지만 경기 연합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헛소리 그만 해. 어떤 소문인지 몰라도 신경 안 쓰니까.”

“정말 그럴까?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 들으면 깜짝 놀랄걸.”

“이 새끼가! 끝까지 주둥아리만 살아서…….”

“조심하라고. 김동빈이 쳐들어왔거든.”

“……!”

경기 연합에 관련된 놈들 모두가 움찔했다. 주철을 위협하려 몰려든 놈들은 물론이고, 멀리서 지켜보던 놈들까지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거봐. 내가 깜짝 놀랄 거라고 했잖아?”

“똑바로 말해! 그 소문이 진짜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경기 연합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주철의 대답은 확실했다. 너무나 확실해서 의심이 갈 정도였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지? 확실한 근거라도 있나?”

“물론, 너무나 확실한 근거가 있지. 내가 김동빈 친구거든. 좋은 정보 줬으니 나는 가도 되지?”

“싸이코 같은 새끼… 어디서 구라를 까려고! 경기 연합 사칭도 모자라서 이제는 김동빈까지 들먹여? 김동빈인지 뭔지 나타나면 내 손으로 죽여버린다!”

경기 연합의 분노가 폭발했다. 잠시나마 주철의 말에 혹한 것이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는데…….

“동빈아, 들었냐? 이 새끼들이 너 죽인대.”

“……!”

주철의 시선을 따라 경기 연합의 고개도 돌아갔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인가? 동빈을 바로 앞에 두고도 전혀 의식을 못 한 것이다.

“니가 진짜 김동빈이냐?”

“아마 그럴걸.”

경기 연합은 주철의 말을 믿을 수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동빈은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놈들은 확실히 믿는 눈빛이었다.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왔지?”

“친구 놈이 돈 좀 빌린다고 해서 따라왔지. 저놈이 내 친구거든.”

동빈은 주철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사람 말을 왜 못 믿어? 내가 친구라고 했잖아.”

이럴 때는 겸손해야 하건만… 주철은 승리의 ‘V’ 자까지 그리며 해맑게 웃었다.

물론 경기 연합은 주철의 행동을 철저히 무시했다.

“김동빈, 우리 경기 연합과 싸울 용의가 있나?”

바싹 굳은 얼굴로 동빈의 행동만을 주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이었다.

“없다면… 그냥 조용히 보내줄 거야?”

“아니,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동빈은 목소리는 차분했다. 숫자만 믿고 까부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인 인원은 대략 50이 넘는다. 김동빈, 네가 얼마나 센지 몰라도 감당하기 힘들 거다.”

“맘대로 판단해도 좋아. 그런데 말이야, 입 좀 그만 나불거리고 덤벼주지 않겠어? 난 누구처럼 입으로만 상대하지 않거든!”

“……!”

50명이 넘는다고 큰소리치던 경기 연합이 움찔했다.

동빈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경기 연합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 동빈이 냉철한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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