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9/224)

탈영

수련회 둘째 날.

학생들은 아침부터 비명을 질러댔다. 근육이 뭉쳐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고 훈련의 강도가 약해지진 않았다. 학생들의 아침은 유격 훈련으로 시작되었다.

“유격!”

“유격대!”

특수 교육장은 학생들의 구호로 메아리쳤다. 교육 구간을 이동할 때에는 이처럼 유격 구호를 외쳐야 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가벼운 PT로 몸부터 풀겠습니다.”

“아우∼!”

“우∼!”

학생들은 PT라는 말만 나와도 인상을 구겼다. 특별 조라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었다. 이처럼 쉬지도 못하고 구를 때가 허다했다.

“말이 많습니다. PT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준비.”

“꼭 해도… 이런 것만…….”

이건 주철의 불평만이 아니다. 특별 조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힘들다고 소문난 것만 골라서 받는 느낌이었다.

“횟수는 20회,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습니다. PT체조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학생들은 죽을 맛이었다. 5개를 하기 전에 발이 후들거렸다. 제대로 따라 하는 학생은 동빈뿐이었다.

“101번 교육생, 열외!”

“감사합니다.”

동빈의 열외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다음은 꼭 주철이 관심을 받았다. 물론 좋은 일로 열외는 아니었다.

“102번 교육생, 똑바로 못 합니까!”

‘부, 불리해. 동빈이 옆에 있어서 그런가?’

유독 자신에게 심하게 대하는 조교들이 원망스럽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습니까? 102번 교육생. PT 8번 온몸 비틀기 준비.”

“……!”

이런 관심은 진짜 싫다. 조금만 잘못해도 열외 교육을 받아야 했다. 주철에게는 공포의 수련회나 다름없었다.

유격과 장애물 훈련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동빈이 속한 특별 조는 헬리콥터 모형이 있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바랍니다.”

“웬일이야∼.”

“그러게?”

특별 조 학생들은 조교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처럼 휴식부터 취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번 과제는 헬기 레펠입니다. 우선 숙달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편한 자세로 구경하십시오.”

“조교 강동환, 하강 준비 끝.

허공에서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은 고개를 들어 헬기 모형을 쳐다보았다. 헬기 모형 밖으로 몸을 내민 조교는 몸을 L자로 만든 상태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하강.”

“하강!”

주우웅-.

하강 명령이 떨어지자 조교의 몸은 땅으로 떨어졌다. 후방 레펠. 몸을 뒤로 한 채 떨어지는 기술이었다.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지상과 가까워지자 순간적으로 몸을 멈췄다.

“우와! 진짜 멋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영화에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는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여러분도 하고 싶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위험해 보이지만 꼭 하고 싶었다. 멋지게 레펠을 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지겨운 PT를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다.

“헬기 레펠은 쉬운 훈련이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여러분은 레펠을 탈 수 없습니다.”

“네? 그럼 저희는 무얼 합니까?”

“당연히 PT입니다. 모두 일어∼서!

“…….”

잔뜩 고무되었던 학생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억지로 일어서기는 했지만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쉬면서 굳어진 몸을 풀겠습니다. PT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준비.”

“크악! 오늘은 왜 9번만…….”

“횟수는 25회. 참! 김동빈 훈련병은 열외.”

이제 조교들은 대놓고 동빈을 편애했다. 시작부터 열외를 시키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PT체조 9번. 쪼그려 앉아 뛰며 돌기…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특별 조 학생들의 부러움은 날로 커졌다. 힘들게 PT를 하면서도 동빈을 쳐다보았다. 레펠을 했던 조교가 동빈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101번 교육생, 레펠 한번 타보겠나?”

“그러지요…….”

동빈은 사양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조교를 따라 헬기 모형에 올랐다. 진짜로 레펠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조교 강동환, 하강 준비 끝.

“101번 교육생 하강 준비 끝.”

이번에는 레펠 시합인가? 동빈과 조교는 헬기 모형에 걸터앉아 하강 준비를 보고했다.

“얼레? 안전 장비도 착용 안 했잖아?”

“뭐라고!”

레펠 대결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경악했다. 조교나 동빈 모두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장갑만 낀 상태에서 줄을 잡고 있는 것이다.

“저건 페스트로프 방식이다. 빨리 내려가는 것이 목적이라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 팔 힘과 균형 감각을 이용하여 하강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궁금증은 조교가 대신 풀어주었다. 속도가 생명인 현대전에서는 페스트로프가 각광을 받았다. 총탄이 쏟아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안전 장비를 차고 푸는 것 자체가 도박이었다.

“위험하진 않습니까?”

“물론 위험하다. 하강 속도가 빠른 만큼 추락하면 큰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지. 숙달된 사람 아니면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한다. 잠시 짬을 내서 보도록. 하강.”

주우웅.

주우웅.

“우와, 빠르다!”

동빈과 조교는 로프를 감싸 안듯이 잡고는 거의 수직으로 떨어졌다. 좀 전에 보았던 후방 레펠과는 차원부터 달랐다.

“김동빈, 상당한 실력인데?”

“아닙니다, 조교님이 더 뛰어납니다.”

조교와 동빈은 서로 칭찬했다. 그러고는 여러 가지 레펠 기술에 대하여 담소를 나눴다.

“쟤는 어떻게 학생보다 군인하고 더 친하냐?”

왕따 김동빈. 지금도 친구는 석진과 주철뿐이었다. 그러나 수련원에 와서는 확 달라졌다. 친하다 못해 조교들과 친구 먹는 수준처럼 보였다.

“저놈 전생에 군인이었나 보다.”

“그래, 가장 신빙성 있는 대답이다.”

학생들은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구경 끝났다. 다시 PT를 시작한다. 10회부터 시작!”

학생들은 다시 PT의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일찍 결론을 내리기 잘했다. 조교들은 딴생각할 틈을 잠시도 주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학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간 훈련. 이번에는 결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철아! 어디 있어? 주철아!”

동빈은 주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식당에서부터 보이지 않았다. 집합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주, 주철아? 계속 여기에 있었어?”

“응…….”

주철은 화장실 건물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딱총 맞은 개처럼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빨리 군장 챙겨야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번 훈련은 야간 행군이라며…….”

“응.”

“아주 많이 걷는다며…….”

힘없이 목소리는 예전의 주철이 아니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큰소리쳤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그래?”

“난 야간 행군 못 해…….”

“그렇게 힘들면 내가 교관님께 부탁해서 빼줄게.”

“아니… 나는 이곳 자체가 싫어. 다른 애들 때문에 억지로 참았는데… 내 참을성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주철의 반응은 심각했다. 버릇처럼 불만을 내뱉는 것이 아니었다. 참다 참다 못 참고 폭발하는 표정이었다.

“주철아,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됐다. 난 간다. 서울에서 보자.”

주철은 특전사 캠프의 담장을 넘었고 동빈은 어쩔 줄 모르고 망설였다. 주철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친구를 따를 것인가, 조교에게 보고할 것인가. 정말 대책이 서지 않았다.

“주, 주철아…….”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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