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7/224)

구보를 끝낸 여학생들이 연병장 주변에 앉아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후 과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한다.”

선글라스 교관은 여학생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생각보다 잘 따라주었다는 칭찬이었다.

“야간 훈련도 이번처럼 잘 따라주기 바란다.”

“아니에요! 남학생들이 이기면 안 한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말 바꾸지 마세요.”

여학생들이 발끈했다. 약속을 어기고 야간 훈련을 강행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진정해라.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남학생들이 조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잖아요.”

“언제부터 남학생들하고 사이가 좋아졌지? 하하하하.”

선글라스 교관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여학생들의 반응이 싫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교관님, 분명히 약속했어요. 남학생이 이기면 야간 훈련 취소하는 거예요.”

“물론이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이제 돌아올 시간이니 나도 구경이나 해볼까?”

교관은 손목시계를 흘깃 보고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폭풍 구보를 떠난 학생들이 돌아오는 방향이었다. 여학생들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와, 왔다!”

누군가가 손짓까지 하며 큰 소리 쳤다. 연병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쪽이다.

“어, 어디? 어디냐고!”

여학생들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섰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누가 먼저 들어오는지 바라보았다.

“뭐, 뭐야? 남학생들은 안 보이잖아?”

실망한 목소리가 역력했다. 첫 번째로 출발했던 조가 도착했지만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조교 한 명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연병장으로 들어섰다.

“너무 약하다. 조교들이 너무 강한 건가?”

“실망할 필요 없어. 나머지 애들이 있잖아.”

“야! 두 번째 조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그러면 그렇지…….”

두 번째 조도 마찬가지였다. 인솔하는 조교가 먼저 들어왔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첫 번째로 출발했던 학생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헉헉… 헉헉…….”

제대로 뛰어오는 학생이 없었다. 비틀거리는 것은 기본이었고 반쯤 기어 오는 학생들도 보였다.

“곧 쓰러질 것 같은데? 정말 불쌍하다.”

“무슨 소리야, 노력은 했잖아. 우리가 응원해주자.”

“그래! 좋은 생각이야!”

여학생들은 실망스런 표정을 재빨리 감추었다. 조교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짝짝짝짝.

“정말 수고했다. 너희들 다시 봐야겠다.”

“파이팅! 조금만 더 가면 쉴 수 있어.”

그녀들은 연병장 입구까지 마중 나가서 남학생을 응원했다. 뜻밖의 환호에 힘을 얻었는지 남학생들도 힘을 내어 뛰었다. 선글라스 교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믿을 사람은 동빈이밖에 없는 거네?”

“그렇다고 봐야지.”

“근데 동빈이는 언제 들어오는 거야?”

여학생들의 관심은 동빈이 언제 들어오느냐에 쏠렸다. 지친 남학생들을 응원하면서 틈틈이 전방을 주시했다.

“특별 조는 맨 마지막으로 출발했잖아.”

“아직도 많이 남았구나.”

이제 겨우 두 개 조가 들어왔을 뿐이다. 나머지 세 개 조가 들어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여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오, 온다! 동빈이가 온다!”

“뭐야? 동빈이!”

여학생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세 번째로 출발한 조가 도착할 시간 아닌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눈이 커졌다.

“지, 진짜다. 진짜 동빈이다!”

“조, 조교들도 만만치 않아!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동빈과 조교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 차이는 없었다. 조교 셋과 동빈은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얘들아, 비켜. 동빈이가 달리잖아!”

여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남학생들은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동빈과 조교들의 대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그런데 결승점이 어디지?”

“나도 모르지? 지, 진짜…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 거야?”

학생들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도대체 결승점이 어디란 말인가? 연병장 입구인가? 아니면 사열대까지 달려야 하는가? 이렇게 치열한 대결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부슥.

사열대에 앉아있던 선글라스 교관이 일어섰다. 그도 치명적인 문제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저, 저기다. 저기가 결승점이야!”

교관은 연병장 중앙에 멈추었다. 결승점을 표시하는 행동이 분명했다. 교관이 서있는 지점을 먼저 통과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다, 달려! 동빈아 달려!”

“조교님들은 제발 쉬세요!”

연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함을 치며 응원하는 학생들로 난리가 아니게 변했다.

“달려! 동빈아. 달려! 야간 훈련은 싫어∼!”

후앙.

동빈과 조교들은 엄청난 속도로 연병장 입구를 통과했다. 남은 거리는 150m 정도. 아직도 누가 이길지 예측할 수 없는 박빙의 승부였다.

“그, 그래! 동빈아, 달려!”

연병장에 들어서자 동빈이 더욱 빨라졌다. 두 명을 한꺼번에 제치며 튀어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이 문제였다. 선임 조교의 속력은 동빈 못지않았다.

“동빈아, 힘내! 얼마 남지 않았어!”

“저 교육생은 뭐야…….”

열띤 응원을 펼치는 학생들과 달리 조교들은 놀란 표정만 지었다. 조교와 치열한 접전을 펼치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차작.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동빈과 고참 조교는 양측으로 거리를 벌렸다. 정확한 승부를 위해서 교관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들어가겠다는 행동이었다.

씨익.

교관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죽을힘으로 달려오는 동빈과 조교의 표정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파파팟.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동빈과 조교는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누, 누가 이긴 거야?”

“그러게?”

결과를 알 수 없다. 거의 비슷하게 통과하여, 누가 이겼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관님, 누가 이겼어요?”

“궁금해죽겠어요. 빨리 알려주세요.”

모든 시선이 교관에게 집중되었다.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었고 판정을 내릴 위치도 충분했다.

학생들과 조교들은 숨을 죽인 채 교관의 반응을 주시했다.

“결과는… 무승부!”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맞아요! 무승부는 필요 없어요!”

학생들의 불만은 대단했다. 야간 훈련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조용!”

교관의 준엄한 목소리는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웠다. 불만이 있어도 조용히 입을 닫아야 하는 분위기였다.

“구보 대결은 무승부다. 그러나 서로를 격려하는 너희들의 행동에 추가 점수를 주겠다. 쉽게 말하면… 야간 훈련은 없다.”

“우와! 신난다!”

일시에 터지는 함성. 학생들은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야간 훈련을 피하는 것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네, 김동빈입니다.”

판정을 마친 교관은 동빈에게 다가갔다. 잠시 숨을 고르던 동빈은 부동자세를 하며 대답했다.

“아주 인상적인 대결이었어. 그리고 고맙네.”

“……!”

교관은 이상한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동빈은 왜 고맙다고 말했는지 물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학생들이 동빈이를 잡고 헹가래를 쳤기 때문이었다.

“김동빈, 만세! 만세! 만세!”

야간 훈련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동빈의 몸은 점점 더 높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한편, 아직도 구보를 끝내지 못한 학생이 남아있었다. 긴급 제안을 했던 주철이었다.

“젠장… 동빈이 보조 맞추느라 너무 힘을 다 쏟았네…….”

주철은 투덜거리며 걸었다. 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은 걷는 것조차 힘에 겨운 표정이었다.

“102번 교육생. 좀 빨리 걷지? 저녁 안 먹을 거야?”

“저기… 무릎이 아파서 그런데… 조금 쉬었다 가지요?”

“포기하겠다는 뜻인가?”

“아, 아니요.”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완주를 못하면 동빈이 이겨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그냥 걸어.”

“네…….”

주철은 이를 악물고 걸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공공의 적으로 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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