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의 휴식 시간.
학생들은 숙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조별로 무리를 지어 연병장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빈아, 바뀐 일정표 나왔다.”
유나는 여기서도 잔심부름을 담당했다. 새롭게 나온 일정표를 동빈에게 보여주러 다가왔다.
“벌써 나왔냐? 이리 줘봐.”
화악.
“어머나, 주철이 너는 뭐니?”
주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정표를 빼앗았다. 유나가 눈을 흘기며 째려봤지만 주철은 새롭게 바뀐 일정표에만 관심을 보였다.
“크억! 이건 아니야. 독재시대 삼청교육대도 아니고…….”
3박 4일 동안 고생문이 훤했다. 오전 6시 기상에 밤 10시 취침. 점심시간을 빼면 훈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싸운 피해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그런데… 특별 조는 뭐야? 엄청 고생하겠는데?”
모두가 고생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별 조는 죽음의 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별의별 이상한 훈련이 따로 배정되어있었다.
“주철이 너 몰랐니? 동빈이하고 네가 속한 1조가 특별 조야.”
“뭐라고? 내가 왜 특별 조야!”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주철은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진작 눈치 챘어야 했다. 학교에서 괜히 문제아들만 모아놓을 리 없었다.
“특별 조는 동빈이가 조장이다. 한 장은 숙소에 붙이고 나머지 한 장은 가지고 있어. 난 간다. 다른 조에도 전달해야 하거든.”
“그래, 잘 가라.”
유나가 떠나자 동빈은 다음 시간이 뭔지 살펴보았다. 조장이 되었기에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기본 제식 및 정신력 강화 훈련이라… 장소는 연병장. 준비물은 따로 없네.”
“젠장! 비나 엄청 쏟아졌으면 좋겠다.”
주철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원망했다. 비가 오면 야외에서 하는 훈련이 취소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주철아, 미안하지만 일정표의 특이 사항을 살펴볼래?”
“뭐라고 써있는데?”
동빈이 일정표를 내밀자 주철이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훈련 내용이 적혀있는 옆 칸에 특이 사항이 적혀있었다.
우천 시 훈련 가능.
“…….”
주철의 마지막 희망까지 꺾이고 말았다. 요령도 통하지 않고 날씨도 상관없었다. 꼼짝없이 훈련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조용했던 연병장이 학생들의 고함으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식사 전과 매우 달라져 있었다. 혹독한 훈련 때문에 완전히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10분간 휴식!”
“우와∼!”
짧고 달콤한 시간이 찾아왔다. 휴식이라는 교관의 목소리와 함께 학생들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젠장, 다리가 후들거려죽겠다.”
주철도 큰 대 자로 누웠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을 내뱉는 일은 잊지 않았다.
“불평하지 말고 편히 쉬어라.”
“난 말이야… 여기에 배치된 의료진들이 마음에 안 들어.”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거잖아.”
연병장 주위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응급 요원들이 자리했다. 주철은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사람들까지 불만으로 삼았다.
“동빈이 너는 그렇게 보이냐? 나는 죽지 않을 만큼 철저히 굴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엄살이 통하지 않잖아!”
“계속 말하는 걸 보니 아직은 괜찮은 모양이다. 다른 애들은 힘들어서 말도 못 하는데 말이야.”
동빈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아끼려고 말을 아끼는 학생들도 많았다.
“억울해. 학생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러면 반칙이잖아? 도대체 선생님들은 다 어디 있어? 학생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는데 도와줄 생각은 않고 말이야, 어디서 띵가띵가 하면서 놀고 있겠지…….”
“그건 아닌 것 같다. 선생님들도 우리와 비슷한 훈련 받는다고 하던데? 엄청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뭐, 뭐라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교장 선생님도 훈련받는다고 하더라. 학생들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결코 편하지는 않대.”
선생으로서 모범을 보이려는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인가? 선생들의 처지도 학생들과 비슷했다. 교장이 직접 뛰니 요령을 부릴 수도 없었다.
“휴식 끝!”
“정말 미친다. 10분이 너무 짧아…….”
학생들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늦으면 또 기합이다. 부동자세를 유지하며 사열대에 있는 교관을 바라보았다.
“휴식을 하면서 굳어졌던 몸을 간단히 풀겠다.”
“나는 저 교관 말 절대 안 믿는다.”
간단히 몸을 푼다? 반쯤 죽인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주철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가득했다.
“PT체조 6번. 발 벌려 뛰기 준비.”
“아야!”
“야!”
학생들은 힘차게 고함치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이제는 제법 절도 있는 동작이 나왔다. 처음에 잘 못하면 더욱 구르기 때문이었다.
“횟수는 30회, 마지막 구령은 붙이지 않는다. PT체조 6번. 발 벌려 뛰기…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학생들은 죽을힘을 다해 뛰었고 빨간 모자의 조교들이 수시로 학생들 사이를 오고 갔다. 요령을 피우는 학생을 잡기도 했고 진짜 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들을 추려내기도 했다.
“101번 교육생.”
“네, 101번 교육생!”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조교가 동빈 앞에 멈췄다. 동빈의 자세를 자세히 관찰한 다음이었다.
“101번 교육생. 이름이 뭡니까?”
“네, 101번 교육생. 김동빈입니다.”
“완벽한 자세입니다. 뒤로 빠져서 편히 쉬십시오. 열외!”
“감사합니다.”
동빈의 열외는 처음이 아니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형국이다. 조교들은 동빈의 완벽한 자세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학생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102번 교육생.”
“네? 교, 교육생, 102번…….”
동빈을 열외시킨 조교는 주철 앞에 멈췄다. 상황이 좋지 않다. 주철은 동빈을 보다가 잠시 한눈을 판 상태였다.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복명복창 확실히 하십시오.”
“네, 102번 교육생!
“다른 곳에 한눈팔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시, 시정하겠습니다!”
잘못을 시인한다고 넘어갈 것인가? 이곳은 실수를 하면 몸이 고단해졌다. 주철이 악을 쓰며 대답했지만 조교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
“시정을 하는 의미에서 PT 8번. 온몸 비틀기 준비합니다.”
“오, 온몸 비틀기… 조교님, 그것만은 못합니다. 제가 허리가 좋지 않습니다.”
주철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온몸 비틀기. 체조가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말이 많습니다. PT 8번. 온몸 비틀기 준비!”
“주, 준비!”
주철은 땅바닥에 누워 자세를 잡았다. 반항을 해도 소용없다. 횟수만 늘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양팔을 쫙 벌리고 다리를 확실히 모으십시오. 고개 들고 다리는 올립니다.”
부들부들.
주철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취했다. 빨리 끝내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PT 8번. 온몸 비틀기 실시!”
“하나… 두, 둘… 세에엣. 하나… 하, 하나… 둘… 그런데 조, 조교님… 며,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내가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합니다. 제대로 못 합니까? 다리가 점점 내려갑니다.”
간신히 몇 번 했지만 온몸이 아작 나는 것 같았다. 주철의 몸짓은 발악에 가까웠다.
‘비, 비겁한 놈…….’
고개를 떨어트리니 동빈이 보였다. 편하게 쉬면서 조교들과 잡담까지 나누었다. 주철에게는 부럽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쉬는 사람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다 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PT를 제대로 하면 몇 배나 힘듭니다. 저 교육생은 당연한 보상을 받는 것입니다. 또 다리가 내려갑니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필요 없습니다. 5회 추가합니다.”
“크윽!”
주철은 비명에 가까운 음성을 토했다. 온몸 비틀기 5회. 차라리 편한 PT 50회가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