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수련회
동빈의 성격은 매우 단순한 편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생각이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나서 제일 먼저 신경 쓴 것이 뒤처진 공부였다.
‘수학…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과목이다.’
동빈은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체육을 빼고는 모든 과목에 취약함을 보였다.
‘집중하자… 집중하자…….’
동빈은 전투적인 자세로 수업 시간에 임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다. 수학 선생의 사소한 행동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방금 푼 문제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수능에 이런 문제는 나오지 않지. 조금 응용해서 문제를 내면…….”
탁, 타닥, 탁탁.
수학 선생은 칠판에 문제를 적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조차 난색을 표했다.
“누가 풀어볼까… 김동빈.”
“네!”
수학 선생이 동빈을 불렀다. 운이 좋다. 어제 예습하면서 한번 풀어본 문제였다. 동빈은 힘차게 대답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는데…….
“눈에 힘 풀어.”
“네…….”
“석진이 나와서 풀어봐.”
“…….”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동빈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다시 앉아야 했다. 너무나 전투적인 눈빛이 수학 선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은 활기를 되찾는다. 특히, 수학 시간이 끝나면 더욱 그러했다. 삼삼오오 모여서는 잡담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이번 수련회는 어디로 간대?”
“경기도 쪽 아니야? 그쪽에 청소년 수련장이 많잖아?”
“아닌데? 갑자기 바뀌었다고 하던데?”
화제는 단연 수련회였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작은 변화가 활력소가 되었다.
“주철아, 너도 수련회 가냐?”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학교생활 열심히 하기로 아버지와 약속했거든.”
“그런데 수련회가 뭐야? 힘든 훈련도 있다고 하던데?”
동빈은 수련회가 뭔지 진짜 몰랐다. 주변에서 띄엄띄엄 들은 지식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첫날만 조금 굴리고… 나머지는 그냥 노는 거야. 농악 배우고 도자기 만들기도 했지? 캠프파이어도 하고 장기 자랑도 하고…….”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진짜 가봤어?”
“1학년 때 갔었다. 그런데 이놈의 학교는 어째서 2학년 때 가는 거야? 게다가 2박 3일도 아니고 3박 4일씩이나…….”
주철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으로 전학을 오기 전에 벌써 수련회를 다녀온 것이다.
“또 가면 어떠냐? 말만 들어도 재미있겠다.”
“나 같은 놈들은 재미없거든. 단체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말이야. 툭하면 협동심 어쩌고 하는데 완전히 질려버렸다.”
“나는 무척 기대가 되는데. 좋은 추억이 생기는 거 아니야?”
“추억은 무슨! 나는 괜히 장기 자랑 나갔다가 찐다 먹은 기억밖에 없다. 젠장! 막춤을 추는 게 아니었는데…….”
주철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고개까지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이야 진정한 춤꾼으로 거듭났지만 그 당시는 아니었다. 되지도 않은 춤 실력으로 나갔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었다.
“동빈아, 체육 선생님 호출이다.”
학급의 살림꾼인 유나가 다가왔다. 이처럼 잔심부름을 많이 했지만 귀찮다는 모습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호출?”
“응. 지금 상담실로 빨리 오래.”
부스슥.
동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체육 선생과 동빈의 관계가 서먹해졌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불안하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육상 대회에 참가하라는 부탁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육상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공부와 피아노에 전념하고 싶었다.
“동빈아, 조심해야 할 거다. 요즘 체육 선생님의 심기가 많이 불편하거든.”
‘이놈은 친구라는 게 말이야,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고…….’
동빈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동빈이 선생에게 호출만 받으면 무조건 조심하라고 겁부터 주었다.
“놀리는 거 재미 들렸냐? 이젠 안 속는다.”
“어머! 주철이 너도 소문 들었구나?”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있는 모양이다. 유나까지 거들고 나서자 동빈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나야, 무슨 소문인데?”
“그게 말이야…….”
일단 분위기를 잡은 유나는 주위를 한번 훑어보았다. 동빈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심을 보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체육 선생님이 음악 선생님과 크게 싸웠대. 둘이 매우 친한 사이였잖아. 한때는 결혼한다는 소리도 들렸는데 말이야.”
“……!”
부담스런 체육 선생님. 더욱 부담스런 상황으로 돌아갔다.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말했을 때 절망적으로 변했던 체육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빈아, 뭐 하니? 너랑은 상관없잖아. 체육 선생님은 너라면 끔찍하게 위했잖아. 빨리 가. 어서.”
“그, 그래…….”
동빈이 우물쭈물하자 유나는 등까지 떠밀었다. 선생님의 호출에 늦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철아.”
예상이 맞았다. 유나는 동빈이 교실을 나서자 주철을 바라보았다.
“왜? 나도 호출이야?”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뭐야? 빨리 말해. 나랑 사귀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수상한 분위기를 탐지한 주철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저런 표정을 짓는 여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냐니까?”
“이번 수련회 때 장기 자랑 좀 나가라. 응? 우리 반이 망신당하는 거 정말 보기 싫거든. 제발 부탁이다.”
“우와∼ 미치겠다.”
부반장의 집념은 생각보다 강했다.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춤 한 번 추는 게 그리 힘들어? 한 번만 나가주라.”
“…….”
주철은 고개만 푸욱 숙였다. 언제까지 시달릴지 몰랐기에 막막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원해도 악몽 같은 장기 자랑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똑똑똑.
마음을 가다듬은 동빈은 상담실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체육 선생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에 불안한 모습이었다.
“들어와라.”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동빈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래, 그쪽에 앉아라.”
동빈이 상담실을 들어서서 체육 선생의 앞자리에 앉을 때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체육 선생이 무슨 말을 할지 문제였다.
“저기… 무슨 일로 호출을 하셨는지…….”
동빈의 마음이 급했다. 먼저 호출한 용무를 물으며 체육 선생의 눈치를 살폈다.
“동빈아, 나도 중학교 때 방황한 적이 있었다.”
“…….”
뜻밖이다. 체육 선생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놓으려는 것인가? 너무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기에 동빈은 조용히 경청만 하는 상황이었다.
“참, 싸움도 많이 했었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절대 용서가 없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은 병까지 얻으셨고 학교에서도 포기한 상태였지.”
“그래도 다행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되지 않았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다. 동빈은 체육 선생이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기분을 맞춰주었다.
“그래, 운이 좋았지. 동빈아,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체육 선생의 눈빛은 애틋했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제자를 바로 잡아주려는 열정이 느껴졌다.
“네? 뭘 할 수 있단 말씀이신지…….”
덥석.
“동빈아, 운동으로 기나긴 방황을 극복하자.”
동빈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체육 선생이 갑자기 손을 잡으며 애틋한 눈빛을 계속 보냈기 때문이었다.
“서, 선생님…….”
“싸움은 그만두고 운동으로 극복하자. 육상만을 고집하지 않겠다. 격투기가 하고 싶다면 권투나 태권도는 어떠냐?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네 부모님도 기뻐할 것이다.”
“선생님, 저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동빈아! 나한테까지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너를 징계하려 할 때 나는 옷 벗을 각오하고 막았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나를 믿고 따르기 바란다.”
“…….”
동빈의 변명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체육 선생의 충고는 계속 이어졌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좋은 기회라니요?”
“이번 수련회 말이다.”
“별로 힘들 건 없다고 하던데요?”
동빈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수련회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체육 선생이 너무 흥분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었다.
“우리 학교가 문제 학교로 급부상하고 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수련회 내용을 전폭 수정했다.”
“수정요? 그것도 전폭씩이나…….”
동빈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당하면 캐나다로 떠난 혜영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요번 수련회는 보통의 극기 훈련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특전사 체험이다. 특전사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훈련받을 예정이다. 육체적 한계를 느끼면서 지난날 잘못을 반성하는 거다.”
“선생님, 군대는 정말 싫은데요…….”
“동빈아, 넌 할 수 있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큰일이다. 수련회가… 수련회가…….’
동빈의 얼굴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다. 예전 군 생활로의 회귀가 아닌지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