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나고 동빈과 주철은 강남으로 향했다. 일상으로의 복귀 마지막 단계가 남아있었다. 강남 연합과의 오해를 풀기 위함이었다.
“주철아, 이 병원이 확실하냐?”
“그냥 잠자코 따라와.”
병원으로 들어선 주철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내를 찾아가 묻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
“날 보면 그놈들이 싫어할 텐데…….”
“괜찮아. 내가 다 알아서 한다.”
운이 좋은 편이다. 엘리베이터는 빨리 내려왔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동빈과 주철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웅웅웅웅.
띵낑.
엘리베이터는 2층에 멈추었다. 주철은 서둘러 내렸고 동빈이 뒤를 따랐다.
“야, 이 정도면 걸어도 됐잖아?”
“난 계단 싫거든.”
“학교 옥상은 잘만 가드만…….”
오늘따라 동빈은 말이 많았다. 경찰서보다 병원이 훨씬 꺼림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철은 병실만 기웃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동빈아, 조용히 해라. 찾았다.”
주철이 멈춰 서자 동빈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하냐?”
끄덕끄덕.
주절은 병실 안을 슬쩍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연합 사건의 주요 피해자들이 누워있는 병실이 확실했다.
“주철아, 정말 괜찮을까?”
“네가 한 짓이 아니잖아. 당당하게 나만 따라와.”
“야, 그렇게 무작정 들어가면…….”
주철은 담담한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섰다. 대형 병실이었다. 10여 명의 환자들과 가족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침묵.
갑자기 병실이 조용해졌다. 동빈을 보고 놀란 것은 아니었다. 주철과 눈이 마주친 환자들이 먼저 흠칫한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도 누가 와서 그러나 하며 쳐다보면서 병실 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철은 얼굴과 몸에 붕대를 감은 환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괜찮으냐?”
“주, 주철아…….”
주철이 인사를 건네자 상처가 심한 환자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상당히 주철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놈은 누구… 뭐야? 귀공자 정성태 ’
동빈은 깜짝 놀랐다.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발음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황. 얼짱으로 소문났던 정성태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 혈서까지 보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어떻게 왔냐… 해외로 간지 알았는데…….”
“잔머리 굴리지 마라. 내가 강북에서 학교 다니는 거… 대충 소문으로 들었을 거 아니야?”
“미, 미안…….”
주철이 목소리를 낮추자 정성태는 사과하기에 급급했다. 병문안을 온 분위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꼭 연예인이 입원한 것 같다. 인형에 꽃다발에… 아무것도 안 사오길 다행이네. 어머니는 어디 가셨냐?”
“집에 일이 있어서…….”
주철은 농담을 건네며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정성태는 여전히 굳은 반응만 보였다.
“본론만 빨리 말하고 갈게. 이번 일로 김동빈한테 앙심 품지 마라. 그놈이 한 짓이 아니거든.”
“무슨 소리야? 그놈이 확실해.”
“증거 있어? 경찰에서도 김동빈의 알리바이를 인정했어.”
“그놈이 빽 쓴 거야. 경찰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우리는 달라. 반드시 그놈을 박살 낼 거야.”
정성태의 의지는 확실했다.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화풀이 대상이라도 찾겠다는 거야? 김동빈에게 맞았다는 놈이 어떻게 눈앞에 있는 김동빈을 못 알아봐? 응?”
“뭐, 뭐라고?”
“그래, 나와 같이 온 이놈이 바로 김동빈이다.”
“아, 안녕…….”
동빈은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소개할 줄은 몰랐다. 어색하게 손을 들어 자신이 그 문제의 김동빈임을 시인했다.
“정성태, 내 말 똑똑히 들어…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자. 괜히 죄 없는 사람 몰아붙이지 말고.”
“…….”
정성태는 아무런 반박을 못 했다. 범인을 지목해놓고도 눈앞에서 못 알아보다니. 갑자기 주철이 출연해서 당황하긴 했지만 충분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다른 가족들도 아무런 말을 못 했다.
“용건만 말하고 간다고 했지. 나는 그만 일어난다.”
“양주철… 우리를 조롱하러 왔냐…….”
정성태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떠나는 주철의 얼굴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내가 충고했지. 조용히 살라고…….”
“그렇게는 못 하겠다. 우리 부모님이 가만히 계실 것 같아?”
정성태가 돌변했지만 주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정성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조용히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 더러운 새끼야. 그냥 벌 받았다고 생각해. 따지고 보면 너희들이 사고 친 게 훨씬 많잖아. 이번을 반성의 기회로 삼고 조용히 아가리 다물어.’
“……!”
정성태의 얼굴은 가관이 아니게 변했다. 주철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어떤 위협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충고하는데… 동빈이를 함부로 건들지 마. 이건 너희들의 안전을 위한 충고야.’
주철은 귓속말을 마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정성태의 표정을 보니 어느 정도 오해가 풀린 것 같다.
동빈의 학교생활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