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50/224)

끼익. 끼익. 끼익.

여러 대의 차량이 경찰서 정문을 통과했다. 흔하지 않은 군용 차량이었다. 경찰서 본관에 차례대로 멈추자 군인들이 서둘러 내렸다.

척척척척.

경찰서에 군인들이 들어서자 모두가 의아한 반응이었다. 형사들은 물론 수갑을 찬 현행범들까지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상부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경찰서장입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경찰서장과 장군은 악수를 나누었다. 장군의 신분 때문인지 경찰서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군이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해명을 해야지요.”

“안으로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장군은 경찰서장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동빈은 다른 볼일이 있는지 옆 건물로 향했다.

요즘 생활안전과가 매우 시끄럽다. 강남 연합에 관련된 수많은 학생들이 참고인으로 불려 와 북적거렸다. 경찰들도 이만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을 일일이 조사하느라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넌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지?”

“맞아요.”

“호기심에 그냥 구경만 했고…….”

“맞아요. 싸우면 사범님께 혼나요.”

조사를 받는 학생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투를 보니 누군지 짐작이 됐다.

“죄가 없다면 왜 그리 열심히 도망쳤어?”

“다른 애들이 뛰니까 저도 뛴 거지요.”

“확실히 증명해줄 사람 있어?”

“많아요. 도장 친구도 있고… 체격 좋은 친구랑은 계속 같이 있었는데…….”

“체격 좋은 친구 이름이 뭐야?”

“이, 이름요?”

맞아요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정말 이름을 모르겠다. 떠오르는 기억으로 대충 설명하려 했지만 충분치 않았다.

“저희 사범님이 잘 지키라고 한 학생인데요… 모자 쓰고요…….”

“그렇게 설명하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요?”

맞아요는 말문이 막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보는 것인데. 방법은 하나, 사범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락도 없이 싸움 구경 갔다고 혼날 것이 분명하니 문제였다.

“형사님, 저 친구는 저랑 같이 있었습니다.”

벌떡.

“네! 맞아요. 너 무사했구나.”

뒤를 돌아본 맞아요는 구세주를 만난 표정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동빈의 등장을 환영했다. 체격 좋고, 모자 쓰고, 맞아요의 설명과 그대로 일치했다.

“자네도 여기 앉지. 같이 확인할 것이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경찰은 한꺼번에 조사하려 했다. 둘이 함께 있던 것이 확인되면 무죄가 증명되는 것이다. 또 한 번의 복잡한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으니 서로 편한 조건이었다.

“학생 이름은?”

“그래, 네 이름이 뭐였냐?”

동빈이 자리에 앉자 경찰은 기본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맞아요도 무척 궁금한 표정이었다.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경찰의 눈빛이 달라졌다.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수상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맞아요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름이 뭐냐니까? 나는 성인이야. 나처럼 쪽팔린 이름이야?”

“성인? 괜찮은 이름이잖아?”

동빈은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성인? 그리 이상한 이름은 아니라는 반응이었는데…….

“어이, 금성인. 그만 좀 떠들지. 외계인이라 지구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히힛… 괜찮아. 인터넷 보니까 목성인도 있더라.”

경찰의 질책에도 맞아요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실실거리며 동빈과 장난을 치려 했지만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입장은 달랐다.

“학생 나 피곤하거든. 빨리 이름부터 말해.”

“저는…….”

“거 참! 되게 뜸 들이네.”

조사하는 경찰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제 이름은 김동빈입니다.”

“기, 기, 기 김동빈!”

금성인의 목소리가 급박하게 높아졌다. 비명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침묵.

갑자기 경찰서 전체가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떠들던 학생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금성인(?)의 초음파에 지구인들이 얼어붙은 장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지, 진짜 김동빈일까…….”

“설마… 동명이인이겠지…….”

학생들이 숨을 죽이며 경찰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이름만으로는 확신을 갖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다니는 학교는?”

“명성고등학교입니다.”

웅성웅성.

침묵이 단번에 깨졌다. 진짜 김동빈이 경찰서를 찾아온 것이다. 뜻하지 않은 김동빈의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다.

“저, 저놈 자수하러 왔나?”

“김동빈 성격에 자수는 무슨… 열 받으면 경찰서까지 엎어버릴 놈인데 말이야.”

“씨발… 얼굴 가려! 지를 범인으로 지목한 놈들 알아보러 온 거야!”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진짜로 얼굴까지 가리며 조용히 빠져나가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그만큼 동빈에 대한 소문은 엄청났다. 실제로 강남 연합이 무너지는 사건을 봤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끄러, 이것들아! 제자리에 앉아!”

“…….”

경찰이 큰 소리를 치자 학생들이 안정을 찾았다. 민중의 지팡이가 고맙게 느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봐, 금성인. 김동빈을 범인이라고 지목했었지?”

“마, 맞아요…….”

“그럼 둘이 공범이야?”

“아니요! 아니요!”

금성인은 난감했다. 범인을 지목하고 같이 있다고 말했으니… 경찰의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장난해? 분명 둘이 같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 그러게요.”

금성인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경찰 눈치 한 번 보고, 동빈 눈치 한 번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행동이었다.

“사실대로 말해봐. 너 진짜로 김동빈과 함께 있었어?”

“마, 맞아요.”

“그런데도 이번 사건의 범인이 김동빈이고?”

“모, 몰라요. 엄청 어두워서 범인의 얼굴은 못 봤어요. 그냥 애들이 그래서…….”

“뭐야! 그럼 김동빈이 알리바이가 확실하다는 소리잖아?”

“마, 맞아요…….”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외쳤던 범인의 알리바이가 성립된 것이다. 동빈이 관련되면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확실히 김동빈과 같이 있었어?”

“맞아요…….”

“그럼 왜 김동빈을 범인이라고 지목한 거야? 다른 놈들도 모두 똑같아! 너희들도 진술서 다시 써!”

처음부터 수사를 다시 해야 했다. 동빈의 무죄가 밝혀지자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었다.

동빈은 건물 밖으로 나섰다. 경찰이 추가 조사를 벌였지만 동빈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범인은 따로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은 잘 풀렸네?”

“네.”

“고생 많았구만기래.”

송 교관이 웃는 모습으로 동빈을 맞이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장군님은 어디 계십니까?”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셨지.”

“그렇군요…….”

군용 차량들이 보이지 않았다. 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없는 것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웅성웅성.

동빈의 뒤쪽이 시끄럽다. 조사를 끝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사범님, 저희는 구경만 했어요.”

“맞아요. 정말 구경만 했어요.”

“시끄러, 이것들아! 폭력이 있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지. 내말 안 들으니까 이런 꼴 당하는 거야.”

사범은 도장에 관련된 학생들을 데리고 나왔다. 유난히 커다란 목청으로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멈칫.

건물 밖으로 나온 사범이 주춤했다. 송 교관의 얼굴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공현철 사범은 송 교관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송 교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나야 항상 잘 지내디. 너도 잘 지내고 있네?”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경찰서에는 무슨 일로 왔네?”

“제 도장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쯧쯧쯧…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골치 많이 아프디?”

“그, 그렇습니다.”

사범은 머리를 긁적였다. 가르치는 입장이란 말을 듣고는 묘한 미소까지 떠올렸다.

“시간 있으면 커피나 한잔 하자우.”

“교관님은 커피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이야.”

송 교관은 사범의 손까지 잡으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범도 흔쾌히 승낙하며 자판기 커피가 있는 곳으로 가려 했는데, 뜻밖의 방해물이 따라붙었다.

“어이, 애들은 가라고 하지?”

사범의 뒤만 따르려는 학생들의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처럼 사범을 쫓아다녔다.

“사범님, 같이 가요. 우리를 버리지 마세요.”

“버리긴 뭘 버려! 이거 안 놔!”

사범이 손으로 뿌리쳐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송 교관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동빈이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동빈이 네가 우리를 따라 오면 되겠구만기래.”

“네, 알겠습니다.”

우르르.

동빈이 따라붙자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학생들은 사범에게 떨어지며 동빈과의 거리를 벌렸다.

“사, 사범님, 조심하세요.”

“이것들이 정말… 커피 마시는데 뭘 조심해! 너희들은 먼저 가든지 기다리든지 맘대로 해.”

사범은 송 교관을 안내했고 동빈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멀지는 않은 곳이다. 자판기가 설치된 한적한 장소였다.

톡.

자판기에서 종이컵이 떨어졌다.

또르르.

윙윙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뜨거운 커피 물이 쏟아졌다. 사범은 급한 성격임이 분명하다. 커피가 다 쏟아지기 전에 자판기에서 종이컵을 꺼내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구만기래…….”

송 교관은 공중전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사범이 종이컵을 건네자 가벼운 웃음을 보이며 받았다.

“뭐라고 불러야 하네? 공현철 사범이라고 불러줄까?”

“…….”

사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며 송 교관을 바라보았다.

“왜… 싫으네?”

“아, 아니요. 좋습니다.”

“좋은데 왜 그런 반응을 보였네?”

“죄송합니다. 이름을 불러주신 게 처음이라…….”

송 교관은 군대에서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번호를 불렀다. 동빈에게 미리 듣지 않았다면 이름부터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장가는 갔네?”

“아직입니다. 마땅한 여자가 없어서…….”

송 교관과 사범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동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 둘의 대화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째 무술 배웠다는 놈들은 다 이 모양인지 모르갔어. 키 훤칠하고 얼굴도 괜찮지… 국가에서 연금 받은 액수도 괜찮겠다, 도장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야. 성격 급한 것만 빼면 거의 완벽한 조건 아니가?”

“하하하. 그, 그런가요?”

사범은 멋쩍은 웃음을 터뜨렸다. 할 말은 많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나야 군을 떠나면 살기 힘들겠지만 너는 다르지. 아직 젊지 않네? 뭐가 모자라서 가정도 못 꾸리고 사는 기야?”

“걱정 마십시오. 때가 되면 알아서 가겠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닌가? 언제 국수 먹게 해줄 기야?”

“어이쿠. 알겠습니다. 어쩌면 저의 어머님과 그렇게 똑같은 말씀을…….”

“쯧쯧쯧… 그렇게 듣기 싫으면 빨리 장가가라우!”

송 교관의 충고는 나이 든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사범은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항복하겠다는 뜻을 보일 정도였다. 송 교관도 사범의 뜻을 눈치 챘는지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려운 건 없네?”

송 교관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 장가가라고 충고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힘든 건 별로 없습니다.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하여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거랑 잘 사는 건 다른 기야. 툭하면 사기당해 빚쟁이가 되거나 폭행 사건에 휘말리는 놈들보다야 훨씬 낫지만… 군에서 고생한 만큼은 대가를 받아야지.”

“교관님의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커피는 고맙게 잘 먹었어…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구만기래… 바쁜 사람 잡고 쓸데없는 말만 했는지 모르겠어.”

“아닙니다. 건강하신 교관님을 뵈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송 교관이 일어서자 사범도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에 비해 대화 시간은 매우 짧았다. 양쪽 다 커피가 반이나 넘게 남은 상황이었다.

“몸 건강 하고… 어머님께 효도 잘하라우.”

“네, 알겠습니다.”

송 교관은 시시콜콜한 끝 인사를 건넸다. 나이 든 선생이 예전 제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과 비슷했다. 사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등까지 돌렸는데…….

“참! 그놈은 잘 있네?”

“예? 누,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송 교관은 등을 진 상태에서 물었다. 사범은 누구를 말하는지 짐작조차 못 하는 얼굴이었다.

“시치미 떼지 말라우. 나이가 들면서 느는 건 눈치뿐이야. 어디 보자… 장군님의 친아들과 나이가 같았으니까… 지금쯤 고 3이 되었지?”

“그, 그렇습니다.”

사범은 매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송 교관은 계속 등을 돌린 상태를 유지했다.

“붙임성이 좋은 아이였지? 장군님의 말씀도 잘 따르고… 장군님의 아들과도 친하게 지냈으니 말이야.”

“…….”

“장군님이 말씀하신 게 생각나는군. 원래 추종 세력이 원조보다 한술 더 뜨는 법이라고… 괜히 말썽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네처럼 우연히 만나면 나도 기분이 좋겠지만… 내가 직접 그놈을 찾으면 상황이 다르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송 교관의 표정과 말투가 달라졌다. 옛 제자를 만난 스승의 다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냉철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사투리가 없는 말투 또한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일부로 등을 돌린 채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금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야. 경찰이 아이피인지 뭔지를 추적을 했는데 자네 도장이 나왔다고 하더구만. 알아서 잘 해결해.”

“네, 명심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다. 이건 진심이야.”

성큼성큼.

송 교관은 큰 걸음으로 자리를 떴고 동빈은 다 마시지 못한 사이다를 한꺼번에 들이켜며 뒤를 따랐다.

사범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송 교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기나긴 한숨을 내뱉었다.

“휴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는 증거였다. 장가가는 문제보다 더 큰 일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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