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씨발… 크악… 그, 그만…….”
독하기로 소문난 서창환이 항복하고 말았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증명되었으나 무차별적인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빠악빠악.
“…….”
기괴한 소리는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의 비명은 없었다. 그러기에 더욱 공포감이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최대철과 정성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구할 생각도 못 했고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른침만 삼키면서 거북한 소리가 멈추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적.
“……!”
“……!”
그러나 거북한 소리가 멈췄어도 문제였다. 자신들이 목표가 되었다는 뜻이었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겁먹은 얼굴로 서로 쳐다보았다.
“대, 대철아…….”
공포도 이런 공포가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대, 대철아! 크악!”
“성태아!”
멀쩡하던 정성태가 고함을 지르며 사라졌다. 최대철은 손이라도 잡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김동빈… 져, 졌다. 우리가… 켁!”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최대철이 고꾸라졌다. 언제 복부를 강타당했는지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크윽! 사, 사, 살려줘…….”
자신을 끌고 가는 느낌이 들자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맹수에게 끌려가는 먹잇감처럼 공포에 전 눈빛이었다. 정신을 잃고 끌려가는 정성태가 부러울 정도였다.
그러고는 다시 무자비한 폭력을 알리는 음향이 울려 퍼졌다.
퍼억퍼억.
매우 잔인한 소리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들조차 오금을 펴지 못했다.
“김동빈 저놈… 엄청 무섭다…….”
“지, 진짜… 사대천왕을 죽일 생각이야?”
싸움은 끝났으나 무자비한 폭력은 그치지 않았다. 소문보다 훨씬 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난 살인 사건 목격자 되기는 싫거든.”
“가, 같이 가!”
서둘러 자리를 뜨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그 와중에도 기괴한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정말 송장 치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야… 우, 우리도 도망치자. 야!”
뒷걸음을 치던 맞아요가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동빈이 보이지 않았다.
“어, 어떻게 하지? 사범님이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혼자 떠날 수도 없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지금은 피난길을 방불케 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앞 다투어 도망치는 구경꾼들은 바싹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부상을 당한 강남 연합은 피를 철철 흘리며 합세했다. 사대천왕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도망쳐야 했다.
“성인아, 뭐 해! 안 갈 거야!”
도장 친구가 맞아요를 불렀다. 빨리 도망치라는 질책이었다.
“그, 그놈 말이야, 체격 좋고 사범님이 잘 돌보라고…….”
“멍청한 놈! 벌써 도망쳤겠지!”
“그, 그런가…….”
“뭐 하냐! 빨리 뛰어! 내일 신문에 나고 싶어!”
“아, 알았어!”
맞아요는 부리나케 달렸다. 한번 뛰기 시작하자 무서운 속력이었다. 앞서 뛰어가던 놈들을 연신 따돌리며 질주했다.
한편, 모두가 떠난 장소에서는 생각보다 더욱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빠각빠각.
정체불명의 인물은 사대천왕을 모아놓고 폭력을 행사했다.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트린 것이다.
퍼억퍼억.
피가 튀어도 계속 주먹을 날렸다. 축 늘어진 사대천왕의 몸은 주먹이 닿을 때마다 불쌍하게 흔들렸다.
흠칫.
신나게 때리던 인물이 멈칫했다. 치켜든 주먹을 내려치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수상한 기척을 탐지했다는 반응이었는데…….
파파팟.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묘기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앉아있던 상태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도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후앙.
그가 떠나 허전한 자리는 강한 발차기가 대신했다. 간발의 차이로 동빈의 발차기가 빗나간 것이다.
“네놈의 정체가 뭐냐!”
동빈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살극무의 연속 동작. 상대가 중심을 잡는 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빠각!
발과 발이 부딪쳤다. 동빈의 다리는 살인 무기에 가까웠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엄청난 음향이 울렸지만 아무도 충격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어디 소속이지?”
“내 소속이 중요한 게 아니지…….”
발을 맞붙인 상태에서 동빈과 정체 모를 인물이 대화를 했다. 얼굴을 가까이 한 상태였지만 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침투 모자에 위장 크림까지 바른 상태였다.
“그래, 소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민간인들에게 섬광탄까지 쐈으니 말이야.”
“이런 놈들은 패 죽여도 시원치 않아.”
“특별한 명령이나 위급 상황이 아니면, 민간인은 보호 대상이다.”
“아직 사회물을 덜 먹었군. 민간인 중에도 등급이 있지. 보호할 대상과 제거해야 할 대상… 그나저나 계속 이런 자세로 말해야 하나?”
“힘들면 먼저 발 빼.”
“그럴 수는 없지. 살극무의 달인 앞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말이야.”
부슥.
동빈은 발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놈을 쳐다보았다. 우선은 대화로 놈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이 정도면 됐어?”
“물론이지. 나도 한때는 잘나가던 놈이었거든. 너처럼 비밀 코드를 작전 코스와 함께 쓸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어떤 코드를 가졌는지 궁금해죽겠네.”
“많이 알면 다쳐. 교관님의 명령이 있기에 참는 거야. 더 이상 중얼거리면 제거 대상에 오른다.”
“……!”
비아냥거렸던 놈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하얀 눈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로 동빈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무슨 짓거리를 하건 상관없다. 왜 나까지 끼워 넣었지?”
동빈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가 조용하니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곧 모든 게 밝혀질 거야.”
“순순히 말하는 게 좋을걸…….”
“내가 충고 한마디만 하지. 너는 특수한 신분에서 벗어나 민간인이 되었지? 한 가정의 식구로 입양도 되고 말이야… 그런데 아들이 되었으면 말이야…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하지 않겠어?”
“무슨 뜻이야?”
동빈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리라니?
“장군님께 안부 전해주라고.”
사사삭.
“……!”
상대가 도망쳤지만 동빈은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린 표정이었다.
에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나타났다. 섬광탄까지 터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장군님의 뜻?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동빈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냥 장군님의 명령대로 행동하면 좋은 아들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우선은 이곳부터 벗어나야겠지…….”
사사삭.
정신을 차린 동빈도 탈출을 시도했다. 우거진 잡초가 무성한 지역이었다. 이 정도로 몸 숨길 곳이 많다면 여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