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1/224)

벅벅벅벅.

동빈은 심하게 머리를 긁어댔다. 버스 정류장 입간판에 몸을 기댄 채, 운이 더럽게 없음을 자책했다.

“하… 미치겠네!”

생각할수록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하필, 거기서 유나를 만날 게 뭐란 말인가! 사고는 이미 터졌고 뒷수습이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유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현장을 들켜버렸으니 어떠한 변명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너무나 황당해서 무작정 튄 것 또한 고민이었다.

“우와! 방법이 없어∼!

벅벅벅벅.

이제는 자해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는 비명에 가까운 푸념을 내뱉었다. 유나에게 실없는 놈 취급 받기는 정말 싫었다.

“그래!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동빈은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뒤적뒤적.

동빈은 갑자기 지갑을 뒤졌다. 무언가를 열심히 찾더니 구겨진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좋아,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자.”

뚜뚜뚜.

동빈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시작되자 약간은 긴장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여, 여보세요.”

괜히 또 머리를 긁적인다. 통화 상대가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저기… 주무시는 걸 깨운 것 같은데… 윤지나 씨 핸드폰 맞나요?”

요즘은 왜 이리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일까? 잠결에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 동빈은 약간 당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동빈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저번에 조직 폭력배와 싸운 명성고…….”

아! 동빈 학생!

“에고, 귀야…….”

갑자기 통화음이 커지자 동빈은 핸드폰을 잠시 떼었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그냥 손에 든 상태에서도 상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제 연락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

“다름이 아니라…….”

동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동빈 학생. 우선은 한번 만나자. 내가 밥 산다고 했잖아. 뭐 먹고 싶은데?

“저기… 밥보다는…….”

밥 싫으면 술 사줘?

“아니요, 아니요. 그냥, 밥 사주세요. 네, 어딘지 압니다. 30분 뒤에요. 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동빈은 윤지나를 만나기로 결정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시점은 그녀를 구하고 난 다음부터였다. 처음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면 끝없는 싸움을 해결할 방법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전화를 끊은 동빈은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번화가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은은한 조명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장식보다는 고풍스런 느낌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공간이었다. 입구에서 찾는 사람을 말하자 웨이터가 동빈을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덕분에 잘 지냈지. 동빈 학생, 어서 앉아.”

윤지나는 창가 자리에서 동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빈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무엇을 먹을까? 여기는 뭘 잘하냐면…….”

“저는 아무 거나 잘 먹습니다.”

“그러면 세트 메뉴가 괜찮겠네. 여기요, 이걸로 주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그녀가 주문을 끝내자 웨이터는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본격적으로 대화할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죄송하지만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물어볼 것?”

동빈이 정색을 하고 묻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질문이기에 그렇게 심각하냐는 물음이었다.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저번에 말입니다. 조폭이랑 싸울 때… 누가 제 동영상을 찍은 것 같습니다.”

배시시.

동빈은 어렵사리 말을 꺼냈지만 그녀는 소리 없이 웃을 뿐이었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여간 당황스런 일이 아니었다.

“왜 웃으시는지…….”

동빈은 질문의 내용을 바꿨다. 그냥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

“사실은 말이야, 그 동영상 나도 봤어.”

“네?”

“요즘 장안의 화제잖아. 저번에는 퀴즈가 나왔는데 그만 떨어졌어. 아깝게 2등에 그치고 말았지. 세상에 1분 20초라니… 난 2분 정도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

동빈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누구 때문에 사건이 커졌는데? 괜히 자신만 억울해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기분 상했다면 사과할게.”

“…….”

사과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동빈은 계속 침묵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나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나름대로 조사를 했거든. 확실한 물증을 잡으면 먼저 연락하려 했지.”

“조, 조사라니요?”

이제야 동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 보고 즐긴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명함 안 봤어? 난 프리랜스 기자야.”

“명함에는 그냥 프리랜스라고 써있던데…….”

“일의 특성상 기자라는 호칭은 뺐지. 내가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많은 시간을 내지는 못했어.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지.”

“중요한 단서요?”

“동빈 학생이 조직 폭력배랑 싸울 때 이상한 여학생들이 숨어있던 걸 본 적이 있어. 중학생쯤 되어 보였는데… 겁이 나서 숨었나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따로 조사를 좀 했지.”

“그, 그래서요?”

동빈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정말 뜻밖의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 배고프거든? 식사하면서 차근차근 말해줄게.”

“저는 급한데…….”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아. 첫 번째 동영상은 누가 찍었는지 확실한데 두 번째부터는 문제가 있어.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찍은 것 같다는 소견이야.”

“그래서요?”

“너무 서두르지 마. 천천히 식사하면서 말해줄게. 알았지?”

“정 그렇다면… 근데, 여기는 왜 이리 음식이 늦게 나옵니까?”

동빈의 마음은 급했다. 주문한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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