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224)

유나는 단짝인 선혜와 길을 걸었다. 교실 청소를 했기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를 벗어났다.

“동빈이 말이야…….”

선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최고 화제는 단연 동빈에 관한 내용이었다. 명성고 학생이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관심을 두는 사항이었다.

“동빈이가 뭐?”

“여자 때문에 이상하게 변한 거래.”

“여자?”

“그래. 동빈이 여자 친구가 일진한데 찍혔었나 봐. 하도 심하게 당해서 캐나다로 떠났대. 그래서 동빈이가 일진만 보면 돌아버리는 거래.”

“얘, 동빈이가 이 말 들으면 정말로 돌아버리겠다.”

유나는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어느 정도 맞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라 판단했다. 유나는 동빈이 어둠의 길에 있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야? 7반 가영이가 그러는데…….”

“가영이? 그 기지배가 뭐라고 그랬는데?”

유나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정가영. 명성고등학교 여자 일진이었고 싸움 잘하는 남자와 사귀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애였다. 그 애 때문에 숫한 남자들이 이상한 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솔직히 걔가 꼬리 쳐서 안 넘어오는 남자 없었잖아?”

“왜 없어, 주철이한테도 퇴짜 맞았다고 하던데?”

“하여튼. 이번에는 동빈이한테 꼬리 쳤다가 단단히 퇴짜 맞은 모양이야. 왜 그런가 해서 알아봤다가, 동빈이 여자 친구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되었대.”

“그 기지배도 참 대단하다. 동빈이가 피해 다닐 때는 남자도 아니라고 대놓고 놀렸으면서…….”

유나는 기도 안 찬다는 반응이다. 그런 여자한테 넘어가지 않은 동빈이 다행이란 뜻도 포함되어있었다.

“어쨌든 말이야. 동빈이가 변하니까 정말 무섭더라. 저번에 싸우는 거 봤는데… 진짜 날아다녀. 한편으로는 멋있기도 하더라. 그러니까 가영이 그년이 계속 쫓아다니지.”

“그만 해라. 이제 동빈이는 쓸데없는 싸움 같은 거 안 할 거야.”

“무슨 소리야? 아까도 싸우러 간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나와 약속을 했거든…….”

“약속?”

“그래… 다시는 쓸데없는 싸움 안 한다고…….”

“…….”

선혜의 얼굴이 변했다. 동빈과 유나의 관계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여자 중에서는 유나가 동빈과 가장 친한 사이였다.

“저기 유나야…….”

선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동빈과 어떤 사이인지 물어보려는 의도였다. 이번 기회에 확실한 대답을 듣고자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바로 그때였다

퍼억.

“엄마야!”

골목길에서 갑자기 피투성이가 된 학생이 튀어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날아온 것이다. 유나와 선혜는 깜짝 놀라서 발길을 멈춘 상황. 그녀들의 시선은 피투성이 학생이 날아온 골목으로 집중되었다. 학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도, 동빈아…….”

“……!”

냉정한 표정으로 걸어오던 동빈이 흠칫했다. 여기서 유나와 만날 줄은 몰랐다. 실망한 듯한 그녀의 눈빛을 보자 허둥거렸다. 현장을 들킨 범죄자처럼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이었다.

“동빈이, 너…….”

“에이… 씨!”

유나가 다가서려 하자 동빈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달렸다. 오랜만에 도망치는 동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실망이다. 약속을 지키는 앤지 알았는데…….’

동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유나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단 하루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니… 동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는데, 바로 그때였다

“우와! 진짜 대단하다. 저렇게 많은 인원을 어떻게 발차기만으로 끝내 버리냐?”

“글쎄 말이야. 손을 다친 것 같지는 않던데? 그러니까 평상시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

“……!”

골목길에서 하나 둘 나오는 학생들. 그들의 웅성거림을 듣고 유나도 뭔가를 느낀 표정이었다.

‘그래… 완전히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구나.’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도망치는 동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달렸지만 여전히 빠르다. 벌써 큰길을 지나서 한참이나 멀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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