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9/224)

동빈은 여유롭게 교실로 들어섰다. 운동은 좋은데 피가 튀니 문제였다. 화장실에서 옷에 묻은 피를 닦느라 예상보다는 늦어진 시간이었다.

싸늘.

갑자기 조용해진 교실. 학생들의 이상한 반응에도 동빈은 꿋꿋하게 행동했다. 웬만큼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제일 먼저 발길을 돌린 곳은 석진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석진아, 안녕!”

“안녕… 아침부터 한바탕했냐?”

석진은 동빈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단정한 차림새였지만 핏방울이 곳곳에 튀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운동 좀 했지… 깨끗이 씻었는데 아직도 티나?”

“다음부터는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다녀라.”

피를 지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였다. 그러나 물기가 퍼진 자국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끄니 문제였다.

“그나저나 어제는 올라온 거 없겠지?”

“왜 없겠냐. 어제도 인터넷에 난리가 났었다.”

“미치겠네. 이번에는 또 뭐야?”

석진은 동빈에 관한 내용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체크해주었다. 조폭 잡는 고딩부터 시작된 것이, 이제는 시리즈로 연재되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놈이야. 어제는 퀴즈를 냈어.”

“퀴즈?”

“응. 동빈이 네가 7명을 쓰러뜨리는 데 걸리는 시간… 퀴즈가 나오자마자 리플이 줄줄이 달렸고… 한 시간 뒤에 놈이 동영상을 다시 올렸어.”

“얼마나 걸린 동영상이냐?”

“1분 20초 나왔다.”

“어제 집 근처에서 벌인 싸움이구나.”

쓰러트린 숫자와 시간으로 볼 때 어제 일이 분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증거였다. 동빈은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석진은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동빈아, 고맙다. 덕분에 놀이 공원 가게 생겼다.”

“무, 무슨 소리야?”

환하게 웃는 얼굴이 수상했다. 동빈은 놀이 공원 티켓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인터넷을 살펴보는 대가로 지불한 것은 떡볶이 2인분이 전부였다.

“사실 말이야… 어제 정답 내가 맞췄어. 대부분이 5분 이상을 쓰더라구. 수진이도 고맙다고 전해달래.”

“염장이냐…….”

맞다. 확실한 염장이다. 누구는 싸우느라 정신없는데…….

동빈이 고개를 떨어트리자 석진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근데, 정말로 짐작 가는 사람도 없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올라오는데?”

“없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한 놈이야. 내가 신경을 집중하면 웬만한 인기척은 다 잡아내거든.”

“문제네… 우리 학교 애들은 확실히 아니고…….”

동빈의 싸움을 구경하는 학생들은 한 가지 예절을 갖춰야 했다. 디지털 카메라나 휴대폰 금지. 대부분이 잘 따라주었기에 의심할 부분이 아니었다.

“석진아, 끝까지 수고 좀 해주라.”

“그래, 동영상은 이따가 컴퓨터실에서 보여줄게.”

“알았다.”

석진과 대화를 마친 동빈은 자기 자리로 향했다. 단짝인 주철은 세상모르고 잠이 든 상태였다. 얼굴에 책을 덮은 상태에서 코까지 골아댔다.

드르렁드르렁.

정말 세상 편하게 사는 놈이다. 동빈은 주철이 얼굴을 덮고 있던 책을 치우며 깨웠다.

“그만 일어나라. 조회 시간 다 돼간다.”

“으음… 내가 조회 받을… 상황처럼 보이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주철은 비몽사몽이었다. 귀찮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또 밤새 놀았냐?”

“어휴… 이젠 노는 것도 힘들다. 체력이 딸려…….”

“행복한 소리 그만 해라. 누군 만날 피 터지게 싸우잖아.”

“네가 택한 길이니 남들일랑 원망 마라… 으자자자!”

주철은 거하게 기지개를 했다. 우둑거리는 소리로 보아 정말 심하게 논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일진의 진짜 뜻이 뭐야? 주철이 너도 꽤나 놀았다며?”

“일진? 그거 일본 만화책에 나오는 거잖아.”

동빈이 예전부터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주철이 조금 놀았다고 하기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가 일본 만화를 안 봐서 그러는데…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글쎄… 얼굴 좀 생기거나 싸움 좀 하는 놈들을 지칭하는 말 아닌가?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서…….”

“너도 모른다는 거야?”

“나만 모르냐, 일진이라고 설치는 놈들 다 모른다. 그냥 남들이 부르니까 따라 부르는 거지.”

“그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일진이라며 찾아오는 놈들 만나면 자세히 물어봐라. 일진이 뭐냐고… 제대로 대답하는 놈 하나도 없을 거다. 미안한데… 난 조금 더 자야겠다…….”

풀썩.

잠이 덜 깬 주철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책상에 고꾸라졌다. 본인의 말마따나 조회를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자냐? 나 심심한데 대화 좀…….”

드르렁드르렁.

대답 없이 코 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절대로 깨울 수 없는 상태가 분명했다. 동빈에게는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이젠 뭐 하지?”

석진과 주철 정도가 동빈의 친구였다. 예전에는 왕따 취급을 받아 다른 친구가 없었다. 요즘은 이상한 놈들이 친구 하자며 찾아오지만 동빈이 원치 않았다. 그들의 목적은 동빈의 싸움 실력이었다.

“야,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눈만 깜박이던 동빈은 다른 애들의 대화에 관심을 보였다. 동빈의 자리에서 대각선에 위치한 자리였다.

‘불안한데… 또 내 이야기를 하는 건가?’

동빈은 귀가 상당히 밝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소곤거리면 꼭 자기를 언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도 못 들었어? 정한수 소식 말이야.”

‘정한수!’

동빈의 귀가 솔깃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놈은 요즘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다. 무단결석이 길어지자 별의별 소문이 난무했다.

“무슨 소문인데? 동빈이한테 복수라도 한데?”

“아니, 그럴 위인이나 되냐? 그놈 전학 간다고 하더라. 쪽팔려서 학교도 못 나오고 있잖아.”

“맞다. 나 같아도 전학 가겠다. 기고만장해서 동빈이 괴롭힐 때는 언제고 말이야. 동빈이가 나서면 이제 그놈이 죽지.”

동기들의 대화는 인과응보라는 반응이었다. 동빈이 언제 정한수를 손봐 줄 것인지 모두 궁금해했다.

“동빈아, 잠깐 나 좀 볼래?”

“응?”

동기들의 대화에 집중했던 동빈은 깜짝 놀랐다. 부반장 유나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대화에 정신을 빼앗겨 그녀가 다가온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무, 무슨 일인데?”

“그냥 잠시면 돼. 잠시만 밖으로 나올래?”

“아, 알았어…….”

동빈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유나를 따라나섰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둠의 길에서 빠져나오라는 충고일 가능성이 높았다. 매우 실망했다며 알은척도 하지 말라는 절교 선언일 수도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동빈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교실 앞 복도.

유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라진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평상시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유나야, 무슨 일로…….”

동빈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왕따 시절. 그래도 동빈을 많이 챙겨주던 그녀였다. 피아노 원장과 송 교관의 관계까지 엮이면서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동빈아. 손은 괜찮아?”

“손? 내 손은 괘, 괜찮지…….”

몸 걱정 해주는 것인가? 동빈은 자신의 손을 슬쩍 살펴보며 대답했다. 수많은 싸움을 했지만 다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런 놈들하고 싸워서 다치는 것이 더 이상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말이야… 손을 아껴야 한대.”

“……!”

결국 싸우지 말라는 소리였다. 유나가 공부를 잘해서 그럴까? 듣는 사람이 거슬리지 않게 완곡하게 표현했다.

“철없는 행동으로 자신의 꿈을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도 걱정이 많으셔.”

“그, 그래…….”

“약속했다. 꿈을 위해서 싸움은 그만 하는 거다.”

“그, 그래…….”

동빈은 얼떨결에 약속을 하고 말았다. 머리 좋은 여자는 위험하다. 남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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